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4
스튜디오 ‘4월’은 아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 회사다. 대표인 김제형부터가 첫 커리어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시작했고, 미술 애호가이기도 하다. 2014년 인터뷰에서 김제형은 디자인을 “그 시대 대중을 위한 예술의 실현”이라고 정의했다. 디자인은 예술이다(디자이너는 예술가다), 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디자이너 김제형과 스튜디오 4월은 그러한 입장을 자기만의 고유성으로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인터뷰 때 김제형은 이런 말도 했다. “(어떤 작업이든) 기본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풀려고 해요.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하고 싶고요.” 디자인 좀 아는(안다고 믿는) 이들, 혹은 예술 좀 아는 이들 특유의 폐쇄적이면서 일면 유희적이기도 한 연대 의식을 그는 완곡히 사양하는 성향인 것처럼도 보였다. 디자이너 김제형이, 그리고 스튜디오 4월이 지향하는 대중 예술로서의 디자인이란 요컨대 ‘누구나 어려워 하지 않고 쉽게 접근할 만한 것’이다. 2014년의 4월은 그렇게 국내 디자인계에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afterVIEW in 2021
4월은 올해로 14년차 스튜디오가 됐다. 6년 여 전 인터뷰 때처럼 4월은 소규모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인원은 디렉터 김제형을 포함하여 그래픽 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마케터 등 총 아홉 명이다. 4월의 4월다움을 지속하는 데에는 7~12인 규모가 가장 적절하다는 게 김제형의 생각이다.
2014년 인터뷰엔 등장하지 않았던 키워드가 김제형의 입에서 나왔다. ‘문화’다. 그가 주목하는 요즘의 문화적 현상은 ‘경계 나누기의 무의미함’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기획·개최되는 여러 문화 행사들이 ‘무경계’라는 단어를 표방하고, 국내 한 대형 할인점 브랜드의 임원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소비자들을 가리켜 ‘무경계 인간 호모 옴니쿠스(homo omnicus)’라 칭하고 동명의 책을 쓰기도 했다.
시공간 제약 없이 원하는 상품을 모바일로 구매하는 행위는 이제 ‘무경계 쇼핑’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불린다. 인문학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이 ‘무경계’ 이슈는 진지한 이야깃거리로 다뤄지고 있다. 물론 디자인계에서도 논의해볼 만한 주제다. 디자이너 김제형은 스튜디오 4월의 지향점을 고민하며 “디자인 작업의 경계를 의미 없게 만들 수 있는 예술적 실험과 표현”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김제형은 여전히 4월 안에서 4월을 고민하고 있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과의 인터뷰가 2014년 11월이었죠. 6년 여 만의 두 번째 인터뷰입니다. 여전히 4월의 디자이너(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임에는 변함이 없고요. 누군가가 한 자리에 오랜 시간 있다는 건, 그 누군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퍽 이로운 일 같습니다. 이곳저곳 찾느라 헤매지 않고 그저 ‘그 자리’로 가면 되니까요. 저 역시 큰 어려움 없이 4월과 디자이너 김제형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첫 인터뷰 때와 비교하면 4월과 김제형은 무엇이 달라졌나요? 그리고 무엇이 그대로인가요?
벌써 6년이 훨씬 지났네요. 반갑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라는 단어와 조합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군요. 4월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작은 변화와 시도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래픽 디자인 범주를 조금씩 넘어 토털 디자인 회사로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디어 파사드나 영상, 앱 콘텐츠 등 다양한 플렛폼에 활용되는 디자인을 시도 중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또 4월을 운영하는 입장으로서 저 역시 디자인과 아트워크에 대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며 이런저런 고민들을 계속하고 있어요.
4월의 디자이너들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네요. 저는 물론 그대로입니다. 에디터님 말처럼 과거의 무언가는 늘 그 자리에 존재하죠. 6년 전의 디자인 작업들처럼요. 그때와 마찬가지로 4월은 ‘대중적인 디자인의 실현’이라는 소박하지만 따듯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에요.
