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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애프터뷰 #2 ‘나우 위 라이즈’ 정길웅

    ‘Now we rise’ 정길웅 interVIEW in 2016 / afterVIEW in 2020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01월 06일

    인터뷰/애프터뷰 #2 ‘나우 위 라이즈’ 정길웅

    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6

    2016년 7월 인터뷰 때만 해도 ‘나우 위 라이즈(Now we rise)’는 오픈 1년차였던 ‘라이징’ 스튜디오였다. 그래픽 디자인뿐 아니라 사운드 작업까지 병행한다는 점에서,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나우 위 라이즈와 정길웅을 주목했었다.

    afterVIEW in 2020

    2015년 여름 문을 연 나우 위 라이즈는 이제 5년차 스튜디오다. 과거 인터뷰에서 정길웅은 “살아남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직한(?) 목표를 전한 바 있다. 그 목표대로 나우 위 라이즈는 여전히 활동 중이고, 인터뷰 이후 주목할 만한 작업들도 추가했다. 그중 하나가 왓챠(Watcha)의 OTT 서비스 왓챠플레이에서 방영된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의 국내판 포스터 작업이다. 소규모 1인 스튜디오로서 나우 위 라이즈는 국내 디자인계에서 ‘살아’가고 있고, 꾸준히 무언가를 ‘남기’는 중이다. 이 ‘살아남기’의 주체인 정길웅을 3년 여 만에 다시 만났다.

    나우 위 라이즈 정길웅이 ‘Visions’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 〈Midori〉
    현재 준비 중인 새 앨범 〈Nina〉 티저 이미지

    2016년엔 오픈 1년도 채 안 된 ‘라이징’ 스튜디오였고, 지금은 어엿한 5년차 ‘나우 위 라이즈’네요.

    시간이 엄청 빠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에 했던 인터뷰를 다시 읽어봤는데 좀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 이후로 생각이 바뀐 부분도 많아서… 3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자리를 잡았나 돌이켜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소규모 스튜디오 특성상 꾸준히 제 자신과 작업한 결과물들을 노출시켜야 하는데 성격상 쉽지 않더라고요.

    2016, 2017년도가 독립 이후에 가장 큰 고비였어요. 이렇다 할 흥미로운 작업물도 내보이지 못했고 작업 외적으로도 긴 슬럼프에 빠져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어요. 작업실을 거의 혼자 쓰게 되면서 여러모로 고립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다행히 작년부터 좋은 동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에너지도 얻고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제법 자유도가 주어졌던 커머셜 프로젝트 기회들도 있었고요.

    2018년부터 스튜디오 리프트오프(LIFT-OFF)를 운영하는 이진우 디자이너와 스튜디오 피노미나(Phenomena)의 임이랑 디자이너와 함께 ‘All That Glitters’라는 팀을 시작했어요. 클라이언트 작업 외의 뭔가 흥미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꾸려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운드 작업으로는 작년에 ‘Visions’라는 명의로 냈던 앨범 〈Midori〉에 이은 연작으로 〈Nina〉라는 앨범을 준비 중이고요. 2019년은 그렇게 일과 놀이가 뒤섞여서 빠르게 흘러가버렸네요. 해가 바뀔 때의 아쉬운 기분은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뮤지션 정길웅―Visions의 〈Midori〉
    나우 위 라이즈의 사운드 작업들
    정길웅·이진우·임이랑이 결성한 디자인 팀 ‘All That Glitters’의 두 번째 마켓 포스터

