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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 파트너즈의 3월 #4 ‘이방인’으로 편입하다(김민경)

    TS 파트너즈 컨트리뷰터 미션 당선작 연재 #우수작


    글. TS 파트너즈 김민경

    발행일. 2023년 04월 26일

    TS 파트너즈의 3월 #4 ‘이방인’으로 편입하다(김민경)

    TS 파트너즈는 지난해 11월 첫 번째 컨트리뷰터(contributor) 미션에 참여했다. ‘지금 이 순간의 캠퍼스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기’. 이 주제로 취재 기사라 할 만한 글 한 편씩을 썼다. TS 편집팀은 그중 다섯 편을 최우수작 및 우수작으로 선정하여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기록한 ‘지금’]이라는 시리즈로 연재했다.
    
    지난달 TS 파트너즈의 두 번째 컨트리뷰터 미션이 진행되었다. 이번 주제는 ‘나의 시간표’. 자기 삶의 꽃다운 만개를 꿈꾸며 짰을 봄날의 시간표와 일과표 얘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었다. 대학생이라면 2월 수강 신청을 장렬히(!) 마치고 3월 개강을 맞은 설렘을 시간표 안에 머금어줄 거라 기대했다.
    
    TS 파트너즈가 보내온 글들을 읽으며 TS 편집팀은 반성했다. 봄이 희망의 계절이라는 인식은 얼마나 고루한 클리셰였던가⋯⋯. 이번 미션에는 유독 대학 4학년생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졸업과 사회 진출을 앞둔 불안과 걱정이 고스란히 그들의 글에 묻어났다.
    
    두 번째 컨트리뷰터 미션 당선작 여덟 편(최우수작 두 편, 우수작 및 가작 각 세 편)을 매주 한 편씩 [TS 파트너즈의 3월]이라는 시리즈로 연재한다. 그들은 어떤 시간표를 살아내는 중인지, 그들이 가 닿으려는 시간표 밖 이정표는 어디쯤일지, 잠깐이나마 그들의 시간선을 따라가 보는 거다.
    
    연재 순서
    #1 공동 최우수작 「나는 밀림의 왕이다」, 고나현
    #2 공동 최우수작 「너구리와 오베이」, 이정은
    #3 우수작 「취준생의 인턴 생활」, 강세라
    #4 우수작 「‘이방인’으로 편입하다」, 김민경
    #5 우수작 「슬기로운 디자인 생활」, 최다은
    #6 가작 「대학생이 왜 3월에 강하게? 개강해서⋯」, 김태양
    #7 가작 「‘풀 스택 디자이너’ 워너비의 시간표」, 정설빈
    #8 가작 「디자인학과 편입생의 첫 번째 봄」, 조예린

    MBTI로 따지면 나는 J 인간이라고 확신할 만큼 계획 짜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게임도 순서나 할 일이 명확하게 나와 있는 타이쿤(Tycoon,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의 통칭), 서바이벌, 농장 육성, 퍼즐, 방 탈출 류였다.

    계획 짜기를 좋아하는 만큼 실천도 열심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핑계는 얼마나 편하던가.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며 직장인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4년. 새해를 맞으면 늘 새로운 다짐과 목표를 설정했지만 곧 잊혔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 정도가 나의 최대 실행력이었다. 빈둥거림을 최대한 성실하게 실천해오던 나의 생활 패턴이 뒤집히게 된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 시대에 대면한 나의 ‘심연’

    그 누구도 예상 못한 팬데믹에 본의 아니게 취업(퇴사 후 재취업) 공백이 길어지던 중 입사한 회사 역시 사정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거래처들이 주관하는 행사 및 프로그램 진행은 취소되었고, 그 거래처의 외주 인쇄 디자인 업체에 취업한 나는 출근해서 하루 종일 웹 서핑만 하다가 퇴근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집 밖을 원래 잘 나가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타의로 못 나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내가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자이너’ 김민경은 ‘퇴근 후’ 김민경을 책임져 주지 못했다. 지나치게 많아진 개인 시간에 비례해 잡념도 늘었다.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앞에 앉아 퇴근하기만을 고대하고, 집에 가면 밥 먹고 씻고 유튜브 보다가 잠드는 것뿐인 하루가 이어졌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디자이너를 선택한 것이 과연 내 적성이 맞는 것이었을까, 지금이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지만 다른 직업이나 직무에 바로 뛰어들 정도의 뚜렷한 대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결론은 회사, 디자인, 나의 삼각관계를 너무 밀접하게 두지 말고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TS 파트너즈’ 1기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과 함께하는 2030 크리에이터 그룹 TS 파트너즈는 윤디자인그룹 폰트 관련 이슈, 의견 개진 등 월별 미션을 수행하는 활동이다. 처음에는 그저 윤서체(윤디자인그룹 서체)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해서 단순 호기심으로 신청한 것이었는데 3기까지 쭉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7년차 디자이너가 되어 있다.

