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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애프터뷰 #4 그래픽 디자이너 권기영

    권기영 interVIEW in 2016 / afterVIEW in 2020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01월 29일

    인터뷰/애프터뷰 #4 그래픽 디자이너 권기영

    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6

    4년 전 인터뷰의 첫 대화는 스튜디오명 얘기였다. ‘스튜디오 dogs’(약칭 ‘독스’)라는 이름이 어떻게 나온 것이냐는 질문. 이러이러하여 나왔다는 대답. 그 이러이러함이란 가벼운 것이었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뷔작 제목에서 스튜디오 이름을 따왔고, “다들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바꿀까 생각 중”이라는 것이 그때의 이러이러함의 내용이었다.

    afterVIEW in 2020

    4년 후 인터뷰도 스튜디오명 얘기로 시작해보았다. 이러이러하여, 현재 ‘독스’는 영리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권기영은 작년부터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다고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러이러한 일들이 올해 서른 살 된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도 있었던 것. 2020년 30세가 된 이들은 요즘 ‘90년생’이라는 고유 명사로 불린다. 고백하건대, 인터뷰이 권기영을 그중 한 명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90년생 그래픽 디자이너’(!)로 규정해보려던 것이었다.

    이 무리한 의도는 이러이러한 말들의 오고감 속에서 자연히 말소됐다. 이리하여 그는 90년생이다, 라는 단언적 결론은 도저히 끄집어내질 수 없는 것이다. 술주정 같은 소리지만, 타인의 삶에 대해 ‘이리하다’라는 타동사를 쓸 수는 없다. 자칫하다간 ‘이리하라(이리 살라)’라는 명령어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리하여(야만) 그는 90년생이다’라는 말은 억지소리다. 다만, 이러하고 이러할 뿐이다. 이러이러하게 영화 제목을 이용해 스튜디오명을 짓고, 이러이러하여 그 이름을 바꾸고도 싶고, 이러이러하다 보니 스튜디오 운영을 잠시 한손떼고 에이전시 소속으로 일하기도 한다.

    제2회 〈대강포스터제〉(2019.10.17-11.17 일민미술관) 참여작 ‘흥보가 기가 막혀’
    WKSPWKSP의 10회차 워크숍 ‘예측 불가능한 한글’ 포스터
    이 워크숍은 국립한글박물관 전시 〈제3회 한글실험 프로젝트 – 한글디자인: 형태의 전환〉(2019.9.9-2020.2.2)의
    사전 실험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며, 권기영·이진우·장기성·조중현·최세진의 진행으로
    2018년 5월 11·12일 이틀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2016년 2월 인터뷰 이후 4년 만에 뵙네요. 그래픽 디자이너 조중현 작가님과 함께 운영하는 ‘독스’는 올해로 오픈 7년차죠? 스튜디오명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에서 따온 것이라는 4년 전 소개가 아직도 기억나는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타란티노의 최근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대한 감상평도 듣고 싶고요.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인터뷰를 떠올려보면 말도 작업도 굉장히 서툴렀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4년간 제법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해 온 것 같아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시각도 확장할 수 있는 시기였고요. 지난해 1월부터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아트디렉터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조중현 디자이너와 ‘독스’를 통한 영리적인 활동은 휴식기에 있지만, 〈대강포스터제〉 전시와 WKSPWKSP의 워크숍 활동을 함께하는 중이에요.

    저를 포함해 몇 명이 모여 공동 작업실을 사용해 오고 있는데요. 서울 한남동을 거쳐 지금은 새 둥지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작업실 멤버들 모두 졸업 이후에 뿔뿔이 흩어졌거든요. 생활 반경도 달라졌고, 요새는 서로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서울에서 적당한 공간을 구하는 게 쉽지 않네요. 괜찮은 데가 있다면 연락 좀 주세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타란티노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꿰고 있는 팬들을 위한 이스터에그 찾는 재미도 좋았고요. 러닝 타임 내내 그의 세계관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그래픽아트 전시
    〈독도쇼〉(2019.9.4-16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출품작
    밴드 문댄서즈(MDSZ)의 해체 전 마지막 공연 ‘The End Of’(2019.3.10 벨로주 홍대) 포스터
    가수 황푸하 정규 2집 앨범 ‘자화상’(2018)의 재킷 디자인과 포스터
    밴드 메이커스테이커스(makerstakers) 데뷔 앨범 ‘seoul 0.5’(2017) 재킷 디자인
    국내 의류 브랜드 스케이프(Scape)의 제품 행택