    “개인적으로 사운드 작업이 그래픽 디자인의 방법론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운드는 청각의 영역, 그래픽 디자인은 시각의 영역이잖아요. 전자는 귀로 듣게 하는 작업, 후자는 눈으로 보게 하는 작업인 셈이죠. 사운드와 그래픽 디자인 각각의 방법론이 상통한다는 말이 얼른 이해되지는 않는데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래픽 디자이너 겸 VJ 박훈규, 시인이자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리더인 성기완, 첼리스트이자 오페라 작곡가이면서 소설가이기도 한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 같은 분들도 계시죠. 시각(보기-읽기)과 청각의 경계를 굳이 구분 짓지 않는 크리에이터들이라 해야 할까요. 그들의 존재 내지 커리어 자체가 마치 ‘귀와 눈을 동시에 열어보세요’라는 메시지 같기도 하고요.
    나우 위 라이즈의 작업들도 그런 계열에 속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귀로만 들어서도, 눈으로만 봐서도 안 되는 느낌이랄까요. 너무 현학적 감상평인가요?(^^;;) 정길웅 작가님이 생각하는, 혹은 추구하는 ‘사운드-그래픽 디자인’의 방향성과 방법론을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무겁고 철학적인 의미에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질문하신 것처럼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방법론적인 부분을 이야기해보자면 사운드-그래픽 디자인 두 영역 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나 메시지가 존재하고 그 모티프를 강조하거나 반복 혹은 변주하면서 주제를 뒷받침하는 요소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공하고 배치하는 구성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때에 따라서 맥락에 어울리는 정형화된 스타일과 접근 방식을 차용하기도 하고요. 수용하는 대상으로 하여금 결과물을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이런 일련의 시도와 과정들이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픽 디자인보다 사운드가 현실을 왜곡시키는 힘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느냐에 따라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처럼요. 그래픽 디자인에선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시간축이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지만 사람들이 제 아트워크를 볼 때 작업물 너머로 일상과는 조금 다른 정서와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두 영역을 통합해서 어떤 내러티브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욕심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음악 작업도 그에 대한 연습인 셈이기도 하고요.

    올해 제작하신 스튜디오 티셔츠에 ‘Protect all Digitals’라는 문구가 각인돼 있습니다. 나우 위 라이즈의 버벌 브랜딩(verbal branding) 요소로 읽혔어요. 일단, 제 해석(이기보다는 인상)을 말씀드려볼게요.
    라틴알파벳 글꼴이 블랙레터 스타일이어서인지 선전 메시지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제군들이여, 모든 디지털을 보호하라!’ 같은. 그런데 타이포그래피 측면에서 보면, 픽셀 그래픽 특유의 레트로한 이미지도 있어요. 디지털이긴 한데, 80~90년대 도스(DOS) 시대 디지털이랄까요? 말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날로그스러운 디지털’이 묻어납니다. 여기까지가 ‘Protect all Digitals’에 대한 제 해석 내지 인상이에요. 모든 디지털을 보호하라, 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고전적인 블랙 레터를 디지털 스타일을 이용해 풀어낸 작업입니다. 버벌 브랜딩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맞아요. 스튜디오 이름도 그렇고 몇 가지의 단어들이 조합되었을 때 운율이 생기고 읽히는 뉘앙스가 흥미로운 문구들을 수집하곤 하는데 그중 하나였어요.

    보통은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인 매력과 감성의 소중함을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80~9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겪은 세대라 두 가지 모두에 추억이 있고 매력을 느끼는데 뭔가 상대적으로 디지털이 푸대접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디지털의 편리함을 이야기할지언정 그걸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삐딱한 성격이라 그걸 좀 비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일종의 농담 같은 거죠.

