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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애프터뷰 #1 그래픽 디자이너 이건하

    이건하 interVIEW in 2016 / afterVIEW in 2019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19년 12월 30일

    인터뷰/애프터뷰 #1 그래픽 디자이너 이건하

    interVIEW / afterVIEW
    
    인터뷰(interview)는 말 그대로 서로(inter) 보는(view) 일이다. 서로 보는 일이나, inter-see가 아니라 inter-view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는 책, 기사, 영상 등 ‘인터뷰 콘텐츠’를 전제로 한 서로―보기다. 인터뷰 자체를 콘텐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 의도가 있으므로, 콘텐츠를 위한 만남과 대화는 어느 정도 기획적·의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보다, 관점과 관점의 상호작용이다. 즉, view와 interaction의 결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2011년 창간 이후 국내외 디자인계 인물 약 300명을 인터뷰했다. 타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설치미술가, 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 어느 날 문득, 그들의 인터뷰 이후가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view를 재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위치와 어떤 view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 지금의 view에 새로운 interaction이 더해지면 어떤 interview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들과 다시 서로―보기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다. 연재 코너 [인터뷰/애프터뷰]를 마련한 까닭은.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interVIEW in 2016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그래픽 디자이너 이건하와 만난 건 2016년 3월. 당시 이건하의 주무대는 전라남도 광주였다. 그곳에서 그는 스튜디오 ‘그래픽가가(Graphic GAGA)’와 카페 운영을 겸하던 중이었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과 진학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afterVIEW in 2019

    약 4년이 지난 2019년 12월, 이건하에겐 이러저러한 변화가 생겼다. 우선, 스튜디오 이름이 바뀌었다. ‘그래픽가가’가 아니라, 지금은 ‘그래픽하(Graphic Ha)’다. ‘가가’에서 ‘하’로 바뀌면서 주무대 또한 이동됐다. 그래픽하 홈페이지 대문에 이건하는 “서울과 파주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문패를 달았다. 대학원 졸업 후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에 입학했다. 디자인 작업물의 결도 달라졌다. 4년 전을 기준으로 ‘before/after’ 구분이 가능할 정도의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현재 그의 관심사는 ‘책’이라고 한다.

    『햄릿』 중 오필리아의 유명한 대사 “We know what we are, but not what we may be”를 포스터로 표현한 작업
    『Graphis Magazine』 발행사이기도 한 미국 뉴욕의 디자인 출판사 Graphis의 공모전에서
    ‘Type 4: Type in Use’ 부문 은상(Silver Medal) 수상

    오랜만입니다. 왠지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신 듯한 느낌적 느낌(?)이 드는군요.

    4년 전이라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저는 2018년에 대학원 졸업 후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를 해왔습니다. 대학원 졸업 즈음부터 ‘그래픽하’라는 이름으로 틈틈이 활동하다가 올가을 PaTI 더배곳 진수 과정에 입학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운영을 시작했어요. 제 취미 중 하나로 종종 사진집을 내고 있기 때문에 출판사도 겸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인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지만, 대부분 인쇄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특히 요즘은 북디자인으로 귀결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대학원 졸업작품부터 출판사 근무까지 책 위주의 작업을 계속해오다 보니 자연스레 흘러가는 방향인 것 같아요. 여러 분야 중 그나마 잘 알고, 많이 했고, 잘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책의 물성과 형태에 관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대학원 졸업 작품에서 연장되는 일종의 프로젝트이기도 한데, 현재 PaTI 수업의 결과물로서 제작을 해보고 있습니다.

    “최근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전반적인 디자인의 이해와 기초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갑작스레 학업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컴퓨터 작업보다는 관련 서적을 구매하여 읽고 있습니다. 작업에 관해서는 디자인에 반영되는 성향과 유행에 의존한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 중입니다.”
    인터뷰 기사로 작가님의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 뭐랄까 ‘디자이너로서 방향성 다잡기’를 고민 중인 듯하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도 2004년 〈트로이〉라는 영화 출연을 계기로 배우로서의 자기 커리어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배우 이상의 가치 있는 커리어를 새로 시작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대요. 2016년과 비교할 때, ‘지금의 이건하’는 디자이너로서 어떤 변화(혹은 깨우침)를 경험했나요?

