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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뜸돋움 제작기

    ‘으뜸’이란 무엇인가. ‘많은 것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돋움’ 역시 순우리말이므로, 으뜸돋움이라는 작명은 한글 고딕체인 이 서체만의 정체성을 퍽 적확히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글. 임재훈

    발행일. 2012년 04월 02일

    으뜸돋움 제작기

    수많은 *돋움체들이 있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서 글꼴 선택 시 볼 수 있는 무수한 ‘-돋움’과 ‘-고딕’ 들을 떠올려보라. 이것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에서의 웹글꼴 활용이 증가하면서 더욱 범용되고 있다. 이렇게 많고 많은 ‘돋움’과 ‘고딕’ 들은 저마다의 이름 앞에 각기 다른 닉네임을 달고 있다. 서체 개발사의 성씨를 따른 것(윤고딕·산돌고딕·HY견고딕 등), 개성을 부각한 네임태그가 붙은 것(휴먼고딕·나눔고딕·맑은고딕 등)처럼 말이다. 이 속에서 다소 도전(?)적인 이름표를 단 서체가 등장했으니, 바로 으뜸돋움이다.

    *‘돋움체’는 ‘고딕체’를 우리말로 순화한 것으로 1991년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용어다.

    으뜸돋움 12px

    ‘으뜸’이란 무엇인가. ‘많은 것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돋움’ 역시 순우리말이므로, 으뜸돋움이라는 작명은 한글 고딕체인 이 서체만의 정체성을 퍽 적확히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으뜸가는 돋움’이라니…. 이 이름에 담긴 속뜻이 현재 상용되고 있는 숱한 돋움체들을 ‘버금’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공격성(?)을 띄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으뜸은 ‘최고’라는 뜻 말고도 ‘기본이나 근본’을 의미하니까. 그렇다면, 으뜸돋움의 이름 풀이는 ‘최고로 잘 만들어진 서체’이기보다 ‘기본과 근본에 충실하여 만들어진 서체’가 될 것이다. 으뜸돋움을 만든 두 사람, 윤디자인연구소의 김대권(기술개발팀 과장)과 최수란(디자인팀 대리)을 보며 더욱 그런 확신이 든다. 물론, 으뜸돋움이 정말 으뜸인지 버금인지에 대한 평가는 사용자들의 몫이겠지만.

    윤디자인연구소의 김대권(기술개발팀 과장)과 최수란(디자인팀 대리)

    웹용 힌팅(hinting) 서체인 으뜸돋움은 2010년 7월부터 개발을 시작해 2011년 3월 최종 2종(레귤러·볼드)이 완성되었다. 명조 계열인 으뜸바탕 2종(레귤러·볼드)도 함께 개발되었다. 현재 으뜸돋움은 각종 홈페이지와 블로그의 본문용 서체로 쓰이고 있다.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지난해 배포한 한글 패치를 통해 기존 글꼴을 으뜸돋움으로 변환하기도 했다. 또 지도 검색 서비스인 ‘파란 올레맵(ollehmap)’에서도 사용될 예정이다. 이 같은 다양한 활용은 여러 디스플레이 기기에서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힌팅 기술이 적용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대권의 말을 빌리자면, 힌팅 서체 개발 시에는 “절대로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늘 안고 있어야 한다”. 최수란 역시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덧붙인다. 하기야, ‘으뜸’이라는 이름값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으리라. 두 사람은 어떻게 글자를 돋우어 으뜸으로 만들었을까.

    Q. ‘으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유가?

    최수란 개발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명칭은 ‘VSF(Vector Screen Font)윤고딕’이었어요. 단어 그대로 인쇄용 서체인 윤고딕에 벡터 스크린 힌팅 기술을 적용하여 웹용으로 만든다는 뜻이었죠. 그런데 사용자들에게는 어려운 이름이잖아요. 의미 전달도 명확하지 않고. 그래서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서체명을 공모했어요. 그 결과 ‘으뜸’이 채택된 거죠. 많은 서체들 가운데 인쇄용뿐만 아니라 화면용으로도 적합하고, 가독성까지 높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Q. 후보에 올랐던 이름들이 궁금한데요?

    최수란 엄청 많았죠. 명(明)돋움, 정(正)돋움, 참돋움, 고운돋음, 곧은돋움, 나래돋움, 리얼돋음, 산뜻돋움 등등.

    으뜸돋움 힌팅 팀. (왼쪽부터) 성준석, 최수란, 이가희.

    Q. 애초 이름이 ‘VSF윤고딕’이었다는 건, 윤고딕을 바탕으로 으뜸돋움을 개발했다는 뜻인가요?

    최수란 맞아요. 인쇄용 서체인 윤고딕120을 화면 출력용에 적합하도록 수정하는 작업을 먼저 거쳤죠. 글꼴을 전체적으로 확대한 뒤, 글줄을 맞추고 자소 형태와 획 위치를 조정했어요. 윤고딕120이 전반적으로 평한(가로로 긴) 느낌이었는데, 여기에 장을 95% 정도 주어서(세로폭 비율을 늘여서) 화면상에서의 가독성을 더 높였습니다.

    Q. 으뜸돋움에 적용된 힌팅 기술이란 무엇이죠?

    최수란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LCD 모니터 같은 디스플레이 기기들은 프린터에 비해 해상도가 낮아요. 이렇다 보니, 디스플레이 기기에서는 글꼴 크기가 작아질 때 획 굵기나 세리프 모양이 달라지는 등 왜곡 현상이 발생해서 가독성이 매우 떨어져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바로 힌팅이죠. 힌팅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따로 계신데. 김대권 과장님이라고(웃음).

