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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하대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어라운드’

    ‘어라운드’ 전현직 회장단 김지인·이상민(2022), 김한별·김승희(2023) 인터뷰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3년 03월 23일

    인하대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어라운드’

    『타이포그래피 서울』(TS)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자주 시선을 두려 한다. 그들의 일상 또한 현업 선배들의 일과와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일어나는 중인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현장을 디자인 업계 진입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한데 이런 관점에서라면 그들의 모든 활동은 결과물로서의 가치를 온당히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취업과 창업, 업계 정착에 기여하지 못한 누군가의 결실은 명도를 잃는다.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라는 검열 탓이다.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의 색채를 지움으로써 오늘의 노력과 결과물은 바래진다. 그렇게 나날은 생생한 리얼타임이 아니라 임시의 것, 대기하는 것, 빛나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이러한 미래지향적 시선을 잠시 지우고, TS는 ‘지금 여기’라는 확고부동한 시공간 안의 광원(a source of light)을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관찰하려 한다.

    앞으로 TS는 국내 대학들의 디자인 소모임과 동아리, 경력 1~3년차 디자이너 및 스튜디오 인터뷰에 탄갈심력(殫竭心力, 마음과 힘을 다 쏟음)할 계획이다. 첫 번째로 만난 주인공은 인하대학교 디자인융합학과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어라운드(Around)’다.

    인하대학교 캠퍼스
    인하대학교 서호관
    이곳 1층 강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라운드’ 멤버십의 바탕은 자발성

    어라운드의 전현직 회장단 네 사람을 만났다. 2022년 회장 김지인과 부회장 이상민(19학번 동기), 2023년 회장 김한별과 부회장 김승희(21학번 동기). 전임과 후임, 선배와 후배가 인터뷰이로서 한자리에 모였다. 2018년 결성된 어라운드는 스무 명 내외 규모로 운영되는 소모임이다. 2023년 1학기인 3월 현재 인원은 여섯 명. 아직 신입생들은 없다. 이유가 있다. 어라운드의 모집 요건 때문이다.

    “디자인융합학과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만 부원으로 받아요. 타이포그래피 강의는 2학년 전공 과목이라, 23학번 새내기들을 부원으로 모집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웃음) 작년에는 7월에 부원 모집을 했어요. 21학번인 한별이와 승희도 당시 2학년 1학기 타이포그래피 전공 과목을 모두 듣고 어라운드 식구가 됐죠. 지금 2학년 1학기인 22학번들은 다음 학기 때 모집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 19학번 김지인(@kimjee_in), 2022년 어라운드 회장

    타이포그래피 전공 과목 수강 필수. 이 자격 요건은 어라운드의 전통이다. 타이포그래피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호기심만으로 부원이 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들어온 신입 부원이 흥미를 잃고 중도 하차하거나 소모임 자체에 애정을 못 느끼면 운영진은 난감해진다. 2주마다 진행하는 정기 모임, 과제물 합평, 단기 및 장기 프로젝트 등 어라운드의 활동들이 동력을 잃기 때문이다.

    “어라운드는 많지 않은 인원임에도 지금껏 견실하게 명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이 지속성의 원천이 자발성이라고 생각해요. 선배가 강압적으로 후배들의 과제를 검사한다거나, 불성실하다고 퇴출시키는 제도는 없습니다. 안 할 사람은 그냥 안 하는 대로, 굳이 터치하지 않거든요. 타이포그래피가 재미있고, 자기 발전을 이루고 싶고, 어라운드에서의 시간이 유의미한 부원들이 자연스럽게 연대하고 협동하면서 지금의 ‘어라운드-다움’이 형성된 것입니다. 어라운드는 자발적 에너지들의 모임이에요.” — 19학번 이상민(@11.221.311), 2022년 어라운드 부회장

    [왼쪽부터] 이상민, 김승희, 김한별, 김지인

    방황하는 ‘어라운더’를 ‘올라운더’로 이끌기

    어라운드는 지난해 6월 새 아이덴티티를 선보였다. 브랜드로 치면 BI 리뉴얼을 단행한 셈이다. 공식 심벌 마크를 제작했고, 디자인융합학과 안에서의 역할론까지 명확히 세웠다. 방황하는 ‘어라운더(arounder)’를 ‘올라운더(all-rounder)’로 이끌기. 이것이 현 어라운드의 기조다. 어라운더란, 방향을 잡지 못해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이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산악 용어인 링반데룽(Ringwanderung, 밤중에 방향 감각을 잃고 한 지점만 맴도는 일)과 같은 의미다. 올라운더는 사전적 정의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을 가리킨다.

