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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질 아블로와 타이포 커뮤니케이션

    "내가 하는 모든 일은 17세 버전의 나를 위한 것이다." 버질 아블로가 서체를 이용해 시도했던 타이포 커뮤니케이션. Helvetica와 Cooper Black을 통해 살펴봅니다.


    글. 주오

    발행일. 2023년 11월 20일

    버질 아블로와 타이포 커뮤니케이션

    17살의 나에게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 여러분, Virgil Abloh(이하 버질)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최초 아프리카계 Louis Vuitton 맨즈 디렉터, 브랜드 Off-White의 설립자, 래퍼 Kanye West와 Jay-Z의 합작앨범 <Watch The Throne>의 아티스틱 디렉터 등 그를 소개할 방법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가 희귀성 심장 혈관 육종(심장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2년여가 지났습니다. 생전에도 특이한 커리어 때문에 그의 이름은 워낙 많이 회자되어 왔지만, 갑작스러운 죽음과 더불어 그는 정말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Louis Vuitton Men’s Spring-Summer 2019 Fashion Show, 쇼가 끝난 후 버질이 등장하고 있다.

    “Everything i do is for the 17 year old version of myself.”
    (내가 하는 모든 일은 17세 버전의 나를 위한 것이다.)

    정식으로 패션 아카데미에서 학습하지 않은 버질은 본인에게 익숙한 스트릿패션 문화를 끌어안았습니다. 버질은 럭셔리 하우스의 방식과 스트릿 컬처를 섞는 시도를 했고, 결국 패션계의 높은 곳으로 부상했죠. 어떻게 교육도 받지 않고 그런 자리에 올랐냐고요? 옷의 테일러링 실력만으로 승부를 봤다면, 버질은 그런 커리어를 이루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직접적인 테일러링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어도 결국 버질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눈에 띄는 결과물들을 냈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Virgil Ablog x IKEA MARKERAD “WET GRASS” Rug

    “You can use typography and wording to completely change the perception of a thing without changing anything about it.” 
    (당신은 타이포그래피와 문구를 사용하여 사물에 대한 어떤 것도 바꾸지 않고 그것의 인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버질이 032C매거진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글자를 전면에 내세워 메시지나 분위기를 전하는 방식은 스트릿 패션계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방식이죠. 그에 발맞춰 버질은 Off-White의 대부분의 작업에 Helvetica를 앞세웠습니다. 큰따옴표 안에 단어를 새겨 그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복기해 볼 수 있도록 했죠. 그를 일러 ‘타이포필(Typophil, 인쇄물이나 타이포그래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유명 인사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거나, 일상대화에서 주목할 만한 말 또는 특정 단어들을 이용해 버질은 자신의 생각을 ‘커뮤니케이션’ 하고자 했습니다.

    Helvetica, 1957.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도 어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편집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입니다. 즉, ‘편집의 시대’죠.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다시 재조명하여 납득이 되도록 재포장하여 내놓는 것. 버질은 편집의 달인이었습니다.

    Air Jordan 1 Retro High Off-White Chicago “The Ten”

    “I was only interested in restraining myself, and only editing it 3 percent.”
    (저는 제 자신을 억제하고 딱 3%만 수정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기 Off-White과 Nike의 협업 프로젝트 <The Ten>의 ‘Air Jordan 1”를 살펴볼까요? <The Ten>은 Nike의 대표 신발 10가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프로젝트입니다. 버질을 만천하에 알린 2017년 최고의 협업 사례 중 하나이죠. Nike 에어 아웃솔에  ‘AIR’라는 글자를 새겨넣고, 신발 끈에는 ‘SHOELACE’라는 글자를 새겨넣었습니다.
    대상의 정보를 글자로 다시 새김으로서 그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버질이 새로 만든 것은 없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약간 수정하고, 그의 편집(취향)을 한 스푼 더했을 뿐이죠. 그 한 스푼의 방점에는 언제나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질이 애정했던 서체는 Helvetica 말고도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Cooper Black이죠.

    American Wood Type Mfg. Co. Catalog No. 36, Cooper Black & Cooper Black Highlight, page 8, printed in 1936.

    담배 광고, 그리고 인지부조화

    1920년경 Oswald Cooper라는 이름의 시카고 디자이너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서체, Cooper Black은 신문과 잡지의 다양한 광고주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Cooper Black은 1960년대 중반과 1970년대의 가장 인기 있는 광고 서체 중 하나가 되었죠. 유명한 사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Newport 담배 광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카고 거리를 거닐던 버질또한 이 광고의 대상이 되었죠. 버질은 ID Magazine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Newport, Newport Pleasure! 2012

    “This image is so mysterious to me. This ‘pleasure’. Newport ads are a Chicago thing I grew up with, black people looking happy and joyful but they’re living in circumstances that don’t look like the adverts.”
    (이 이미지는 저에게 신비롭습니다. 이 ‘즐거움’이라는 것 말입니다. Newport 광고는 제가 자란 시카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광고 속의 흑인들은 즐겁고 행복해 보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Cooper를 손에 쥐고

    버질은 Helvetica와 마찬가지로 Cooper Black을 타이포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예로, 지난 2018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파지오 마이오키(Spazio Maiocchi)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Question Everything(모든 것에 질문하라)”라는 슬로건을 강조하며 뒤로 젖혀지는 듯한 Newport 광고 오마주 작품을 전시했죠. 

    “The inspiration on that body of work is a segment of a larger analysis about advertising and the immense power that it has to change people’s perspectives.”
    (이 작품에 대한 영감은 광고에 대한 더 큰 분석과, 그것이 사람들의 관점을 변화시켜야 하는 거대한 힘에서 비롯됐습니다.) 

    또한 버질은 시카고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에서 열린 ‘Figures of Speech’ 전시에서 Cooper Black을 사용하며 “Take the toy gun and have fun”와 “I have a million things to do today.“ 라는 슬로건을 새긴 티셔츠를 선보였습니다. 추후 Louis Vuitton FW21 컬렉션에  “Tourist vs Purist”에서도 Cooper Black을 활용했죠.

    Louis Vuitton Men’s Autumn-Winter 2021 Fashion Show

    우리가 보아온 것은

    정보전달과 습득의 기본은 글입니다. 그 글을 우리는 일상 다양한 곳에서 접하죠. 상시 들여다보는 휴대전화의 스크린, 가게의 간판, 옥외광고 등에서 글자는 성실히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전달력은 서체의 형태와 배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인상’이 되어 우리에게 들어오죠. 그 인상을 곱씹으며 우리는 메시지를 느끼고, 본인만의 해석을 얻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글자는, 어쩌면 ‘잘 전달’하기 위해 형태와 배치를 수도 없이 고민한 누군가, 또는 집단의 결과물이 아닐까요. 화려한 이미지나 그래픽은 시선을 끌지만 결국 서체가 바로잡혀 있지 않다면 그것의 힘은 반감될지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여러분 주변에는 어떤 글자가 있나요? 그리고 그 글자는 무엇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