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Record _ intro
버튼 하나만 누르면(터치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장소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시대. 음악은 친구 못지않은 정신적 건강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더욱이 뉴트로(new-tro) 열풍을 통해 바이닐(LP), 턴테이블,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등 아날로그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이 20~30대층을 통해 다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바이닐 앨범들을 보면 레트로한 분위기의 타입, 레터링, 디자인 덕에 더 눈이 가고,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명반―레코드판들. 그리고 그 타입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한 장 한 장, 한 자 한 자 모아보려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했다. 자신의 책을 ‘독해’하려 하지 말고, ‘음악 듣듯이’ 읽어달라고.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께도 청한다. 우리가 기록해 나갈 이 타입들을 ‘청음’하듯 감상해보시라고.
동선 변화 없이 가만히 서서 열창하는 가수들. 노래가 끝난 뒤에야 일제히 박수를 치는 관객들. 가수는 정중히 인사하고, 다음 가수가 다시 점잖게 마이크를 이어 받는다. 1970년대 우리나라 가요 무대의 풍경이다.
이런 정적인 분위기를 보란듯 깨뜨린 뮤지션이 등장했으니, 그 이름 바로 김추자. 당시로선 꽤나 파격적이었을 밀착 의상, 그리고 세련된 춤까지. 김추자는 7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존재였다. 김추자는 신중현의 눈에 띄어 1969년 데뷔했다. 1집 수록곡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큰 사랑을 받았고, 이듬해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이 두 곡으로 인기의 정점에 오른다.
타입레코드 여덟 번째 시간에서 만나볼 앨범은 1970년작 〈김추자 스테레오 힛트앨범 No. 2〉다. 앞서 언급했던 불후의 명곡 ‘님은 먼 곳에’가 실린 명반이다. 이 곡은 200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주연 배우 수애가 불러 또 한 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밖에도 ‘빗속을 거닐며’, ‘댄서의 순정’ 등이 같은 앨범에 수록돼 있다.
새빨간 배경색, 검은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김추자의 전신 사진, 앨범명 및 타이틀곡 레터링. 앨범 커버의 시각 구성이 상당히 산뜻하다. 동시에 빨강-검정-노랑-파랑 색 대비가 두드러진다. 특히 레터링의 유형이 두 가지다. 조형적으론 전혀 유사하지 않지만, 크기 조절과 적절한 색 조합, 안정감 있는 배치가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균형감이 느껴진다.
앨범 제목 레터링은 기본적으로 고딕인데, ‘김’의 받침 ‘ㅁ’과 ‘스테레오’의 자음 ‘ㅅ·ㅌ·ㄹ’처럼 군데군데 획들이 둥글려져 있다. 자칫 딱딱해 보일 수도 있는 직선적 글자에 유연함을 부여하는 요소들이다. ‘스테레오’ 위아래로 큼직이 배치된 ‘김추자’와 ‘힛트앨범’의 라인 레터링도 인상적이다. 입체 음향의 역동적 파동을 연상시키는 재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타이틀곡 레터링은 더 역동적이다. 부서진 글자 파편들이 너울대는 모습 같다. 김추자 특유의 몸짓과 손짓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가까이서 보면 조각난 형상이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마치 내리는 비에 글자가 춤을 추듯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인상도 든다.
타이틀곡 레터링이 위와 다른 앨범 커버도 있다. 1980년대 영화 포스터에 제목으로 쓰였을 법한 캘리그래피 레터링이다. 이 또한 매력적이지만, 표현의 재미와 주목도 면에선 위 버전이 보다 앞서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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