    4년 전과는 분명 변화가 생겼죠. 특히 대학원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디자이너로서 사고하고, 말하며, 풀어내는 방식을 구체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자연스레 작업으로도 연결되었는데, 기본적으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공부를 다시 했고 갇혀 있던 작업의 제한 범위를 넓혀나갔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말이죠. 조판하고, 사진을 얹히고, 그래픽 요소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라는 범주를 너무 좁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졸업 후 잡지 『월간한옥』 개편에 참여하면서 12호부터 21호까지 10권의 잡지를 디자인했습니다. 출판사 근무를 하면서 디자인 외에 유통, 출판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지금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 시인 김기림의 시 일곱 편을 선별해 이른바 ‘구체시집(Concrete poetry Book)’을 만드셨지요. 김기림의 시 제목을 딴 『바다와 나비』라는 작업으로 국제 디자인상 두 개를 수상하셨고요. 김기림의 시 경향은 사실 구체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스스로를 정지용 시인과 동류로 평가하며 ‘모더니스트’라 칭하기도 했고, 본인이 시인 겸 평론가이기도 해서인지, 시 자체가 ‘서정적’이면서 ‘논리적’으로도 읽히더라고요. 마음으로 다가오는 걸로 끝이 아니라, 머리로도 해석해야 하는 숙제(?)를 남긴달까요. 그렇다고 그 ‘해석’이 이상의 시를 읽었을 때와 같은 ‘해독’의 영역은 또 아니고요. 이상, 스테판 말라르메의 작품 같은 ‘완전한 구체시(실험시)’와는 다르게, 김기림의 시는 서정성(시적 이미지)까지 고려해야 하니 작가님께서 구체시집으로 표현하기가 녹록지 않았을 듯합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적 표현욕’과 ‘대상(오브제)의 고유성 유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이런 측면에서, 서정시 또는 지성시로 불리는 김기림의 시를 구체시로 보여준다는 건 대단한 도전이었을 듯합니다. 어떠셨습니까? 구체시집 작업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요.

    김기림은 1920년대 문학에서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키며 기존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시를 비판했던 인물입니다. 모더니즘 문학 시론 확립을 위해 편내용주의를 배제함으로써 시의 회화성을 강조하고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주지적 태도를 보였죠. 그러나 시의 회화성을 추구한 나머지 지적 유희성이 지나치게 드러난다는 점, 무미건조한 정서 표현 등의 결함을 깨닫게 되면서 초기 시와는 다른 작품들이 나오게 되는데요. 이러한 주지주의 문학과 주정적 태도를 더한 시도는 시집 『바다와 나비』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바다와 나비』 시집에서 작품을 선정해 구체시집을 만들었는데, 이 작업은 김기림의 이미지즘을 기반으로 한 작품 해석과 심상 표현 강화를 통해 새로운 시 감상법 발견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즉, 글이 아닌 다른 요소와 기법을 활용해 시각과 촉각의 감각간 결합을 시도한 실험적인 구체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시의 심상 표현의 기준은 김기림 시인의 시대적 배경과 시론이 담긴 자료를 토대로 하되, 시의 경우 독자의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제가 느끼는 심상과 해석을 더했죠. 그리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표현 가능한 구체시 형식, 시각과 촉각을 물리적인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 북디자인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한 권에 한 편의 시가 수록된 일곱 권의 구체시집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론적인 부분과 책의 완성도 면에서 허술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쉽지만, 책을 만들며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작업이 돼주었습니다.

    아까 “요즘은 북디자인으로 귀결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말꼬리를 좀 이어볼게요. 구체시 시집 제작, 잡지 디자인, 그리고 독립출판까지. 2016년 뵀을 때와 비교하면, 최근 ‘디자이너 이건하’의 작업은 ‘책(북디자인)’ 영역으로 고도화된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제 이해가 맞나요? 혹은 제가 전혀 잘못 짚었나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은 못하겠어요. 어떤 시기부터 ‘책을 디자인하자’ 라고 마음먹은 것은 아닙니다만, 대학원 졸업 작품 구체시집을 제작하면서 책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진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꾸준히 만들어 온 것도 그렇고요. 최근에는 책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구조와 물성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책의 구조와 물성’이라···. 이 주제만으로도 아주 긴 인터뷰가 가능하겠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모자라군요. 이번 인터뷰 꼭지명이 ‘인터뷰 애프터뷰’인데, ‘애프터 애프터뷰’(?)를 기약해야겠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시간을 산소처럼 사용하라”라는 대사가 있는데, 늘 산소 부족인 듯 시간 부존량에 헐떡이네요. 정신 차려보니 벌써 연말이고요. 끝으로 디자이너 이건하의 새해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현재 다니고 있는 PaTI 진수 과정을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고요. 1년 과정이라 내년 여름에 졸업을 하거든요. 그리고 PaTI를 졸업할 때 무엇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에요. 막연히 작업을 디벨롭시키는 과정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PaTI 수업에서 서체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레터링은 종종 해왔던 작업인데 서체 제작에 있어서는 엄두를 못 내고 있었어요. 작업과 연구 과정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 일반적인 그래픽 작업과 결이 조금 다르니까요. 항상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인데 운이 좋게도 이번 PaTI 수업 중 글꼴 스승을 만나 수업의 결과물을 만들었고 내년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졸업 후에 작업실을 서울로 옮길 예정이에요.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주로 파주에서 작업하며 거주를 하는데, 요즘 디지털 작업을 하는 공간 외에 책을 수작업 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요. 프린트기와 촬영 장비, 제본 도구나 책 등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놓아둘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요. 다음에 뵌다면 서울 작업실로 초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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