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유용하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책받침은 어린 시절 하나쯤 구비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B5 정도 되는 크기였을까. 연필 자국이 꼬질꼬질하게 묻어있는 회색의 여백이 아이들에게는 축구장 아니면 야구장 또는 전쟁터였다. 이도 저도 귀찮을 때는 오목판이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레고 친구’이자 ‘낙서 친구’였다. 방과 후에는 ‘레고’를 가지고 놀았고, 학교에서는 다른 녀석들이 열심히 지우개 따먹기와 책받침 축구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구석에서 낙서를 그리며 놀았다. 그때마다 빼먹지 않고 등장했던 주제가 바로 위의 그림. ‘집 버스’이다. 이것을 먼저 생각해 낸 것은 친구 녀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낙서를 보게 되었고, 어느새 나도 곁에 앉아 같은 것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다. ‘집 버스’를 그리는 데에는 나름의 룰이 있었다. 책받침에 가득 차도록 버스의 측면도를 그렸는데, 우선 바퀴 두 개와 외곽선을 그리고 세 개의 층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층을 각 칸의 방으로 나눈 뒤, 당시 우리들의 흥밋거리로 채워 넣는 것이었다. ‘비디오방, 레고방, 만화방, 거실도 있어야겠고 부엌도 있어야겠다…….’ 각자의 공상에 빠지면서도 누구의 ‘집’이 더 좋은가 하는 논쟁도 빼놓을 수 없었다. 동시에 상대의 버스를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하는가 역시 빠지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그린 갈고리가 녀석의 버스를 잡으면, 어느샌가 녀석이 그려놓은 가위에 밧줄이 잘리는 식이다. 쉬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잡다한 장비가 늘어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책받침은 깨끗하게 갱신이 되었다. 우리는 꽤 죽이 잘 맞았고, 이런 식의 놀잇거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친구 녀석과 처음 만난 날은 우리 가족이 신축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온 날이었다. 친구네 가족은 며칠 전에 이사를 왔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에 또래가 적었기 때문에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운 좋게 두 학년쯤 같은 반이 되었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이삿짐 용달차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친구를 봤고, ‘어 편지할게’라는 한 마디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 책받침에 낙서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더는 재미없었기 때문이었고, 어쩌면 슬슬 머리가 크기 시작할 때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어떻게 바퀴 달린 집을 생각해 냈을까…….’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잦은 이사로 점철되는 유년기의 기억들. 이사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제법 당연한 행사 같은 것이었고, 설렘과 서운함이 동시에 뒤섞이는 복잡함은 어린 나이에 겪기엔 꽤 고급스러운 감정이었다. 콘크리트 냄새가 덜 가신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이삿날 만났던 친구는 또다시 이삿날에 헤어지게 되었고, 나도 얼마 뒤에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와 친구가 그토록 그려댔던 바퀴 달린 집. 어디든 떠날 수 있지만,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집. 설렘과 익숙함 모두를 붙잡고 싶었기에 고안해 낸, 이사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그려 보았다. 당시와는 달리 약간의 투시를 적용했다. 당시보다 상상력이 줄었고, 따라서 단순한 측면도만으로는 표현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기조
붕가붕가레코드 수석디자이너.
스튜디오 기조측면 운영 중. 전반적으로 시크하지만 칭찬 앞에서는 과감히 무너진다.
다양한 작업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재능도 있다고 믿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뭘 보여준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