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4
6년 전 인터뷰에서 문상현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인간과 기계의 사회적 이슈”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표명했다. 자신이 개발한 폰트 ‘ZXX’를 두고 “디지털 반항”이라 언명하기도 했다(ZXX는 사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목적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판독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폰트다).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사회적·정치적 환경과 긴밀한 계열을 이루는 직능적 요소로 바라보는 듯했다.
afterVIEW in 2020
6년 만의 인터뷰에 앞서, 문상현의 오랜 에세이 한 편을 읽어보았다. 그가 일했던 미국 미네소타주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의 디자이너 블로그에 게재된 글이었고, 유난히 의문문들이 연속되는 한 패러그래프가 눈에 띄었다.
“정치적·사회적으로 활용된 디자인은 어떻게 대중의 사고를 체계화 혹은 탈체계화시킬 수 있는가?”
(How can design be used politically and socially for the codification and de-codification of people’s thoughts?)
“(드러내는/표현하는 양식으로서의 그래픽 디자인이 아닌) ‘감춤’이 곧 고유성/본질인 그래픽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가?”
(What is a graphic design that is inherently secretive?)
“그래픽 디자인이 어떻게 프라이버시를 강화해줄 수 있을 것인가?”
(How can graphic design reinforce privacy?)
“프라이버시라는 아젠다에 대하여, 현재와 미래에의 주도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디자인의 방법’이란 어떻게 가능한가?”
(And, really, how can the process of design engender a proactive attitude towards the future — and our present for that matter?)
그래픽 디자이너 문상현의 노선은 ‘solution 도출’이 아닌 ‘question 생산’ 쪽으로 향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6년 만의 인터뷰에서도 “양질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 디자인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니.
2014년 2월 인터뷰 이후 거의 6년 만입니다. 당시 작가님은 미국 미네소타 주의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일하다 한국의 IT 서비스 기업으로 국제 이직(?)을 하셨었죠. 2016년엔 1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문(Studio Mun)’을 시작하셨어요. 그간의 커리어패스가 퍽 다이내믹해 보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먼저 다시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6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2013년 여름, 워커아트센터 Fellowship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화그룹이 추진하고 있던 글로벌 스타트업 에코시스템 구축 사업부에 들어가 브랜딩 및 UI/UX 업무를 맡았습니다. 스타트업 발굴, 육성, 투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업부로 디자이너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신사업 시장 분석, 국내외 데모데이 참여 등 새로운 배움의 현장이었습니다.
이후 현대자동차 디자인경영팀(현재 크리에이티브 웍스실)에 초창기 팀원으로 들어가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사내외 브랜드 이미지 프로젝트에 참여해 일관된 글로벌 이미지와 360도 브랜드 경험 개발에 이바지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프로젝트에서도 특히 현대자동차의 고유 서체 Hyundai Sans 개발과 사운드 아이덴티티 개발에 참여했어요.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간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국내외 전시에 참여하며,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Letters Matters’
스튜디오 문은 어떤 결을 가진 디자인 스튜디오인지 궁금합니다.
스튜디오 문은 브랜드 아이덴티티, 편집, 전시, 서체 및 웹사이트 디자인 작업을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제작자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폭넓은 형식과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 작업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비평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보다 새롭고 차별화된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탐구와 작업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193개 국기들의 시각 요소들을 해체하여 새로운 국가의 국기 제작에 사용 가능한 템플릿 8가지로 재결합 시켰다.
〈Designs for Different Futures〉의 ZXX 서체 인스톨레이션 / 2019.10.22-2021.5.16
“프로젝트는 진심 어린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어떻게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을 인공 지능과 그것을 배포하는 사람들에게서 숨길 수 있을까? 하고요. 인간은 읽을 수 있지만, 컴퓨터의 인공지능은 해석할 수 없는 글자체를 만들자 생각했어요.”
CNN에도 소개됐던 오픈소스 폰트 ‘ZXX’ 는 이른바 ‘컴퓨터가 읽을 수 없는 서체’, ‘개인정보 보호 서체’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ZXX 기획 시 작가님이 품었던 문제의식(6년 전 인터뷰에선 “디지털 반항”이라고 표현하셨었죠)의 시의성은 지금도 충분히 동기화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일례로 지난해 겨울, 프랑스 정부가 전 국민의 SNS 계정을 감시할 계획이라는 외신 보도가 전해졌습니다. 명분은 탈세범 검거인데, 사실상 자국민 개인정보 사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죠.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를 보면 처음 인류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인간이 바벨탑을 통해 신과 가까워지려고 하자 신은 하나의 언어를 여러 개의 언어로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분열시켰죠. 언어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각자의 언어 장벽 안에 갇혀버린 것인지, 혹은 언어 장벽이 인간을 격변하는 세상에서 보호해주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구심이 듭니다. 마치 슬라보예 지젝이 “사람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부자유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자체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We feel free because we lack the language to articulate our unfreedom.)”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죠.
검열, 감시 그리고 표현의 억압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 지젝이 말했던 우리의 부자유성을, 언어를 담는 글자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글자를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ZXX 서체는 글자들의 형태를 통해 고도로 정보화된 우리 사회에서 개인 정보 보호, 감시 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통해 시민 행동을 촉구하자는 의도로 개발 이후 무료 배포됐었습니다.
언어와 기계, 둘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앞서가는 과학 기술 환경에서 디자인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지 늘 고민해요. 양질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 디자인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고요. 디자인 실천 과정으로 본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조금 더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미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할 수 있는 최선의 매개체를 찾는 중입니다.
“졸업 작품이었던 ZXX 서체 두 번째 버전을 그리다 만 상태예요. Lancet Wounded 등 다른 서체들도 작업 중단한 상태라 빠른 시일 내에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서 끝내려고 (생각만) 하고 있어요.”
6년 전 “그리다 만”, 또는 “작업 중단한 상태”였던 서체들은 지금쯤 다 완성을 하셨겠네요. 해당 서체들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나 완성을 못하셨을 수도 있으니(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저희 독자들도 다 알 겁니다),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ZXX 서체 두 번째 버전은 아쉽게도 끝내지 못했지만, 관련된 작업 ‘Letters Matters’를 〈2019 타이포잔치〉에서 전시했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카네기 뮤지엄에서 의뢰가 들어와 ZXX 서체의 연장선으로 ‘The Aesthetics of Disruption’에 대한 리서치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서체 작업으로는 스테이셔너리 부티크 ‘피브레노(Fibreno)’의 전용 서체 ‘Fibreno Sans’가 있습니다. 서체 작업 말고도 브랜딩, 웹, 편집 등 작업들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직 1월이니 ‘새해’라는 수식어의 유통기한은 충분히 남아 있는데요. 문상현 작가님과 ‘스튜디오 문’의 새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무뎌진 감각과 순수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