    김대권 전문가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노하우를 갖고 있는 거죠(웃음). 프린터의 해상도가 최소 600~1200dpi, 높게는 2400dpi 정도 돼요. 이에 비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모니터들은 72dpi, 96dpi 수준이죠. 원본 벡터 서체(vector font)가 칸 1,000개짜리 모눈종이에 그린 것이라고 치면, 모니터 화면에 표시될 때에는 모눈종이 칸 수가 9개 정도로 줄어들어요. 원래 1,000개짜리였던 그리드(grid)를 9개, 10개, 11개로 줄이려니까 당연히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이걸 보정하는 작업이 바로 힌팅이에요.

    힌팅 작업

    Q. 으뜸돋움 이전에도 힌팅 서체는 있었죠?

    김대권 네. 대표적인 서체가 산돌커뮤니케이션의 맑은고딕과 나눔고딕이죠.

    Q. 그럼, 힌팅 기술에 있어서 으뜸돋움만의 차별화된 특성은 뭔가요?

    최수란 으뜸돋움엔 두 가지 방식의 힌팅 기술이 적용되었어요. 클리어타입(clear type), 그리고 그레이스케일(grey scale). 클리어타입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건데, LCD 화면에서 글꼴이 잘 보이도록 하는 렌더링 기술이죠. 기존의 힌팅 서체들은 주로 클리어타입 방식만 적용했어요. 이와 달리 으뜸돋움은 그레이스케일 방식도 함께 적용함으로써, LCD 화면보다 저해상도인 디스플레이 기기에서도 가독성을 높였죠. 그만큼 서체 활용 범위 역시 넓어졌고요.

    김대권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오토(auto) 힌팅 툴을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일 수 있겠습니다. 이전까지는 서체 개발 툴인 폰트랩(Font Lab)에 내장된 오토 힌팅으로 1차 작업을 마친 뒤, 나머지 부분들을 매뉴얼(manual) 힌팅, 즉 수작업 힌팅으로 마무리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폰트랩의 기본 오토 힌팅은 영문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한글 서체를 힌팅할 때에는 아무래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죠. 이걸 보완하기 위해 한글에 최적화된 오토 힌팅 툴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폰트랩의 플러그인 같은 개념으로 말이죠. 또 자체 검증 프로세스도 도입했어요. 서체를 개발한 뒤에 미세한 오류를 직접 검수하는 시스템이죠. MS에서 나온 서체 검증 툴을 이용했습니다. 속된 말로 대충 만든 서체라 할지라도 사실 사용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요. 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선 그런 기본을 놓쳐서는 안 되죠. 특히나 힌팅 서체의 경우는 여러 가지 디스플레이 기기에 노출되는 것이니까 절대 무결점이어야 해요. 개발 기간 내내 ‘무결점’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죠.

    (위) 으뜸돋움 힌팅 적용 전 / (아래) 으뜸돋움 힌팅 적용 후

    Q. 무결점이라… 왠지 굉장한 압박이 느껴지는 단어군요.

    최수란 힌팅 서체는 일반 서체에 비해 작업 기간이 길 수밖에 없어요. 으뜸돋움만 해도 1년 가까이 걸렸죠. 게다가 한글 서체 힌팅은 영문에 비해 대단히 손이 많이 가요. 한글 2,350자를 한 자씩 크기별로 일일이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완전무결한 서체를 만들어야 하니까 정말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죠. 예를 들어, ‘틀’이나 ‘빼’ 같은 글자들은 겹치는 획들이 많아서 가독성이 좋지 않아요. 이런 경우에는 디자이너의 눈으로 어떤 획을 생략할지, 또는 획의 굵기를 어떻게 조절할지를 결정해야 해요. 그래서 힌팅 작업하는 동안 시력이 무척 나빠지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서체 개발에서 ‘완벽’이란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기본이 깔려 있지 않으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Q. 앞으로도 힌팅 서체가 많이 개발될까요?

    김대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힌팅 서체가 필요없게 될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아요. 왜냐하면, 힌팅이라는 기술 자체가 저해상도 모니터에서의 글꼴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점점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기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애플의 아이폰4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어요. 일반 LCD 해상도가 72~120dpi 정도인데,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300dpi 이상이에요. 재미있는 사실은, 힌팅 기술을 처음 개발한 곳이 바로 애플이라는 점이죠. 그런데 이 애플이 2년 전에 힌팅 특허권 갱신을 안 했어요. 맥OS에도 힌팅 서체를 안 쓰고 있죠. 애플의 맥뿐만 아니라 리눅스 기반의 안드로이드 OS 역시 힌팅 서체를 안 씁니다. MS 윈도우 쪽에서는 계속 힌팅 서체를 지원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힌팅 서체가 정말 없어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요. 20여 년 전에 비트맵 폰트가 없어질 거란 이야기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 여전히 사용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힌팅 서체의 미래에 대해 쉽게 예측할 수가 없는 겁니다. 윈도우 사용자가 많은 국내 특성상,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힌팅 서체의 수요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MS의 글로벌 영향력을 생각해봐도, 힌팅 서체가 향후 5년 이상은 계속 쓰일 것이라고 봅니다.

     힌팅 작업화면

    Q. 으뜸돋움의 향후 업그레이드 계획은요?

    최수란 으뜸돋움은 지금도 사용자들의 요청에 따라 수정 및 업그레이드 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파란 올레맵’에 쓰일 으뜸돋움은 기존의 으뜸돋움보다 더 굵고, 자소들에 굴림이 들어간 형태로 수정되었죠. 추후에도 다양한 사용 환경에 맞게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에요.

    김대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으뜸돋움은 버전이 1.0에서 멈춘 게 아니라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이어지고 있어요. 더욱 완벽한 품질의 으뜸돋움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부분에 계속 신경을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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