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이형, 잠잘 시간에 앨범 좀
2019년 말, Frank Ocean(프랭크 오션, 이하 오션)이 앨범 ‘Blonde’를 내고 약 3년이 지났을 무렵이죠(지금은 7년이 지났습니다). 오션은 마치 본인을 집어삼키는 듯한 커다란 청록색 소파에 누워있는 사진에 등장했습니다. 앨범을 왜 내지 않냐는 고정 코멘트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은 정체불명의 소파에 쏠렸습니다. ‘대체 저 소파가 뭐냐고요.’
피에르 폴랭과 오가닉 가구
피에르 폴랭(Pierre Paulin, 1928~2009, 이하 폴랭) 20세기 중반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전개한 프랑스의 가구 디자이너입니다. 50년대와 60년대 기하학적 형태와 단순성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가구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폴랭은 1950년대 말부터 자연의 유려한 곡선을 차용한 오가닉(Organic)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곧 폴랭은 가구 디자인 경향을 이끄는 인물이 됩니다.
집에서 만나는 모래언덕
이 청록색 소파의 이름은 ‘Dune Sofa(모래언덕 소파)’입니다. 1970년대에 디자인된 이 소파는 4개의 개별 모듈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유롭게 결합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공간에 맞추어 변신할 수 있죠. 폴랭의 디자인 기조가 우아한 곡선을 차용한 ‘오가닉’ 디자인이라고 했지만, 기능적인 부분에서는 굉장히 미래지향적이지 않나요?
폴랭의 Dune Sofa 컬렉션의 각 모듈은 5,400달러에서 8,200달러 사이입니다. 가구 판매 사이트인 Ralph Pucci에서 각 모듈을 어떻게 조합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등 부분이 올라오게 하고 발 닿는 부분을 길게 조합한다면 가족모임에 어울리는 식으로 상황과 때에 맞도록 디자인을 바꿀 수 있죠.
헤리티지와 가족
비록 폴랭은 2009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유산은 계속 살아있습니다. 뉴욕의 현대 미술관,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파리의 데코라티프 미술관 등에서는 폴랭의 작품을 컬렉션으로 소장하고 있죠.
그 배경에는 폴랭의 가족이 있습니다. 폴랭의 아내 마이야 폴랭과 아들 벤자민 폴랭, 그리고 며느리 알리스 르모안이 이끄는 가족 프로젝트 ‘폴랭 폴랭 폴랭 Paulin Paulin Paulin’을 통해 2013년부터 생산과 보존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폴랭’이라는 이름은 이제 세상에 없는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어요. 제 입장에서 디자인은 여전히 숨 쉬고 있고 사라지지 않는 존재인데, 그렇게 죽은 사람 취급하며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싫었죠. 그래서 ‘폴랭 폴랭 폴랭’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메아리처럼 멀리 퍼져나가는 듯한 단어의 반복은 세대 간 계승을 의미해요. 사람들은 저와 아내, 어머니 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고요.”
계속해서 사랑받는 것
폴랭의 작품은 박물관에만 전시된 것이 아닙니다. Louis Vuitton은 2015년 크루즈 쇼에서 ‘Slinky Osaka Sofas’ 30개를 이어 청중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었으며, 래퍼 Kanye West는 자신의 브랜드 시즌 ‘Yeezy Season 3’에서 폴랭의 소파를 쇼룸에 배치하였죠.
가구의 의미
가구는 디자인 도안이 만들어져 있고 수요가 있다면 같은 형태로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기에 수명이 길죠. 그만큼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합니다. 의자는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안식처이며, 침대는 꿈을 꿀 수 있죠. 탁자는 이야기가 교환되는 장소이며, 책상은 우리의 열정을 불태우는 곳입니다. 어쩌면 가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가구와 함께하고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