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는 참 특이한 매체다. 내 감정을 쏟아내는 쓰레기통 같기도 하고, 남이 읽지 않을 게 뻔한데 마치 남이 읽을 것 처럼 쓰는 책같기도 하다. 특히 종이에 펜이나 연필로 글을 꾹꾹 눌러쓰는 다이어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더욱이 특이한 물건이 되었다.
다이어리의 역사는 꽤 깊다.
다이어리는 기록의 역사와 밀접하게 붙어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적, 철학적 사색을 담은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신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르네상스 시대부터 개인의 내면세계와 일상생활을 자세히 기록하는 특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개인주의와 자기 성찰이 강조되었기에 우리가 아는 ‘다이어리’와 좀 더 가까운 글이 등장했다. 이후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 인쇄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이어리가 더 쉽게 제작되고 퍼지게 되었고 산업혁명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여행 일기나 학습 일기와 같은 특정 목적을 가진 다이어리가 인기를 얻었다. 20세기에 들어선 인쇄 기술의 발전해 저렴한 노트 형태의 종이책 생산이 쉬워졌고, 교육이 보편화되면서 문해력이 증가했다. 이 두 요인이 맞물린 덕분에 다이어리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는 것에 더 익숙해졌고, 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다이어리가 온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20세기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다이어리의 변곡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통해 전쟁의 경험과 영향을 기록되면서 다이어리의 가치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에 ‘안네의 일기’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안네 프랑크가 남긴 일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서, 나치 점령 하의 유대인의 삶과 고통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 문서가 되었다. 그녀의 손 글씨와 일기장의 물리적 존재는 그녀의 이야기를 더욱 강력하고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다이어리를 통해 전쟁, 정치적 변화, 사회적 운동과 같은 사건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기록되면서 역사적 중요성까지 인정받기도 했다.
요즘엔 온라인 일기와 블로그가 다이어리를 대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 해외에서는 마이 스페이스,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들이 그 축을 이루었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의 수많은 플랫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다이어리는 살아있다.
종이에 글을 쓰는 다이어리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이고 귀찮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생각과 경험을 더 깊고 오래 기억하려면 키보드로 타이핑 하는 것보다 종이에 글을 쓰는 게 더 좋다. 손으로 필기를 할 때와 랩탑으로 타이핑을 할 때 학생들의 학습과 기억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한 Mueller와 Oppenheimer의 2014년 논문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Advantages of Longhand Over Laptop Note Taking”에 따르면, 손으로 글씨를 쓸 때 학생들은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기억한다. 필기는 느리기 때문에, 학생들은 듣고 있는 내용을 더 선택적으로 기록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정보를 더 깊고 오래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반면, 키보드로 타이핑 할 때는 정보를 거의 그대로 빠르게 기록하게 되는데, 이는 표면적인 처리에 그치고 깊은 이해와 장기 기억 형성에는 덜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손으로 쓰는 행위가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추억과 경험이 물리적 형태로 저장되는 매력은 다이어리만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필기의 흔적, 손 글씨의 모양, 심지어 얼룩이나 눈물 자국 같은 것들이 기록을 특별하고 독특하게 만든다. 이러한 요소는 디지털 다이어리에서 경험하기는 어려운 종이 다이어리만의 특징이다.
괜히 들춰보고 싶어지는 종이 다이어리
사실 다이어리를 쓰면 좋은 건 맞지만 항상 꾸준히 쓰는 게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사놓은 다이어리를 다 쓰지도 못 하고 한 해를 넘기는 경험을 최소한 매해 한 번씩은 해봤다. 이에 여러 다이어리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소소문구>. ‘다이어리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이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구나’ 싶어 소개한다. 구성부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한 달 31일 동안 쓸 수 있는 다이어리인 <데일리 로그 노트>와 1년 동안 본인의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하프 다이어리> 두 다이어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 달 동안 내 생각 정리하기 <데일리 로그 노트>
친구와 좋은 대화를 나눴거나 좋은 영화를 봤거나 아니면 문뜩 마음속에 무언가가 움찔거려 기록하고 싶을 때 쓰기 좋은 다이어리다. 이런 식의 ‘생각했던 걸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이 다이어리가 적당할 것 같다. 생각이라는 건 매번 바뀌기 마련. 한 달이 지나고 나서 본인이 적었던 짧은 한 줄, 혹은 긴 글을 되돌아보고 나서 내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혹은 정체된 건 아닌지 돌아보고 싶다면 한 번 시도해 봐도 좋겠다.
불광천에서 보이는 노을에서부터 영감을 얻은 디자인이라, 컬러에 따라 <선라이즈(일출)>, <선셋(일몰)>으로 구성된 재미도 있다. 해가 뜰 때는 밝고, 해가 질 때는 어둡다는 점에 착안해 선라이즈는 밝은색으로, 선셋은 어두운색으로 구성되며, 사이즈는 글을 길게 쓸 부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다. 글을 쓰는 종이가 너무 크면 휑 한 기분이 들어 어딘가 뿌듯함이 적게 느껴지는 감이 있는데 이 다이어리에서는 그런 느낌이 덜하다. 한 달이라도 꾸준히 다이어리를 써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1년 동안 같이 달릴 수 있는 다이어리 <하프 다이어리>
‘다이어리 구성에 이렇게 신경을 쓸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된 다이어리다. 주목했던 점은 일정을 관리할 때 느낀 불편함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월단위로 일정을 정리하다 보면 꼭 생기는 문제가 있다. 장이 넘어간다는 점이다. 수요일까지는 11월인데, 목요일부터 12월로 넘어가게 되면 종잇장이 넘어가 한눈에 내 일정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 하프노트는 그 점을 고려했다는 점이 제일 매력적이었다. 업무용, 혹은 개인 일정 관리용으로 쓸 수 있게 신경을 쓴 게 특징이다.
디자인적으로도 외부를 꾸밀 수 있는 요소가 많다. 다이어리 외부에 파우치가 있어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넣을 수도 있다. 가죽의 경우에도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가죽를 사용했고 오염, 방수에도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많이 보인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고 있다. 아직 한 달이 남은 2023년 11월이니, 올해 마지막 12월은 <데일리 로그 노트>로 정리해보려 시도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그러나 다이어리에 글을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든, 혼자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든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은 중요치 않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발행되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소소문구> 주니어 디자이너 채용이 진행되고 있다.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23:59까지 모집하고 있기에, 다이어리에 진심인 독자라면 한번 살펴보는 것도 추천한다.
소소문구 <데일리 로그 노트: 선셋>
소소문구 <데일리 로그 노트: 선라이즈>
소소문구 <하프 다이어리 2024>
소소문구 공식 웹사이트
소소문구 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