    심벌은 빛을 형상화했다. 이 빛을 보고 따라오라, 이 빛을 향하여 함께 가자, 라는 의미다. 옛 선원들이 바닷길 이정표로 삼았다는 별 폴라리스(Polaris)를 떠올리게 한다. 디자인융합학과 학생들의 ‘빛-별 안내자’가 되겠다는 어라운드의 선언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걸까.

    “선배들에게 듣기로 원래 소모임 이름이 ‘룩 어라운드(Look Around)’였다고 해요. 주변을 둘러보면서 우리 스스로 디자인할 거리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우리 식대로 표현해보자는 취지였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명칭인 ‘어라운드’가 되었습니다. 새 아이덴티티는 ‘주변을 둘러보다’라는 초창기 방향성을 확장한 결과물이에요. 디자인-표현의 소재만 찾는 게 아니라, 우리와 동행할 사람들을 발견해내고 그들과의 동반 성장을 모색하자는 거죠. 작년에 부원으로 들어올 때, 2학년이었던 저는 어라운드의 메시지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괜히 든든해지는 기분이랄까. 제가 느꼈던 이 감정을 앞으로 들어올 새 부원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요. 어깨가 무겁습니다.(웃음)” — 21학번 김한별(@601._.k_), 2023년 어라운드 회장

    “저도 한별이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고백하면, 디자인융합학과 입학하기 전까지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무지했어요. 존재 자체를 몰랐다 해도 과언이 아녜요. 새내기 때 선배들한테서 ‘타이포그래피 수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어라’,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문법과도 같은 거다’ 같은 말들을 엄청 들었거든요. 2학년 올라가 타이포그래피 전공 과목을 수강하면서 선배들의 말이 진짜였음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당시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셨던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영 선생님(6699프레스)의 영향이 컸어요. 수업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타이포그래피를 더 공부하고 관련 작업들을 꾸준히 해보자고 마음먹게 된 계기였습니다. 여러 동료들과 소통하며 자극도 받고 다양한 스타일을 습득하는 창구를 찾던 차에 어라운드 부원 모집 공고를 봤어요. 바로 동기 한별이와 상의한 뒤 함께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회장이 되어 있네요.(웃음)” — 21학번 김승희(@com.and.s), 2023년 어라운드 부회장

    어라운드의 분기점: 의류디자인학과 소모임 ‘I.F.F’와의 협업

    인하대학교 디자인융합학과는 ‘융합’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다양한 과목들을 편성한다.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디자인을 비롯해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기법, 캐릭터 디자인, 모션 그래픽, 방송용 모션 그래픽, 광고 디자인 등 디자인 일반론과 동시대 산업 현장의 실무 기초를 두루 가르친다.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어라운드는 디자인융합학과의 교풍과 결을 맞춘다. 타이포그래피를 바탕으로 사실상 전 영역의 작업들을 아우른다. 가급적 많이 시도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부원들은 각자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발견하고 천착하게 된다. 그렇게 시나브로 진로를 결정해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 나아간다.

    이 같은 어라운드의 역량을 총결집한 프로젝트가 지난해 성료됐다. 인하대학교 의류디자인학과 소모임 ‘I.F.F(Inha Fashion Factory)’와의 협업이다. 어라운드는 I.F.F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학과 컬렉션(패션 발표회) 룩북 및 캠페인 영상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어라운드 20여 명 전원이 투입된 대형 협업 프로젝트였다. 예산도 두 소모임이 알아서(?) 마련했다.

