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6
“소소문구는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문구 제품을 만듭니다.”라고 홈페이지는 소개하고 있다. 만드는 이는 유지현·방지민이다. 2016년 인터뷰 때만 해도 소소문구는 세 살 된 문구 브랜드였고 유지현과 방지민은 20대였다. 다이어리에 빗대면, 기록한 페이지보다 기록할 페이지들이 더 많아 보였다.
afterVIEW in 2020
소소문구는 일곱 살이 됐다. 4년 전 인터뷰 후, 몇 달이 지나 서울 망원동에 매장도 열었다. 브랜드만큼 가게도 꽤 알려졌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망원동 소’만 입력해도 ‘망원동 소소문구’가 자동 완성된다. 새 식구―디자이너 백온유와 MD 김청―도 생겼다. 식구가 늘면서 작업 영역도 넓어졌다. 문구 제품 제작뿐 아니라 다양한 외주 작업을 병행한다. 이제 소소문구는 문구 브랜드이자 문구점이면서 디자인 스튜디오다. 소소문구의 다이어리에 꽤 많은 기록들이 채워진 셈이다. 두 명에서 네 명이 됐으니, 앞으로 채워 나갈 기록들도 두 배가 되지 않을까.
2016년 6월 인터뷰 이후 4년 만이네요. 소소문구가 2013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8년차 문구점이 됐습니다. 곧 열 살이에요. 두 분도 그만큼 많은 일들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유지현
안녕하세요. 30대가 되었고, 여전히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망원동에 작게 쇼룸을 마련한 것, 소소문구다운 문구를 디자인해주시는 백온유 디자이너 님, 그 물건들을 세상에 소개해주시는 김청 MD 님, 이렇게 식구가 둘이나 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잘 지낸 것 같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소문구가 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방지민
안녕하세요. 다음달이면 벌써 7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감사한 인연들 덕분에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하프 다이어리’를 계기로 더 많은 분들에게 소소문구를 알렸고, 시행착오들을 통해 교훈도 얻었습니다. 7주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 너무나 많네요.
올해에는 온유 님이 0부터 100까지 준비한 신제품인 ‘데일리 로그 노트’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또 신제품과 7주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전시를 기획 중인데, 이 프로젝트는 청 님이 진행 중입니다. 둘이 아닌 넷이서 풍성한 날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소소문구가 가진 분위기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일상에서 위로가 되는 풍경도 찾고 있어요.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죠. 실무나 돈, 이런 것에만 휘둘리면 정신이 없잖아요. 그렇게 안 살려고 애쓰고 있어요.”
4년 전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주어 자리에 ’소소문구’ 대신 ‘유지현’과 ‘방지민’을 써도 크게 어색하지 않게 읽히더군요. 두 분이 하고자/되고자 하는 바를 소소문구에 투사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소비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건대, “소소문구가 가진 분위기나 느낌”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중인 것 같아요. 제품의 외형(디자인)이랄까, 전체적인 결이랄까, 그런 것들이 2013년 창업 때부터 2020년인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만큼 두 분 스스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는 방증이겠지요.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8년차 현업 디자이너이자 소상공인으로서, 두 분의 나다움/우리다움 지키기 노하우를 여쭙고 싶습니다.
지현
(제가 가장 못하는..) ‘정리’입니다. 예를 들어 소소문구다움을 설명할 때 쓰는 단어들이 있는데요. 따듯함, 실용적, 아기자기함, 디테일, 배려, 예쁨 등이에요. 3~4년째 각자 흩어져 있는 단어들입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항목도 만들어보고, 이렇게 저렇게 조합도 해봅니다. 제품 사용 후기만 보아도 정리에 도움이 돼요.
이를테면 ‘예쁜데 실용적이기까지 한’,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테일’ 등이 만들어지더라고요. 보통 이런 문장들은 SNS 포스팅 할 때 쓰고 있고요. 브랜드를 소개하는 그 한 문장은 아직 정리 중입니다. 무수히 많은 저 조합들이 지금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정리는 어쩌면 영원한 임무(?) 같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 임무를 함께할 동료가 둘이나 생겨서 조급함은 사라졌어요.
그리고 사적으로는, 내가 원해서 혹은 원하지 않아서 30년 넘게 끌어안고 지냈던 관계, 감정, 물건 등의 정리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제가 선택한 단어, 사람, 마음, 물건을 고를 줄 알게 됐어요. 정리하는 기준이 생기다 보니 점점 편해지는 기분입니다.
지민
‘확장’과 ‘조화’를 통해 나다움/우리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한 가지를 향한 관심과 고민이 누적되면 깊이가 생기지만, 동시에 내 안에 갇히는 현상도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취향, 디자인, 브랜딩, 관계, ··· 이 모든 것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요? 종이를 다루는 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전자책을 사용해보고 있어요. 전자책의 휴대성과 편리함에 감탄했지만, 물리적인 기록에 대한 갈증이 있더라고요. 갈증을 느꼈으니, 이제 제품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해요.
