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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스튜디오 ‘홍단’ 반윤정

    옛 간판글씨를 수집하고 서체로 곱게 단장하는 ‘홍단(紅丹)’


    인터뷰. 황소영

    발행일. 2013년 02월 28일

    디자인 스튜디오 ‘홍단’ 반윤정

    벌써 이름부터 마음이 동했다. 멋들어진 디자인 스튜디오 이름이 즐비하건만 그것 중 유난히 내공이 세다. 이름으로 세긴 각인은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옛날 간판에 쓰인 글씨를 수집하고 기록하여 홍단만의 글씨로 다시 만드는 작업. 그것도 한 달에 한 번씩. 눈길체, 습지체, 모두리체, 구판장체, 일취월장체 등 그 이름도 얼마나 정겨운지. 강렬한 첫 인상 넘어 속 깊은 다정함이 비치는 홍단, 반윤정 대표를 만났다.

    홍단이라는 이름이 매우 예뻐요. 어떻게 짓게 되셨어요?

    홍단은 ‘붉게 단장하다(紅丹)’는 뜻이에요. 화장의 마무리로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는 것처럼 붉게 치장하면 ‘화장했다’는 느낌을 주잖아요. 저희는 디자인 회사니까 우리의 결과물을 아름답게 보여주자는 의미가 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그렇지만 속에 품고 있는 것도요.

    홍단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나요?

    저희는 주로 공연·미술 쪽 아티스트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그동안 일을 일부러 고르려고 한 건 아닌데, 홍단하고 너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피하는 때도 있었죠. 일이라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보람과 성취감을 얻기 위해 홍단의 뜻에도 맞고 의미도 있는 일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다행히 잘 유지해 왔네요. 기업 사보도 하는데, 브로슈어가 아니니까 기업의 색깔을 대변하는 느낌보다는 아직은 저희 느낌을 더 끌고 가기는 해요. 만약 기업 브로슈어를 하게 되면 홍단이 그 일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는 하죠.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도예과를 나왔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수채화를 계속했는데, 당시 제 실력으로는 수채화로 대학을 못 가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는 서양화과 하나밖에 없었으니까요. 어찌어찌 해서 도예과를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든 거예요. 이 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무렵 제가 4학년이 됐을 때 매킨토시가 세상에 나온 거죠. 우연히 접한 컴퓨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후에 잡지 회사를 들어가 편집 디자인을 했고, <월간 미술> 아트 디렉터를 하면서 홍단을 만들게 되었어요.

    ▶ 2011 정가악회 세계문학과 만나다
    ▶ 2011 정가악회 연차보고서

    홍단을 꾸려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요. 처음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악당이반이라는 옆 사무실 사장님 소개로 국악 연주하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거든요. 이화여대 곽은아 선생님 연주회 포스터가 첫 작업이었네요. 이후에 국악인 한 분 한 분 소개를 받다 보니 CMEK, 정가악회, 공명 등의 전통음악 연주팀 작업이 오고 다음에는 국립극장, 문화예술위원회, 국립국악원 등 국가 기관의 일도 맡게 되었어요. 특히 정가악회와는 2006년에 처음 만났거든요. 초반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팀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떤 공연에서보다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사회적 기업으로까지 성장했죠. 정말 멋있어졌어요.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서 그런지 뿌듯해요. 국

    악 말고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도 작업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아티스트 중에도 디자인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도예과를 나온 이유도 있지만, 주변에 공예가들을 보면 작품을 만들고 그걸 포장해서 내보내는 방법이 정말 서툴러요. 작품은 훌륭하지만, BI 같은 것들이 허술하면 소위 말해 안 팔리죠. 뜻밖에 그런 아티스트들이 많아요. 공예가, 목수, 화가들…. 전 그런 분들을 도와 드리고 싶어요. 이무규 선생님이라고 지방에서 좋은 나무로 작품 만드는 목수분이 계시는데, 다음 주에 만나서 이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저의 재능으로 그분들의 작품이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잘 되면 나중에 테이블 하나 만들어 주시려나?(웃음)

    ▶ 공명 스페이스 뱀부 공연 홍보물
    ▶ [좌] 음악극 집단 바람곶 음반  [우] 사석원 하쿠나마타타 전시 도록

    홍단 프로젝트 ‘손 글씨를 다시 쓰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요즘 여기저기서 주목받고 있으니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컴퓨터가 없었을 때에는 다 자기만의 손 글씨체가 있었잖아요. “쟤는 글씨체가 참 예뻐.”, “누구는 글씨를 참 잘 써.” 이런 것. 그런데 이제는 사인 정도만 하니까 자기 서체가 없어요. 그래픽 디자인 회사도 마찬가지죠. 자기 서체를 가지고 디자인하는 회사는 거의 없어요. 저는 홍단만의 서체가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그걸로 디자인을 해 나갈 수 있다면 다른 회사와는 조금 다른 개성 있는 작업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거죠.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정말 사소하게 시작했어요. 우리 회사가 가회동에서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요, 옛날에 제가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사에 다녔거든요. 그게 성북동에 있었죠. 한 10년 만에 이 동네에 다시 와보니 예전에 오가며 봤던 간판들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00공업사, 00피아노, 세븐일레븐…. 정말 신기했어요. 그때 마침 회사가 5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만의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옛날 간판들이 눈에 띈 거죠. 당시 청계천 간판 재정비 사업으로 청계천 변의 간판들이 획일적으로 마치 패턴처럼 바뀌었는데 돈은 돈대로 엄청 쓰고 예쁘지는 않으니 디자이너로서 정말 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간판들을 모아서 기록하고 발전시켜 홍단만의 글씨체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작업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네요.

