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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박영하

    “전혀 다른 분야를 접목할 때 나오는 우연적 결과에 관심이 많아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8월 16일

    그래픽 디자이너 박영하

    큰 키에 훤칠한 마스크, 게다가 강렬한 꽃 남방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사람이라니. 처음엔 영화배우인가 했다. 잘 생긴 외모만큼이나 그의 작업은 눈에 띈다. 화려하면서도 유려한 색감, 단순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형태, 해체와 반복을 통한 독특한 패턴. 그러나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누락된 빈 공간에서 숨겨진 형태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이슈가 되고 있는 세계적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있는 뉴욕 본사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박영하를 만났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떠세요?

    외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점이겠지만 가끔은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외국인 노동자로서 일을 하다 보니까(웃음). 제가 뭘 해도 그곳에선 외국인이니까요. 하지만 뉴욕은 다양한 문화가 녹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도 많아요. 새로운 기회가 늘 주어지는 곳이기도 하고요.

    최근에 하신 활동은 어떤 것인지 소개를 좀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한 작업인데 미국 동부 메인 주에서 열리는 애틀랜틱 뮤직 페스티벌에서 아트디렉터를 맡은 것이네요. 보통 7월 8일부터 8월 4일까지 하는데 미국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 중에서도 규모가 커요. 맡은 지는 올해로 3회째인데 이벤트 브랜딩부터 포스터, 프로그램까지 총괄을 맡고 있어요. 많은 음악인을 만나서 소통하고, 페스티벌의 음악적인 면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이 즐거워요.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정서적으로도 치유해주잖아요. 어떤 것보다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죠. 애틀랜틱 뮤직 페스티벌도 이런 모토로 열리고 있어요.

    이력이 화려하세요. 사디(SADI)에 파슨스에 카림 라시드까지.

    별로 화려하진 않은데…(웃음). 사디엔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분들도 많이 오셔서 그때 배운 것이 크게 도움이 됐어요. 과학이건 인문학이건 스토리텔링이건 예전에 했던 것들을 디자인적으로 극대화하거나 활용을 잘하시더라고요. 전 디자인 쪽으로만 생각하니까 다른 쪽은 생각을 잘 못했는데 함께 작업하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디자인이나 미술, 예술 쪽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디자인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와의 접점을 생각하다 보면 우연히 재미난 결과가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외국에서 잡을 잡고 일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동경의 대상이 될 것도 같은데

    해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외국에서 일한다고 하면 굉장히 크게 생각하고 좀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전 똑같다고 봐요. 어차피 디자인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회사에서도 유창한 외국어실력보다 전문용어만 잘 통하면 되거든요(웃음). 물론 회의할 때나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나눌 땐 영어가 필요하지만 그건 두 번째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신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직접 지원을 해도 돼요. 저도 영어 잘 못 하거든요(웃음).

    Atlantic Music Festival 2013
    SeaAra Stationery System
    개인 명함
    그는 관점을 바꿔서 보는 일에 익숙하다. 창의적인 것을 위해 관점을 바꾸라는 말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자신의 심리적 시각을 바꾸라는 것과 물리적인 앵글을 바꿔서 보라는 것. 새로운 관점을 갖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몸에 익숙한 습관을 벗어던지고 구부리고 부분을 빼고 더하고 회전시키면서 자신의 작업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단순한 스킬이 아니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파고 또 판다. 자신의 경험과 한계를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나타날 때까지. 

    지금까지 하셨던 작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아직도 100% 만족하는 작업은 없어요(웃음). 그런데 대학원에 다닐 때 했던 설치 작업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인도의 영적 지도자 중 한 분이 쓰신 ‘희망’이라는 시가 있는데 희망이라는 것은 사람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어떤 중간의 어떤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거든요. 희망이 있으면 그 줄을 잡고 한 단계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는, 절대자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는 그분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실크스크린 작업을 했어요. 시가 10행인데 열 칸짜리 계단에 한 줄씩 썼죠. 한 칸씩 올라가면서 시를 읽게 되는 거예요. 엄청나게 큰 실크스크린이어서 완전 노동이었어요(웃음). 그런데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오히려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어요. 순수 미술을 하시는 분들의 열정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카림 라시드사는 어떻게 지원을 하게 되셨나요?

