국내의 경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디자인과 학생이라면 디자인 스튜디오 가는 것을 당연하고 영광스럽게 여겼다. 이때만 해도 디자인 스튜디오는 10명을 넘거나 20명이 넘어가며 손에 몇 개 꼽을 수 있는 대규모 스튜디오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기업에 바로 들어가 일을 하거나, 일찌감치 독립해 자기 회사를 차리는 디자이너가 많아졌다.
마이클 라우는 홍콩 출신의 아티스트로 아트토이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다. 그는 1998년에 ‘가드너’라는 만화를 연재한다.
내년을 바라보는 어도비의 시선,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트렌드 2024. 작년의 트렌드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확인해볼까요?
피에르 폴랭의 Dune Sofa에 얽힌 이야기와 그의 헤리티지를 잇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들의 이야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17세 버전의 나를 위한 것이다." 버질 아블로가 서체를 이용해 시도했던 타이포 커뮤니케이션. Helvetica와 Cooper Black을 통해 살펴봅니다.
윤디자인그룹 편석훈 회장의 1990년대 ‘윤폰트’ 리뷰 — 삼국시대 시리즈 [고구려]
오디너리피플 interVIEW in 2017 / afterVIEW in 2020
세기의 디자이너 20인을 통해 읽는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정보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각을 시각화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것이 그래픽 디자인이다. 20세기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변화를 겪어 온 그래픽 디자인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만들어 온 선구적 디자이너들을 만날 수 있는 책 〈그래픽디자이너들〉이 발간됐다.
“검정과 흰색만이 저의 친구고 나머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에요.”
“책임감과 열정은 안 믿어요. 그보다는 시스템, 내가 생각하는 출판을 위한 관계망 구축이 중요합니다.”
낙원에 대한 동경은 아랍인들의 꿈이다. 그들에게는 건축보다 정원이 더 중요했고 건축의 내부 역시 정원의 연장이었다.
몽생미셸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그림자의 허공과도 같은 성인의 모습처럼 부유하듯 존재하며 대양과 하늘의 광대하고도 신성한 순결의 아침처럼 닫혀있는 자신을 연다.
베르사유 궁전에 대하여: 기하학적 정원의 질서와 화려한 실내의 인테리어는 어째서 ‘완전한 기하학’일 수 있는가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노트폴리오에서 소개했던 분이 어떤 방향으로든 잘 되는 거예요.”
아픔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 누군가 그 상처를 알아봐 주고 감싸주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론 모른척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展〉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에 다다랐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외부에 설치된 거대한 원숭이었다.
“우리가 만든 페이퍼 토이가 ‘베어브릭’이나 ‘레고’처럼 하나의 문화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