    ▶ ‘손글씨 추억하다’
    [위부터] 2010 08서울 번동_9월방앗간체, 2009년 서울 을지로에서 찍은 6월 시창유리체, 09 07 서울 성북동(손글씨를 추억하다의 시작),
    2010 9월서울 용두동-1월 눈길체, 2012 서울 순화동-10월 불불불체, 2012 09 부산 국제사금은방_11월 국제체

    주로 어디에서 많이 찍으세요? 왠지 지방에는 아직 옛날 간판이 많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서울이 가장 많아요. 왜냐하면, 오래된 상업 지역이 많기 때문이죠. 을지로나 용두동은 오래된 공장 지역이나 개발이 안 된 구도심이 조금 많거든요. 반면 지방은 오히려 변화가 더 빠르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상업 지역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요. 광주광역시에 양림동이라고 100년 된 동네가 있는데 그곳은 그래도 옛날 간판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다른 동네는 신도시 개발이 돼서 찾아보기 어려워요. 완전 시골은 간판을 아예 체계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없고요. 많이 수집하고 싶은 데 생각만큼 안 되네요.

    글씨 수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창신동이나 보문동에 가면 오래된 간판이 많아요. 마음에 드는 간판 글씨가 있길래 사진을 찍고 주인 아저씨께 말씀드렸더니 찍는 건 허락하나 인터넷에는 절대 올리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냥 싫다고요. 그걸 가지고 있다가 너무 아까워서 1년 후에 또 찾아갔어요. 그때는 다른 간판도 어느 정도 모였고 해서 그걸 페이퍼로 만들어 갔죠. 그리고 아저씨께 사라지는 간판이 아쉬워서 찍고 기록하려는데 인터넷에 올리면 정말 안 되겠느냐고 다시 말씀 드렸더니 그제야 허락하시더라고요. 이제 이 집도 곧 사라질 거라고….

    옛 글씨에 어떤 매력을 느끼나요?

    을지로에 가면 간판에 손으로 쓴 고딕체, 명조체 같은 붓글씨가 많이 있어요. 꼭 한 명이 쓴 것처럼요. 알고 보니 불과 80~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간판 글씨를 써주는 직업이 있었대요. 글씨만 잘 써도 생활이 가능했었던 거죠. 그런데 시트지를 오려서 만든 옛날 간판을 보면 한 사람이 다른 가게의 간판을 작업하더라도 조금씩 그 모양이 달라요. 각 가게의 개성에 맞게 새롭게 재단하고 어떤 경우에는 캐릭터를 그려주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그분들도 일종의 디자이너라고 보면 되죠. 그런데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각양각색의 재미있는 글씨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막상 찾다 보니 독특한 글씨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거예요. 고민 끝에 옛날 간판 글씨 중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자음 모음 한 획이라도 찾는다면 그것을 발전시켜 새로운 글씨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되면 저희 생각이 더 많이 들어간 글씨가 만들어지겠죠. 사람들이 생각한 것을 저희가 디자이너로서 다시 한번 발전시켜 비틀어보고 표현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발표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 그런 것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손글씨 다시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월 눈길체, 9월 방앗간체, 11월 국제체, 10월 불불불체

    홍단은 궁극적으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가요?

    좋은 에너지를 가진 회사였으면 좋겠고 사회 속에서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회사였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기부를 하기보단 디자인으로 돕는 게 더 의미 있겠단 생각도 들고요. 사실 잠시 후에 미혼모를 지원하는 단체와 미팅을 해요.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공예 쪽으로 기술을 전달하고 자립할 힘을 키워 주는 일인데, 그것에 대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와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좋은 일을 통해 많은 분을 적극 돕고 싶죠. 회사가 지금처럼만 유지된다면 저는 큰 욕심 없어요. 직원들 월급 힘들지 않게 넉넉하게 줄 수 있는 정도. 제가 우리 직원들에게도 늘 이야기하는데, 학교 다닐 때 학교 다니는 거 너무 싫잖아요. 근데 회사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최소한 회사 가서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직원들도 즐기면서 다닐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올해 홍단은 어떤 일들이 계획되어 있나요?

    홍단만의 프로젝트 ‘손 글씨를 다시 쓰다’를 매달 계속하는 것. 땡스북스랑 더북스에 저희 글씨가 담긴 달력을 보내는 데 반응이 좋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거 말고도 아까 말씀드렸던 특이한 획 하나에서 확장시켜 글씨를 만들어 더 많이 보여 드리고 싶고, 그거 차곡차곡 모아서 내년 1월 정도에 전시회 여는 것. 그게 가장 큰 계획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정말 할 수 있을까 겁나기도 하는데, 자꾸 이렇게 떠들어서 실행되도록 해야겠네요.(웃음) 저희 로고를 보시면 빨간색으로 된 둥근 모양이 있는데, 그게 배아를 상징해요. 해마다 새롭게 싹을 틔우는 듯한 느낌으로, 그렇게 항상 깨어있도록. 그게 바로 우리 회사의 모습이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모습이지요.

    ▶ 아름지기 배자 전 도록 /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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