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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 파트너즈의 3월 #1 나는 밀림의 왕이다(고나현)

    TS 파트너즈 컨트리뷰터 미션 당선작 연재 #공동_최우수작


    글. TS 파트너즈 고나현

    발행일. 2023년 04월 06일

    TS 파트너즈의 3월 #1 나는 밀림의 왕이다(고나현)

    TS 파트너즈는 지난해 11월 첫 번째 컨트리뷰터(contributor) 미션에 참여했다. ‘지금 이 순간의 캠퍼스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기’. 이 주제로 취재 기사라 할 만한 글 한 편씩을 썼다. TS 편집팀은 그중 다섯 편을 최우수작 및 우수작으로 선정하여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기록한 ‘지금’]이라는 시리즈로 연재했다.
    
    지난달 TS 파트너즈의 두 번째 컨트리뷰터 미션이 진행되었다. 이번 주제는 ‘나의 시간표’. 자기 삶의 꽃다운 만개를 꿈꾸며 짰을 봄날의 시간표와 일과표 얘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었다. 대학생이라면 2월 수강 신청을 장렬히(!) 마치고 3월 개강을 맞은 설렘을 시간표 안에 머금어줄 거라 기대했다.
    
    TS 파트너즈가 보내온 글들을 읽으며 TS 편집팀은 반성했다. 봄이 희망의 계절이라는 인식은 얼마나 고루한 클리셰였던가⋯⋯. 이번 미션에는 유독 대학 4학년생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졸업과 사회 진출을 앞둔 불안과 걱정이 고스란히 그들의 글에 묻어났다.
    
    두 번째 컨트리뷰터 미션 당선작 여덟 편(최우수작 두 편, 우수작 및 가작 각 세 편)을 매주 한 편씩 [TS 파트너즈의 3월]이라는 시리즈로 연재한다. 그들은 어떤 시간표를 살아내는 중인지, 그들이 가 닿으려는 시간표 밖 이정표는 어디쯤일지, 잠깐이나마 그들의 시간선을 따라가 보는 거다.
    
    연재 순서
    #1 공동 최우수작 「나는 밀림의 왕이다」, 고나현
    #2 공동 최우수작 「너구리와 오베이」, 이정은
    #3 우수작 「취준생의 인턴 생활」, 강세라
    #4 우수작 「‘이방인’으로 편입하다」, 김민경
    #5 우수작 「슬기로운 디자인 생활」, 최다은
    #6 가작 「대학생이 왜 3월에 강하게? 개강해서⋯」, 김태양
    #7 가작 「‘풀 스택 디자이너’ 워너비의 시간표」, 정설빈
    #8 가작 「디자인학과 편입생의 첫 번째 봄」, 조예린

    나는 밀림의 왕이다: 1년 전 오늘의 나와 지금의 나

    나는 밀림의 왕이다. 과제도 밀림, 방 청소도 밀림, 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밀림⋯⋯. 최근에 머리카락도 사자마냥 뽀글뽀글하게 파마를 했다. 정말로 밀림의 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번 학기 시간표도 밀림처럼 빽빽한 것은 아니다. 작년 3학년 2학기보다 ‘훠~얼씬’ 수월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국내, 아니 국외 모든 나라와 지역에 있는 디자인학과 학생의 당연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디자인학과 학생들은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밀림의 왕’이다.

    시간표를 정리하며 무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나는 무슨 과제를 하고 있었을까?’ 딱 1년 전 2022년 3월 24일 목요일, 나는 3D 모델링 수업을 듣고 있었다. 오토데스크 마야(Maya)로 진행되는 모델링 수업으로, 네 시간을 꽉꽉 채웠던 ‘풀강’ 수업이었다.

    사진을 보니 기억이 하나둘씩 난다. 항상 일에 치여 있던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친구가 준 껌. 친구들이 보기에도 내가 바빠 보였나 보다. 그때는 조별 과제, 교직 수업, 서포터즈 등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뿌듯하지만 힘든 하루하루였다. 그리고 망가진 나의 소중한 모델링. 얼굴이 망가진 모델링 작업물을 빠르게 사진 찍어 친구들이 있는 단체 톡방에 올렸었다. 아마도 친구들을 웃기고 싶었나 보다.

    과거의 나는 꽤 웃긴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쉽게 마야 모델링에 관절을 심고, 내가 원하는 방향과 모션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의 나는 왜 그렇게 쉬운 일조차 하지 못했을까?

    아마 ‘작년의 나’와 ‘오늘의 나’의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여느 날들처럼 요즘도 밀린 과제들이 늘 눈앞에 놓여 있지만, 나는 지금 4학년이다. 이제 곧 사회로 내던져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12년과 대학교의 4년, 도합 16년 동안의 공부 실력으로 사회에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나는 밀림의 왕⋯이었다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음주와 흡연이 가능한 만 21세 합법적 어른이다. 내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어른은 ‘사회적 어른’이다. 내 디자인 실력으로 사회로 나갔을 때 어떤 일이 있을지, 삶이 너무 팍팍하지는 않을지 같은 걱정이 많다. 이런 생각은 대학 졸업 직전, 진정한 어른이 되기 전 모든 사람들이 하는 고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지막 4학년, 남은 1년의 대미를 장식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밀림의 왕으로 살았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일만 수행하면 됐으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다르다. 현재를 생각하고 행동을 선택하여 미래를 그려 나가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는 디자인학과 학생이니까 미래는 잘 ‘그려’ 나갈 것이다.

    졸업 준비를 시작하며,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다. 나를 포함한 미래의 졸업인들에게 미리 축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는 밀림의 왕이 아닌, 미래를 그려 나가는 디자이너로 살아내시라⋯.

    TS 편집팀 심사평
    
    이 글에는 치트키가 있다.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고백. 이 한 문장이 전체 글을 구원한다. 이 문장이 있음으로써 ‘밀림의 왕’ 필자의 밀린 과제와 방 청소는 ‘어른이 되기 직전 작별해야 할 것들’로 읽힌다. 마치 엄한 부모가 학교 입학한 자식 앞에서 장난감을 하나하나 치워 숨기듯, 필자는 자신만의 통과 의례를 치르는 듯하다. 밀림의 왕 탈피식.
    
    사회 진출을 한 해 남겨둔 대학 4학년생의 온갖 걱정, 지난날에 대한 후회, 이런 한탄 섞인 날숨들이 문장마다 배어 있다. 이런 구성이다 보니 글 말미의 진취적(!) 마무리가 급작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크게 숨을 들이쉬는 기분. 필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나, 읽는 이는 자기도 모르게 고나현이라는 ‘밀림의 왕’의 마지막 호흡(?)을 같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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