    “저희는 막연히 I.F.F 쪽에 집행비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얘기를 해보니 I.F.F도 저희처럼 돈이 없다는 거예요.(웃음) 비상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팝업 스토어 형태로 모금을 했어요. 가제본 룩북을 급히 제작해 예약 판매를 했습니다. 일종의 오프라인 크라우드 펀딩이었죠. 다행히 충분한 금액이 모였습니다. 학교 인근 카페에서 대량 구매를 해주시기도 했고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웃음)” — 이상민

    I.F.F는 매년 새로운 콘셉트를 표방하는 컬렉션을 개최한다. 2022년의 주제어는 ‘속도(speed)’였다. 공식 행사명은 〈I.F.F e0ee SPEED COLLECTION〉. 넉 달간(2022. 11. 3. ~ 2023. 2. 26.) 열린 패션쇼는 완보(緩步), 산보(散步), 급보(急步), 경보(競步) 등 4개 스테이지로 구성되었다. 어라운드는 이 네 가지 보속(步速)을 위한 각각의 키워드와 메시지, 그리고 심벌 마크를 제작해 룩북 한 권에 ‘속도의 서사’를 전개했다.

    2022년 I.F.F와의 협업은 어라운드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해 새로 정립한 아이덴티티, 즉 올라운드(all-round)라는 방향성의 구체적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의류디자인학과·디자인융합학과만의 이벤트를 넘어, 캠퍼스 전체에 창발적 영감을 전파한 사례로 남았다고 전현직 회장들은 자평한다.

    “서로 다른 학과와 학과, 소모임과 소모임이 만나 대규모 협업을 한 게 아마도 어라운드와 I.F.F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행사 때 반응도 뜨거웠고, 끝난 뒤에도 얼마간 컬렉션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를 계기로 여러 학과들, 소모임들, 동아리들의 협업 프로젝트가 활발히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룩 어라운드’ 할 수록 ‘올라운드·올라운더’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라운드가 더 확장되고, 더 많은 ‘주변’을 (우리 학과명처럼) ‘융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김지인

    “작년에는 마냥 뿌듯했고, 올해는 약간 걱정입니다. 부원들이 많이 모여야 큰 프로젝트도 가능할 텐데⋯.(웃음) 정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차근차근 올해 시도할 계획들을 정리해보는 중이에요. 우리 나름의 큰 성공을 지난해 거뒀으니, 그 경험을 토대로 올 하반기에는 더 잘해보고 싶어요. 내년이면 4학년이라 졸전(졸업 전시) 준비에 올인해야 해서⋯ 올 한 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김한별

    “인하대 총학생회 대의원회의 연락을 기다린다.”

    인터뷰 말미, 현 부회장 김승희가 올해 꼭 추진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오는 6월 열리는 인하대학교 축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이다. 다른 많은 대학들처럼, 인하대 역시 최근 몇 년간 축제가 없었다. 코로나19 영향이다. 마지막 축제가 2019년 5월 〈인-사이더〉였다. 19학번 김지인과 이상민은 1학년 때 딱 한 번 축제를 경험했고, 21학번 김한별과 김승희의 대학 생활에는 축제가 아예 없었던 셈이다.

    “3학년이 돼서야 처음 ‘대학 축제’라는 걸 경험하는데요. 학교의 큰 행사에 어라운드가 파트너로 참여한다면 더 기쁠 것 같아요. 축제 기획의 최종 결정을 총학생회 대의원회에서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총학 쪽이나 대의원회 사람들과 접촉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혹시 이 인터뷰를 읽게 된다면 어라운드에게 꼭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웃음)” — 김승희

    인터뷰 후 김한별은 곧 수업이 있다며 강의실로 뛰어갔고, 김승희와는 서호관 건물을 나와 작별했다. 김지인과 이상민은 버스 타러 가는 인터뷰어를 배웅해주었다. 학교 후문 근처에서 자취한다는 이상민은 현재 학업과 더불어 프리랜서 활동을 겸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인하대 후문 앞 511번 버스 정류장에는 차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동행한 두 사람은 긴 줄을 걱정스러워하며 무사한 승차를 빌어주었고, 실제로 인터뷰어는 무사히 만원 버스 좌석에 앉았다. 인하대 총학생회 대의원회가 이 인터뷰를 읽어주면 좋겠다⋯⋯ 버스 안에서 내내 어라운드의 축제를 상상했다.

    인하대학교 디자인융합학과 사이트 ➲ inhadesign.com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어라운드’ 공식 채널 ➲ @a_round_in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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