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이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곳이라면, 화성공장은 쇠와 씨름하는 대장장이의 노동과 젊은 아이디어가 만나 새로운 철학(?)을 생산해내는 공장이다. 순간포착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 진지한 농담, 혹은 스토리텔링이 되어 도구로 만들어지고 오브제로 태어나는 철물공장인 것이다. 그들은 쇠의 물성을 직설화법으로 보여주지만 해학적이고 모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들을 만나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달달 외워도 끝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화성이 갑자기 친근한 행성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불과 망치와 싸우다가도 짬짬이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을 줄 알고, 여느 글쟁이들 못지않게 글도 잘 쓰는 공장장이 지구인들을 잘 설득한 결과다.
“…‘현대판 대장장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뭐랄까, 대장장이는 잊혀진 과거의 전통이며, 금속공예는 현대적인 예술창작의 범주라는 이분법적 갈림길에 서있는 듯한 어정쩡한 느낌 말이다.”
〈2010 공예트렌드페어〉 주제전을 앞두고 블로그 ‘MARS FACTORY’에 남긴 글
현대판 대장장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붙는데 그것이 불편하다면 어떤 수식어로 불려지길 원하시나요? 제작자? 공예작가? 공장장? 혹은 쇠 전문가? 현재의 주소는 어디라고 보시나요?
현시대 사람들이 감상적인 측면에서 전통의 부활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제가 스스로 대장장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어찌 보면 물질재료를 다루는 작업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인거죠. 단 몇 년이라는 짧은 경력을 가진 나 같은 근본 없는 사람한테 대장장이라고들 하시니…. 대장기술이 그렇게 몇 년 만에 후딱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거든요. 제가 만들어낸 것들이 외형적으로는 대장간 철물이니까 오해를 살만한 일을 해온 건 맞습니다만, 사실은 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달수단으로 대장기법을 차용한 겁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저 스스로 딱히 어울리거나 맘에 드는 수식어를 골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제가 명함을 만들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한 오해는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무겁고 단단한 쇠를 뜨거운 불에 달구고 두들기며 연단하는 작업은 다른 어떤 금속공예 분야보다 물리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이 일을 하시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실제로 제 작업의 완성단계까지의 과정을 나눠보면 100이라 쳤을 때, 40은 사진을 찍는 시간이고, 또 40은 글을 쓰는 일이며, 한 20정도가 쇠를 만지는 시간으로 나눠는데 그 각각의 유기적인 과정(혹은 공정)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들이 분산, 치유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글을 쓸 때 받게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쇠를 다룰 때 육체노동의 희열로, 육체적인 피로가 쌓이면 그것은 다시 사진을 찍을 때 의 감상적 모드에서 그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식인거죠.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어 별다른 어려움은 없습니다.
화성공장이라는 작업실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화성’이라는 이름이 가진 중의적 의미와 함께 공장이라는 용도적 표현을 붙이신 이유를 소개해주세요.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공간적인 설정이 필요하긴 했었습니다. 당시 제가 경기도 화성에 있었는데 한참 신도시건설을 위해 땅을 대규모로 갈아엎는 삭막한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화성’이라는 행성이름과 지역명 으로서의 ‘화성’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져서 들어왔거든요. 그것과 ‘공장’이란 단어의 조합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제 작업실의 모습이 뭔가 예술가의 작업실 분위기보다는 산업공장의 형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화성공장을 세운 이유는 미술을 고집하면서 앓게 된 언어장애를 극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쇠를 두드려 왔다.”고 고백하신 적이 있는데, 순수미술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탈피하고 싶었다는 말씀인가요? 혹은 예술가들의 맹목적인 독선의 위험성을 스스로에게 경계하고 싶으셨던 것인가요?
아티스트의 독특한 사유나 발언들이 맹목적이거나 독선적일지라도 적어도 장르 안에서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장르 밖으로 들고 나왔을 때 답답함을 느껴본 건 사실입니다. 예전 저의 경우, 미술언어를 습득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좌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주관적인 내용물을 만들어 갤러리라는 한정된 장소에 셋팅해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다음 생활언어까지 동원해서 객관화시키려고 애를 쓸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소통의 부재에서 받게 되는 개운치 않은 느낌 같은 것이었죠. 그런데 ‘화성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목적으로 한 도구다’라고 설정했던 당시, 미술장르 밖으로의 확장성 측면에서 나름 유연한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는…주변의 지인들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철물들이나 재치 있는 반어법적 의미를 내포한 철물들이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에서 작업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2002년부터 그가 화성공장에서 제작해온 철물들은 기존 금속공예나 철조각의 어느 범주에도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의 철물은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형태를 구상하고, 헌정할 사람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애정 어린 헌정품이다. 그의 철물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철제 기물들이 갖지 못하는 심리적 기능적 공백들을 역설적인 어법으로 채우고 있다. 철물이 기능상 건물이나 인테리어의 필수적인 부분이자 부자재로 적합하다는 개념은 그것이 그렇게 사용될 때에만 적용된다.