제가 전자책을 접한 부분이 확장이고, 전자책과 기록(아날로그)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하는 부분이 조화라고 생각해요. 이런 노력을 통해 더 풍성한 나다움이 만들어질거라고 믿고 있어요. 온유 님과 청 님이 함께하면서 이러한 기회들은 더 많아졌고, 우리다움이 풍성해지고 있음에 감사하고 기쁩니다.
순전히 개인적 감상평입니다만, 제가 ‘소소문구의 소소문구다움은 이제 완연해진 듯!’이라고 느낀 게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전시 상품을 통해서였어요. 동양화와 한국 전통 문양 등을 활용한 굿즈였음에도, 뭐랄까, 소소문구 두 분의 손길과 손결이 은근히 배어나는 듯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안84, 자까 같은 웹툰 작가들의 그림을 입힌 ‘대학일기 메시지 카드’는 기존의 소소문구와는 전혀 다른 결 같았고요.
예로 든 두 작업 모두 클라이언트잡이고,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수용한 결과물이죠. 그런데도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색깔을 입히는 완급 조절’이 느껴진달까요. 이 역시 또 다른 ‘소소문구다움의 완연함’으로 느껴집니다. 소소문구라는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고, 동시에 클라이언트잡도 병행하시는 두 분. 작업자로서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지현
이 질문에 대해선 저랑 지민 님 생각이 같을 듯하니 제가 대표로 말씀드릴게요. 소소문구의 외주 작업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의가 많아지면서 외주 작업은 이제 팀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벌써 입사하신 지 1년이 넘은 백온유 디자이너 님과 함께요. 특히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연계 상품 작업에는 온유 디자이너 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전시 상품 제작의 경우, 장소·주제·전시품, 그리고 소소문구, 이 네 가지 요소의 합을 적절히 결과물에 드러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것이 저희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앞의 세가지 요소를 최대한 시각화하되, 소소문구만의 느낌은 결과물의 완성도와 품질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소소문구에서 잘 쓰는 색과 그래픽을 강조하는 것은 전시 연계 상품의 목적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씀해주신 ‘손길’과 ‘손결’은 아마도 품질과 마무리감(?)이 아닐까 해석됩니다.
‘대학일기 메시지 카드’는, 네이버 웹툰 스튜디오 관계자 분께서 소소문구의 ‘소-작 프로젝트’를 보시고 연락을 주시면서 시작됐어요. 웹툰 작가의 그림을 문구로 제품화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 한기쁨 작가와의 ‘소-작프로젝트’ 결과물을 당시 출시했었는데, 특유의 위트와 무게감을 네이버 웹툰 스튜디오에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정해진 예산이 있었기 때문에 재료와 현란한 후가공으로 차별화를 두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구(words)로 보여줄 수 있는 재미에 초점을 맞췄어요. 작업 대상이 저희가 평소 즐겨보던 웹툰들로 좁혀져 있었기에, 재미의 색깔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죠. 스토리를 베이스로 한 문구(words)들을 추려서, 그것들을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사용했습니다. 아무래도 구독자의 입장으로 기획과 디자인에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레 ‘덕력’도 발휘되었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문구를 만들고 싶어요.”
‘문구’ 대신 어떤 단어가 와도 위 인용문은 좋은 문장이 될겁니다. ’존재’, ‘사람’, ‘디자인’, ‘음식’, ‘향기’, ‘생필품’, ‘디지털기기’, ···. 두 분이 생각하시기에,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무언가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지현
대상에 대한 관심요. 저희처럼 물건 만드는 직종의 분들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문구를 사용하는 분들부터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분들까지, 즉 모든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사람들도 저희에게 관심을 주실 거라 믿어요. 관심의 ‘관(關)’은 서로 단단히 묶여 있는 모양의 한자인데요. 내 중심을 단단히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문구를 만들어드릴게요.
지민
태도의 일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제품이나 이미지 같은 시각적인 부분의 중요성만 인지했다면, 4년차쯤부터는 우리의 또 다른 식구인 소비자들을 향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쇼룸 오픈 시간을 항상 지키는 것, 제품의 출시 일자를 지키는 것 등이 있겠네요.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년 전 인터뷰 때는 단독 매장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얼마 뒤 망리단길 소소문구 매장(망원동 420-19)을 개업하셨지요. 올해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계신가요?
지현
소소문구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편리한 온라인 구매를 위한 공간, 그리고 재방문하고 싶은 공간으로 온라인숍과 쇼룸을 리뉴얼할 계획입니다.
지민
단순히 제품을 제공하고 소비하는 관계가 아닌, 전시 혹은 이벤트들을 통해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