“이제 6년 정도 됐는데 무리하게 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영업이나 비딩도 안 하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저희 색깔이 필요하신 분들이 연락을 해주시는 일이 많았어요. 디자인 회사지만 아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니까 화려하게 보이는 점도 차별되는 지점이었던 것 같고요. 아트워크 쪽으로 하는 회사도 많지만, 저희만의 특성을 살려서 보여줬던 게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렇다 보니 디자인 회사인데 공간을 부탁 받는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 4월이 하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풀려고 해요.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하고 싶고요.”
6년 여 전 4월은 ‘운영 6년차’였죠. 지금은 10년도 더 된 스튜디오가 됐습니다. ‘중견 스튜디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요. 위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 “4월이 하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클라이언트 혹은 대중의) 기대”를 10년 넘게 충족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4월 사이트의 About 페이지를 보니 구성원이 10인 내외인 듯하던데요. 굳이 분류하면 4월은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에 속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대표로서,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10년 넘게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6년 전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새삼스럽고 낯선 느낌도 드는군요. 맞습니다. 이제 스튜디오 4월은 14년이 되어갑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파트너가 되어주고 클라이언트가 되어준 모든 브랜드와 담당자님들과의 관계가 잘 유지되며 흘러온 것이지, 저희가 10년 넘게 그분들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킨 건 아닐지도 몰라요. 이런 면에서 더더욱 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현재 4월은 9인 체제 디자인 스튜디오예요. 팀 변동은 주기가 잦지는 않아도 꾸준히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대표이자 디렉터로서 느끼는 생각은, 결국 규모나 인원 경쟁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인원 관리와 지속 관리 면에서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언제나 7~12인 정도의 구성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있어요.
소규모 디자인 회사를 10년 넘게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을 말씀드리자면, 프로젝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완성도의 욕심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건 어느 회사나 지닌 접근법이며 또 당연한 것이지요. 여기에 4월만의 이유를 더한다면, 그래픽 디자인 회사 중 아트워크를 짜임새 있게 적용하고 표현/해결할 수 있는 차별화된 컬러가 아닐까 싶네요.
“보통은 일러스트레이션과 편집, 그래픽이 다 따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학교 수업 때도 비중 있게 배우는 과목인데 분리되어 있다 보니까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저희 작업은 디자인에 아트워크가 잘 결합한 모습이어서 그게 특징일 것 같아요.”
위 답변은 2021년의 4월을 위한 문장으로도 어울립니다. 스튜디오 사이트의 소개문에도 ‘아트워크’가 강조돼 있고요. “디자인에 아트워크가 잘 결합한” 4월의 최근 작업 사례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트워크 자체가 메인인 프로젝트도 있고, 그래픽 작업 혹은 브랜딩 프로젝트에 아트워크가 적용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캠페인이나 브랜딩의 키비주얼로써 아트워크를 표방하는데요. 광화문 광장 아트펜스, 소위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 에르메스(Hermès), 태블릿PC 제품 ‘갤럭시탭 S7’, 드링크제 ‘테이크파이브’, 영상통화 서비스 ‘나를(narle)’ 같은 작업들이 그 예입니다.