미술평론가 권영진, 『경기미술 2008』(경기문화재단) 중
결단 작두, 주정뱅이 갈고리, 돈갈퀴, 파스타 계량고리 등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위트있게 조형한 도구 시리즈들을 보면 따뜻한 시선과 예리한 관찰력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캐릭터를 은유적으로 담는 대신 쓰임새는 없는 유희적 도구를 만들 때와 용도와 기능이 분명한 실제 도구를 만들 때 임하는 자세나 느끼는 보람은 어떻게 다른가요? 닭이나 개, 고양이, 토끼 등 우화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동물작품들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사람들과 친숙한 동물들을 모티프로 하고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작가적 상상력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닿기 때문일까요?
얼마 전에 제가 기르던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 논 적이 있습니다. 뭐, 이런 저런 동기로 간간히 동물형상을 만들게 되는데 작업내용에 상관없이 관객의 층위가 훨씬 다양해지고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해 오는 것 같습니다.
또 2007년 4개월여에 걸쳐 체력이 고갈되도록 매달렸던 대작 ‘사천왕상’이 쇠를 자르고 벼르고 용접하는 과정을 통해서 전혀 새롭게 해석된 작품으로 완성되었을 때의 희열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만…?
당시 저는 스스로 쇠를 다루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과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사천왕상 조상작업을 기점으로 무참히 꺾이게 됐죠. 철 작업 이란 게 우선 작업자가 재료의 강한 물성을 제압하고 들어가야 가능한데, 일단 규모면에서 물리적인 한계를 체험했고 개인 작업을 넘어선 종교미술의 특수성과 공공성에 대한 책임감도 제 능력에 비해 무거웠습니다. 힘든 시간 이었지만 여러모로 자기성찰을 하게 해준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실 가는 길에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간판들을 관찰했다. 저건 마치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알록달록한 곰팡이 같다. 시에서 돈을 들여 나무를 심고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잘 다듬어도 여전히 도시풍경이 시끄러운 이유를 이제야 정확히 알겠다. … 난 뭘 만들더라도 크고 요란한 건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10 간판투성이전〉을 앞두고 블로그 ‘MARS FACTORY’에 남긴 글
‘융합’이 모든 분야의 화두에 있는 때에, 쇠 작업의 유연성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이 창작작업을 하는 모두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축가의 가구전’이나 ‘간판투성이전’ 등 다른 분야와의 협력작업을 하시면서 어떤 경험을 하시게 되었고, 어떤 소득을 얻으셨나요?
개인적으로 ‘철은 재료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전통 목가구나 건축물에서의 경첩처럼 전체를 이루는 한 부분일 때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분야의 작가들과의 협업은 즐겁습니다. ‘건축가의 가구’전이 그런 사례고, ‘간판투성이’전과 같이 분야간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기분 좋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회화작업을 하는 이진경 씨와 닭을 주제로 협업작업을 해봤습니다. 제가 판금기법으로 철작업을 하고 그 위에 이진경 씨가 페인팅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었는데 기대했던 대로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강병인 선생의 캘리그래피는 한글의 상형성으로의 확장에 대한 고민이나 조형적 실험이 이미 완성된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강병인 선생께서 화폭에 쓴 ‘꽃’과 ‘봄’은 이미 스스로 완벽하게 일어서 있었습니다. 제가 한 역할은 그것을 쇠의 물성을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했을 뿐입니다.
헤이리에 만들어놓으신 카페 ‘코피코피’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엿보게 하는데요, 화성공장을 통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실험과 도전이 이어질지 기대하게 됩니다. 혹시 이미 진행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요?
화성을 떠나 헤이리에 정착한지가 2년이 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저는 권혁 씨가 운영하는 ‘코피코피’라는 로스터리 커피숍과 공간을 공유하게 됐는데, 모든 인테리어가 작가 1인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된 독특한 컨셉을 갖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쥬얼리 디자이너 이주연 씨와 함께 작업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소재를 다뤄온 만큼 협업을 통해 얻게 될 중성적인 느낌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