    카림 라시드는 워낙 유명한 디자이너니까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스타일이 워낙 세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전 그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제 작업도 비슷한 면들이 많았고요. 그분은 산업디자인으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래픽 디자인 등 여러 가지를 하시더라고요. 저도 거기까진 잘 몰랐는데 대학원을 마칠 때쯤 제 와이프가 거기 지원해보는 게 어떠냐, 왠지 색깔이 맞을 것 같다(웃음) 추천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산업디자인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막상 찾아보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최근엔 한국 클라이언트들이 많아졌는데 제가 한국말이 되니까(웃음) 프로젝트를 많이 줘요.

    착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운전을 하다 보면 고속도로에 사인들이 길게 되어 있는데 운전석에서 보면 그냥 일반적인 글씨로 읽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특정한 앵글에서 보이는 것들이 되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예를 들면 이것도 착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 LOVE라는 글자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반으로 잘라 올리면 하트가 생기죠. 이런 식으로 자르고 좌우대칭을 하고, 해체를 해나가다 보면 흥미로운 작업이 나와요. 생각하지 못했던 형태가 나오기도 하고요.

    색감이 화려한 작업이 많은데 카림 라시드사의 분위기와 다른, 자신의 선호이기도 한가요?

    알록달록하고 컬러풀한 것들을 카림 라시드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막상 작업을 하니까 카림 라시드도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자기랑 맞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카림 라시드가 핑크를 좋아해서 많이 쓰거든요. 저는 의도적으로 블랙을 많이 써요. 사실 카림 라시드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인데(웃음). 하지만 카림 라시드는 디자이너를 최대한 존중해요. 디자이너에게 온전히 맡기죠. 그런 자유가 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시 ‘Hope’ 설치작업
    [좌] Designnet Magazine 12주년 기념호 표지 [우] Mouse + Duck = Bat
    디자이너나 예술가는 재능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은 사람이다. 어떤 재능이 있다는 건 그만큼 나눌 것도 많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지닌 재능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조건 없이 귀한 선물을 받은 만큼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을 지니고 그 선물을 다시 나눠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재능이 많은 이 창조적인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는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작업도 그렇고 많이 화려하세요(웃음)

    좀 많이 튀죠?(웃음)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예전엔 머리도 이상하게 많이 했어요(웃음). 저건 디자이너인지 겉멋만 든 애인지 이상하다는 분들도 계셨는데(웃음). 그런데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 자체가 디자이너이고 예술가라면 작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것들을 좀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항상 튀게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성향인 것 같아요. 외모적으로든 작업적으로든 표현하고 싶고 목소리를 내고 싶거든요.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해내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전혀 다른 분야를 접목했을 때 나오는 우연적인 결과에 관심이 많거든요. 착시현상 같은 것도 흥미롭고요. 제 성격이 많이 유쾌하고 엉뚱해서인지도 모르겠는데(웃음). 형태적인 면에서 자꾸 다른 걸 보려고 해요. 배트맨에서 도널드 덕을 보기도 하고(웃음). 명함도 좀 구부려야 제 연락처가 보이는데 다들 재미있어 하세요(웃음). 최근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전시가 있었는데 명함을 드렸더니 받자마자 바로 틀더라고요. 오오, 역시 대가라고 속으로 감탄했어요(웃음).

    후배가 되는 젊은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현실은 그렇게 무섭지 않거든요(웃음). 하지만 지금 막 졸업한 학생이라면 자신의 포트폴리오는 준비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준비되어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와요.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놓는 게 중요해요. 외국 회사라고 해도 비슷해요. 외국이든 어디든 좋은 건 좋은 거예요. 누가 봐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자기가 원하는 회사가 있다면 용기를 내서 그 회사에 직접 지원을 해보세요.

    앞으로 국내에서 활동할 계획이나 현재 작업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9월에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그룹전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예전에 제가 했던 작업 중에서 유럽 연합기를 디자인했던 것이 있어요. 공모전이었는데 열두 개 중 하나로 선택되어 암스테르담에서 전시를 했어요. 그 인연이 닿아서 이번엔 남북 단일기를 하네요.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현재 진행 중이고요. 기획하신 분이 나중에 북한 쪽 디자이너도 참여해서 공동으로 남북한 전시를 하면 어떨까 하시더라고요. 판문점이나 DMZ에 걸어둬도 좋을 것 같고요. 기회가 닿는 대로 국내에서도 자주 찾아뵈면 좋겠습니다.

    유럽 연합기 디자인 ‘Europtimism’
    Quarterhaus Typeface
    Wedding Invitation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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