    이제는 실질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창작이 디지털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제 작업들도 그 경계에서 두 영역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이고요. 디지털도 아날로그 이상으로 사람의 감수성을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농담 같기도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구들을 이용해 티셔츠를 꾸준히 만들어볼까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제일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는 그래픽 디자인 매체는 의류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2018년 BBC 드라마 〈킬링 이브〉의 한국어판 타이틀 로고와 포스터를 작업하셨죠. 영어 로고의 대문자 ‘V’의 형태적 특성(칼끝처럼 뾰족한 자형)을 한글 로고의 ‘ㅋ’에 적용하신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영어 로고가 ‘KILLING’의 대상인 ‘EVE’에게 칼끝을 겨눴다면, 한글 로고는 ‘킬링’이라는 행위 자체를 바짝 벼린 인상이었습니다. 영어와 한글 로고가 병치됐을 때 ‘킬링’(의 ‘ㅋ’)과 ‘EVE’(의 ‘V’)가 조응을 이루면서 〈킬링 이브〉라는 두 어절 제목에 입체성을 주더라고요.
    그래서일까요? 해외 영화·드라마의 국내판 포스터에서 원제와 한국어 타이틀 로고를 병치시키는 경우가 그리 많진 않은 듯한데, 〈킬링 이브〉는 한국어-영어 병치가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킬링 이브〉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셨고,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 뒷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왓챠의 디자인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성완 디자이너를 통해서 작업할 기회를 얻었고요. 한국어판 포스터 2종과 로고타입을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작업할 때 염두에 두었던 목표는 로고타입 자체보다는 포스터 전체가 먼저 보였으면 했고, 오리지널 영문 로고타입의 뉘앙스를 최대한 가져오고 싶었어요. 장평이 좁은 세련된 로고타입이지만 변형된 형태에서 위트도 느껴지고 극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멋진 로고타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병기했을 때 하나의 세트처럼 보이는 게 목표였습니다.

    알파벳과 한글의 자소 형태 차이로 ‘이브’가 아닌 ‘킬링’에 방점이 찍혔는데요. 발음의 특성상 ‘ㅋ’이 그 오리지널 로고타입의 캐릭터성을 이어받은 게 한국어 버전에선 오히려 더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병기했을 때 대비감도 생기고요. 다만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가독성에 비중이 실렸고 처음에 의도했던 바보다는 점잖게 나온 것 같아서 약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포스터에 관해서 이야기를 드리자면 BBC의 공식 아트워크는 강렬한 콘셉트 촬영 컷을 이용했지만 한국어판은 여건상 스틸컷을 이용해야 했어요. 그래서 두 주인공의 관계의 변화를 대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두 컷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멋진 러브스토리라고 느꼈는데 그 감상이 결과물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해요.

    제2회 〈대강포스터제〉(2019.10.17-11.17 서울 일민미술관) 참여작 ‘천국으로 오세요!’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모티프로 한 디자인 전시 〈대강포스터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1970~1990년대 음악을 재해석해보는 장이다.
    정길웅을 비롯해 권기영, 도연경, 사만다, 신봉천, 이진우, 임이랑, 장기성, 조중현, 최세진 등이 공동 기획했다.
    이름을 가린 디자이너 100여 명의 포스터 작품을 모은 전시/장터
    제1회 〈블라인드포스터전〉(2017.10.13-10.15 서울 행화탕) 참여작 ‘Fuck the Future’
    제12회 대단한 단편영화제(2018.9.13-9.19) 본선 진출작 25편의 포스터를 제작한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대단한 디자인 프로젝트〉 참여작 ‘코코코 눈!(Nose Nose Nose Eyes!)’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부대 행사 〈100 필름, 100 포스터〉(2019.5.2-5.11 전주 팔복예술공장) 참여작
    ‘신성한 바람(Divine Wind)’

    “앞으로도 살아남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작업으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고 싶어요.”
    ···라고 3년 전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인터뷰의 모든 답변들이 “좋은 작업으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서 “살아남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2020년 새해, 나우 위 라이즈 정길웅의 ‘라이즈’는 무엇이기를 바라시나요?

    저번 인터뷰 답변의 반복 같지만 새해의 목표도 일단은 생존입니다. 좀 더 대중에게 노출이 되고 인지가 되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꾸준히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스튜디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느덧 5년차가 되면서 개인적으론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이전보다 더 좋은 작업을 내보이고 싶다는 욕심은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픽 디자인은 태생적으로 작업물과 작업자의 경계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는 분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하는데요. 작업과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게 쉽진 않지만 디자이너로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선 필수가 아닐까 싶어요. 2020년은 디자이너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지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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