그래픽에 아트워크를 적용한 작업들로는 벌꿀 제품 ‘에버랜드 꿀잼’,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 매장, 가전제품 브랜드 ‘삼성 그랑데 AI’ 등이 있습니다. 4월은 브랜딩과 그래픽 작업에서 최대한 엘리먼트나 포인트를 아트워크의 일부로 바라보며 접근하는 편입니다.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마이팩 바이 뉴트리라이트(my Pack by Nutrilite)’, 일본 도쿄의 삼성전자 제품 체험형 매장 ‘갤럭시 하라주쿠’, 대한민국의 외교 정책 중 하나인 ‘신남방정책’, 뷰티 브랜드 ‘아이오페’ 등의 브랜딩 작업들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삼성 그랑데 AI Laundry Book』 제작(아트워크·일러스트레이션·편집), 2020
4월은 기본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면서, 모션그래픽·브랜딩(기획)·일러스트레이션을 외주 없이 내부에서 다 소화하잖아요. 채용 공고를 내면 지원자 수가 상당할 것 같습니다. ‘4월에 입사하고 싶다’ 생각하는 잠재적 지원자들도 많을 듯하고요. 인하우스로 진행하는 작업 분과가 여럿인 만큼, 그래픽 디자이너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나 기획자 같은 이들이 ‘입사 지원 위시리스트’에 4월을 올려놓았을 테지요.(제 주변에도 그런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질문드려봅니다. 4월이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 모습이죠?
좋은 방향으로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주체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4월의 작업과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유연함과 능동성’이 저희가 가장 먼저 보는 인재상의 조건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개인의 ‘성향’인데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디자이너는 모든 디자인 회사가 바라는 인재겠죠?(웃음)
물론 포트폴리오도 중요합니다. 작업을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잘 짜인 구성에 간결하고 잔상이 남는 몇몇의 작업을 부각한 포트폴리오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특히 아트워크를 밀도 있게 표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디자이너라면, 회사가 나서서 여러 협업의 기회를 제공하여 디자이너 개인의 계발을 이끌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처음 4월을 만들 때부터 제가 슬로건처럼 갖고 있던 생각이 있어요. 디자인에 대한 해석을 개인적으로 해본 건데 ‘디자인이란 그 시대 대중을 위한 예술의 실현이다’라고 보거든요.”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나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대중에게는 어떤 ‘예술의 실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생각 자체는 여전히 변함없습니다만, 시간의 흐른 만큼 약간의 방향성 변화는 있는 것 같네요. 스튜디오 초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예술의 실현’보다는 좀더 기업과 브랜드 쪽으로 시선이 기울어져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작업과 캠페인의 경험자는 대중, 즉 사람이잖아요. 따라서 디자인은 문화로 남겨집니다.
이제 예술의 실현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새 제가 주목하는 지점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경계’입니다. 다소 러프하게 표현하면, 경계를 나누는 행위 자체가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 작업의 경계를 의미 없게 만들 수 있는 예술적 실험과 표현’을 고민합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만 봐도 그러한 무경계 예술 행위를 펼치는 주체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작업과 철학을 통해서 저 또한 디자이너로서 많은 자극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기도 하죠.
적잖은 기업들이 15주년, 20주년을 즈음해서 ‘뭔가 특별한 것’을 진행하잖아요. 비전 선포식, 사사집 출간, 브랜드 리뉴얼 등등. 십수 년간의 행보를 되짚으면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재정비한다는 의도일 텐데요. 4월은 어떤가요? 4월은 어떤 미래로 향하고 있나요? 그리고, 디자이너 김제형 개인은 어디로 나아가는 중인가요?
4월은 지금 다섯 번째 워크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워크북이 될 듯하네요. 4월 워크북 시리즈는 우리의 작업들을 책이라는 매체 고유의 감성과 특질에 담아 정리해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미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워크북의 정신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디자이너 김제형 개인의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3년 전 뉴욕 여행 겸 첼시에서 개인전을 연 적이 있어요. 그 뒤로 소소하게 개인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데, ‘스트리트 컬쳐’에 가까운 작업입니다. 아무래도 ‘4월’이 아니라 ‘김제형’의 작업이기 때문에, 스튜디오 작업에선 표출하기 어려운 과감성이나 위트, 다크한 면을 고루 담아냅니다. 실크스크린 캔버스 작업, 옷, 오브제, 영상, 포스터 등으로 표현해보고 있는데요. 올해 안으로는 제 개인 브랜드와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활동 범위를 더 넓혀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