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인 에머슨이 말했다. 2세기가 지난 지금, 조금 다르게 생각한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은 거대한 딴짓이다.' 사실 '딴짓'과 '실험'은 조금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자신의 원래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딴짓'도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거대한 딴짓'이라고 말하며 인생을 실험하는 1인 창작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의 오세범. 그의 세상을 채우는 딴짓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내가 소개하는 나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어딘가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 그게 저의 가장 큰 정체성 같아요. 현재 1인 프로젝트 ‘딴짓의 세상’을 통해 디자인, 영상, 기록 작업을 하고 있으며 친구들과 함께 만든 ‘사소한 스튜디오’의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스튜디오는 어떤 활동이었나요?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에 학부 졸업하고 같이 석사 과정 하던 친구들이랑 했던 활동이에요. 시작은 학부생 때 교수님이 안 된다고 했던 아이디어를 다시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약간 통쾌한 것도 있고, 우리끼리 ‘아 이거 만들고 보니까 더 좋은데’ 하는 그런 것도 있었죠. 지금은 취직한 친구들도 있고 해서 잠시 활동을 멈춘 상태입니다.
현재 활동 중인 ‘딴짓의 세상’에 대해 알려주세요.
딴짓이라는 건 당장 해야 하는 것도,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꾸준하게 하는 거잖아요. 저는 실제로 이런 딴짓을 엄청나게 좋아하는데다가, 딴짓으로 하는 작업들이 저 자신을 더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이름으로 이렇게 오래 작업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름의 발칙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딴짓의 세상’으로 어떤 활동을 해오셨나요?
2010년에 학부 4학년이었는데, 자기 자신을 브랜드하는 과제가 있어서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어요. 실제로 시작한 건 2011년에 이라는 책을 만들면서 필요해져서 사용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 이름으로 출판이나 영상, 디자인 같은 해보고 싶었지만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작업은 매일 조금씩 누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요.
예를 들어 <졸업작품 익어가는 시간>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70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대신에 매일 1분짜리 다큐멘터리를 70일간, 70편의 시리즈로 만든 ‘초단편 다큐 시리즈’입니다. 독립출판 작업도 하고 있는데, 사실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작업이에요. 방금 이야기한 과 산티아고를 여행하고 그 당시 쓴 일기를 정리한 <31days 807.3km>를 쓰고 디자인했고, 이창욱 씨의 음악여행기 <기타는 왜 들고 다녀?>의 디자인 작업을 했습니다.
본인 포트폴리오 홈페이지를 보면 ‘딴짓의 세상’으로 작업한 것이 있고 아닌 것도 같이 섞여 있더라고요.
‘딴짓의 세상’으로 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제 돈을 들여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100% 재미를 위한 활동의 결과물입니다. 그밖에 학교에서 한 프로젝트나, 의뢰를 받아서 하는 일에는 제 이름으로 나가고요. 딴짓의 세상 이전에 했던 작업도 있네요.
현재 어떤 작업 중인가요?
독립출판물 <31days 807.3km>와 연계된 영상 시리즈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친구들을 인터뷰해놓고 묵혀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들을 지금 꺼내서 그때를 돌아보는 인터뷰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3년의 시차를 두고 한 사람과 진행한 2번의 인터뷰를 1장의 포스터로 정리하는 <인터뷰를 위한 포스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위한 포스터>는 2010년의 인터뷰를 다시 쓰는 거잖아요. 그럼 원래는 어디에 쓰려고 했던 인터뷰인가요?
사실 제가 뭘 만들어야겠다 하고 하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많아요. 인터뷰할 당시는 졸업학년이라 졸업작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졸업작품 익어가는 시간> 영상을 기록하던 바로 그 때입니다. 제가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공대로 유명한 카이스트에서 디자인을 공부한다고 하면 일반적인 선택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친구들이 왜 여길 왔고 또 졸업하면 무엇을 할지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제대로 듣고 싶어서 캠코더로 촬영하고 인터뷰를 했었는데, 졸업전시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그냥 묻어놨죠.
그랬다가 이제 보니까 학교에 남아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도 있고 직장을 다니거나 의대로 간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했던 인터뷰를 같이 공유하고 그때랑 지금이랑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죠.그러면서 영상보다는 인쇄물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독립출판물중에는 인터뷰를 엮은 책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것중에 잡지 ‘FACE’나 ‘무언가 하려고’ 같은 책은 인터뷰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목적이 없이 쉽게 인터뷰를 엮는 책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 것을 굳이 여러 장의 책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하는 <인터뷰를 위한 포스터>는 인터뷰 내용을 한 장의 포스터에 배치하고 한 열 부 정도만 뽑아서 인터뷰 대상자랑 저랑 나눠 가져서 각자 알아서 배부할까 해요. 사적인 내용이니까 웹에 올릴 필요도 없을 것 같고.
그러면 책의 형태로 나오지는 않는 건가요?
그냥 접혀 있는 포스터의 형태가 될 거예요. 처음에 했던 인터뷰는 7명이었는데, 다시 인터뷰한 건 한 명이거든요. 그런데 7명 전부 다 새로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모았을 때 의미가 있는 이야기가 되겠다 싶으면 하나로 엮어낼 수도 있겠죠. 지금은 그냥 따로따로 포스터의 형태로 만들 생각이에요.
‘딴짓’으로 한 작업을 보면 특히 기록적인 측면이 강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기본적으로는 그런 유형의 작업을 좋아해서 그래요. 이창욱 씨의 <기타는 왜 들고 다녀?>도 그분이 여행하면서 썼던 생생한 기록이 좋아서 했던 거고요. 그리고 이런 작업들이 학교에서 인정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몇 주 동안 온종일 그것만 붙잡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일 30분이나 한 시간씩 하는 것을 모아서 뭔가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러면 실제로도 딴짓의 세상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작업을 하는 건가요?
네. 영상을 만든다고 하면 하루에 30분이나 한 시간씩 해서 만들고 책은 재미있다 보니까 도피성으로 더 오래 붙잡고 있는데, 그래서 방학 때 몰아서 하기도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처음으로 작업한 책인 입니다. 혼자 힘으로 책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그걸 통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즐거웠습니다. 책을 만들고 독립출판물 서점에서 판매를 할 때 여행기는 워낙 많아서 잘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나름 각오를 했는데 그래도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덕분에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나 책 만드는 분들을 알게 되기도 했는데 그런 것도 저한테는 큰 자극이 되었어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재미.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굳이 하는 건데 스트레스나 일이 될 것이라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작업에 들어가는 자의식을 줄여나갈 것. 혼자 하는 작업은 자의식의 폭주로 이어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작업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예전에는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한테 잘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는 그냥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구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것에 일희일비 할 수밖에 없긴 해요. 그래도 그런 것보다 좀 더 나 스스로 보람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요즘에는 내 아이디어,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풀어놨을 때 생각한 것이 잘 구현됐다고 스스로 느끼는 지점에서 뿌듯함을 느끼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에만 좋아하다 보면 계속해서 칭찬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그냥 공중에 떠다니는 것처럼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