    “대학 때부터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어쨌든 작업을 할 땐 타이포그래피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어요.”
    4년 전엔 “아직 부족하지만”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나름의 지론을 세워놓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실천하는지 궁금해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만의 지론 같은 것도 없어요. 계속 공부해야 하는 학문인 것 같아요. 10년 전에 배웠던 서적들을 최근에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새로운 지점이 또 있더라고요. 에릭 슈피커만이 “나쁜 활자는 없다. 나쁜 타이포그래피만 있다.”라는 말을 했었죠. 적어도 ‘나쁜 타이포그래퍼’는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개념과 맥락을 일단 붙든 다음, 그걸 점차 시각화해 나가는 작업 방식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예요. 언어의 중의성 혹은 글자의 형태적 유사성을 이용해 작업을 전개하는 건데, 이 과정에서 타이포그래피가 늘 주재료로 사용되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가장 우선시되는 재료이기는 하지요.

    디저트 카페 오르에르의 팝업스토어 오르에르 스토리지(or.er.storage)를 위한 아이덴티티 작업
    편집숍 인벤타리오(Inventario) 아이덴티티 작업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죠. 요즘 정치인들도 90년생 표심을 잡는 데 꽤 공을 들인다고 하고요. 그만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권기영 작가님도 90년생이시잖아요. 좀 이상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여쭤볼게요. 선배 디자이너들이나후배 학생들과 비교할 때, ‘90년생 그래픽 디자이너’만의 특징(캐릭터)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혹은, ‘90년생 그래픽 디자이너라서 가능한 지점’이 있다고 보시나요?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1년만 더 일찍 태어날 걸 그랬습니다. 제가 ‘90년생 그래픽 디자이너’들만의 특징을 수사하고 일반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90년생이 온다』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안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B안에 더 마음이 갈 때가 있어요. 시각적으로 뛰어나지 않고 누구나 쉽게 구현하고 작업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면 작업하기도 해요.”
    ‘B안’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여전하신가요? 혹시, 최근의 작업들 중에 클라이언트의 간택(?)을 받거나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최종안이 되지는 못했으나, 꼭 언급하고 싶은 B안들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4년 전 말씀드렸던 B안이란, 결국 ‘제 마음 속 A안’인 것 같아요. 그동안 탈락한 ‘마음속 A안’들은 무수히 많죠. 그중에서 최근 작업 두 가지만 꺼내보도록 할게요.

    가장 애착이 가는 B안으로는, 지난해 겨울 ‘현대 모터스튜디오 베이징’의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 전시를 위한 키비주얼 작업을 꼽고 싶습니다. ‘Human [un]limited’라는 주제에 맞춰 인류 진화의 연속성을 분절 기법을 통해 시각화한 작업이었는데요. 심사위원 분들께서 무서워 하셨던 것 같아요. 탈락했습니다.

    파이프공예 작가 김희욱 님의 2018년 개인전 〈감성지능 시각 실험실 Vol.2 – 훔쳐보는 암살자〉(이하 ‘훔쳐보는 암살자’) B안도 조금 아쉬워요. ‘질투’, ‘암살’, ‘벽’이라는 키워드로 출발해본 작업이었는데요. 전시에 주요하게 사용된 (질투를 상징하는) 도구를 이용해 ‘월E’라는 살인기계를 형상화했습니다. ‘월’은 ‘벽(Wall)’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브랜드 체험관 ‘현대 모터스튜디오 베이징’의 예술전 키비주얼 작업 B안 / 진행: 스튜디오 더블디
    해외 의류 브랜드 Maya Aagayeva 로고타입 B안
    아모레퍼시픽 마케팅 공모전 ‘Brand × You’(2018) 홍보를 위한 포스터 3종 B안 / 진행: 스튜디오 더블디

    마지막 질문입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내실 계획이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작가님도 이미 아실 테지만, 쿠엔틴 타란티노가 조만간 영화감독에서 소설가로 ‘전직’한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심정(?)이 궁금하고요, 만약 먼 훗날 작가님도 전직을 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듣고 싶습니다.

    계획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우선은 웹사이트 리뉴얼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2019년도 작업부터 아카이브를 전혀 못했거든요. 도연경(제인도, Jane Doe)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진행 중입니다. 그간의 작업들을 천천히 공개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건강 관리를 조금 해야 할 것 같아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피폐해졌어요.

    타란티노의 영화계 은퇴는 너무 아쉽지만(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은퇴 번복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소설가 활동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저 또한 계기만 갖춰진다면 언제든 전직할 의사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스트레스 안 받고 즐기는 모습이면 좋겠네요.

    디자이너 도연경이 만드는 영화잡지 〈필모그래프(Filmograph)〉를 위한 포스터 작업
    (타란티노의 2009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씬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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