    인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이 켜진 모니터를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노려보다가, 집에 와서 TS 파트너즈 미션을 위해 다시 디자인 프로그램을 여는 건 쉽지 않았다. 의뢰를 받고 지시 사항에 따르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 클라이언트 역할로 디자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TS 파트너즈 1기 때 [윤굴림 700] 서체를 이용한 포스터 제작 미션을 받고 고민 끝에 흑색과 백색으로 아주 심플한 작업물을 제출한 적이 있다.(위 이미지) 나중에 올라온 다른 파트너즈의 작품들을 보고 많이 반성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 작업물은 고뇌나 철학의 흔적이 없이 관성적으로 디자인한 티가 역력했다. 대학 졸업 직후 입사한 회사에서 “대학생처럼 디자인해봐”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는데, 왜 선임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정신이 번쩍 들며 디자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노력이 많이 녹슬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연령, 성별, 지역, 소속에 상관없이 같은 뜻으로 모이고 활동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했다. 드디어 ‘퇴근 후 김민경’에게 할 일이 생겼다.

    균형을 잡고 하고 싶은 일 시작하기

    그동안 ‘내보내기’만을 반복하던 일상에 지쳐 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영감을 불러올 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그때 더 비중 있게 관심 가지는 분야는 변하지만 기본적으로 고전이나 명작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책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데 이번 달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읽었다. 내가 한 행동이 상대에게 곡해되어 억울했었던 기억이 떠오른 한편, 반대로 내 쪽에서 어떤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상대를 덮어씌운 적은 없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없으니 지금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기로 했다. 코로나19 시국 때 못 갔던 전시장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 겸 시각 예술가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의 회고전 관람을 위해 연차를 내고 도슨트 일정에 맞춰 롯데뮤지엄을 방문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방인』과 주제 의식의 결이 어느 정도 비슷한 전시였다.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난이도가 있기로 유명했다. 도슨트의 해설과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관람해도 작품 해석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 전시작이라 할 수 있는 ‘데오도란트(Deodorant)’를 필두로, 현실에서 내가 바라보는 것들의 실체와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당연하게 느끼는 실체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다시 생겨 날 수 있다는 것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를 겪으며 느꼈던 불안정과 공허의 감정과 비슷했다. 그래서 현실을 사는 데 더 충실하고 싶어졌다. 더이상 미래의 나에게 행복과 꿈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퇴근후 김민경’, 대학생이 되다

    여행지나 일상에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열심히 촬영해놓고는 카메라 메모리 칩에 보관만 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전공자로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영상 편집 앱으로 브이로그를 만들고, 유튜브 채널 운영도 해보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에 편입한 것은 큰 결심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6년이나 영상을 공부했지만 인쇄 디자이너로 취업 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안 다루다 보니 기본적인 개념도 다 까먹은 상태였다.

    대학교에 다시 들어가기엔 나이가, 직장이, 시간이, 돈이⋯⋯ 늘 이렇게 변명을 대며 미뤘는데, 그때 편입했으면 벌써 졸업하고도 남았겠다 싶다. 진작 할 걸 후회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3학년으로 다시 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수강 신청할 때 수업도 쉽고 성적을 잘 준다는 소위 ‘꿀과목’ 위주로 할까, 내가 배우고 싶은 거 위주로 할까 하다가 ‘그래, 등록금 내고 하는 건데 내가 배우고 싶은 걸 해야 뭐라도 남지’ 싶어서 내가 배우고 싶은 과목들로 꽉 채웠다.

    ‘영상 제작 입문’ 과목은 내가 새카맣게 까먹은 영상 툴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얼떨결에 시작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데 보다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1인 미디어 기획 제작’, 취미로 하고 있는 대중 문화 예술 리뷰를 더 잘 쓰기 위해 ‘대중 문화와 영화 비평’과 ‘글쓰기’, 영상 제작이나 실습 외에도 폭넓은 범위의 미디어를 공부하고 싶어 ‘사회 변화와 미디어 트렌드’, ‘현대 광고와 카피 전략’ 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아침 출근 전에 한 강의씩 듣고 주말에 추가로 강의를 몰아 듣는다. 내 스케줄에 맞춰 유동적으로 학습량을 조절할 수 있고, 학습 계획을 짜고 수업 공지 및 학사 일정 확인 또한 내 몫이다.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어 설렜던 마음도 잠시, 중간고사와 과제들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3월 마지막 주에는 친구들과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를 관람했다. 또 ‘성남시 청년지원센터 판교’에서 진행하는 ‘2023 커리어 레벨업’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노션(Notion) 포트폴리오 제작법을 배우고 출석 수업에 참여하며 과제물을 제출해야 한다. 4월에는 새로운 서포터즈 활동과 1학기 중간고사도 시작한다.

    집에 누워서 빈둥거린다고 피곤은 풀리지 않았다. 내 취향을 찾고 능력을 키워가는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오히려 직장에서도 활력이 생겼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 다음의 나는 또 무엇을 배우고 있을지 벌써 기대된다.

    TS 편집팀 심사평
    
    현직 편집 디자이너가 대학교 영상미디어학과에 편입했다. 7년차 디자이너는 대학 3학년생을 겸하게 되었다. 디자이너 김민경은 ‘퇴근 후 김민경’을 책임져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업이 청춘의 매조지라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권한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의미로 이 글을 추천한다.
    
    결국, 내가 끝내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매듭은 없다. 청춘도 마찬가지. 나이가 어떻고 사회적 위치가 어떻든, 매듭지어지지 않은 청춘의 연장 기한은 계속된다. 청춘이란 뭐든 시작할 수 있는 계절의 이름이다. 필자는 청춘을 연장하기 위해 스스로 ‘이방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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