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들어진 걸 만들고 싶다. 비록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도.(I want to make beautiful things, even if nobody cares)” 솔 바스(Saul Bass)의 이 말에는 ‘나’라는 주체가 생략되어 있다.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만은 근사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선언일 것이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대로라면 솔 바스의 미적 기준은 우좌지간 ‘나’였던 셈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날 그 기준은 정말로 하나의 ‘기준’이 되어 있다. 솔 바스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표징이 되었다는 데에 이견을 달 이들은 없을 것이다. 영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의 선구자이자,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쥔 바 있는 진짜 할리우드 스타, 그래픽디자이너 솔 바스에 대해 알아보자.
* 이 기사는 윤디자인연구소 통합 폰트 스토어 ‘font.co.kr(폰코)’에 포스팅한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원문 보러 가기)
솔 바스는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의 뉴욕을 설명하는 키워드들을 떠올려보면 대략 이렇다. 경제 호황, 개인 소비 열풍, 포드(Ford) 자동차, 재즈,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시가렛과 라디오를 즐기는 신세대 여성 플래퍼(Flapper)…. 뉴욕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뉴욕이지만, 1920년대만큼은 뉴욕의 타임라인에서 ‘클래식’으로 따로 구분 지을 만한 시기이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솔 바스가 뉴욕으로부터 받았을 영향이 어떤 색채였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뉴욕 맨해튼의 예술대학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e)’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 브룩클린 칼리지(Brooklyn College)에서 당대 유명한 화가 겸 디자이너였던 기요르기 케페스(György Kepes)의 야간 수업을 들었다.
솔 바스는 20대 때부터 할리우드에서의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아갔다. 지금의 확고부동한 명성을 안겨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작업에서는 30대 무렵인 195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초기에는 톱스타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한 복싱 영화 〈챔피언〉(1949)를 비롯하여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1951), 〈푸른 달〉(1953) 등 대작들의 광고 인쇄물을 디자인했는데, 특히 〈푸른 달〉을 연출한 오토 프레밍거(Otto Preminger) 감독의 눈에 띄어 이후 몇 차례 함께 일하게 된다. 1954년에 오토 프레밍거가 제작과 연출을 겸한 뮤지컬 영화 〈카르멘 존스〉에서 솔 바스는 포스터를 디자인했는데, 결과물에 대해 오토 프레밍거가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며 내친김에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작업까지 맡겼다고 한다. 이렇게 솔 바스는 자신의 기량과 크리에이티비티를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영역으로 인도되었고, 서서히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솔 바스가 손댄 수많은 포스터 및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들 중에서도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는 마일스톤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2류 재즈 뮤지션 프랭키 머신이 헤로인 중독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프랭크 시나트라가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솔 바스는 헤로인을 향해 스멀스멀 뻗치는 ‘팔’을 핵심 이미지로 삼아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디자인했다. 컷아웃 기법으로 만들어낸, 기하학적으로 비뚤어진 팔의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줄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출처: Youtube(바로 가기)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의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솔 바스는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던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러브콜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히치콕과 작업하면서 솔 바스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인 수준의 키네틱 타이포그래피(kinetic typography)를 선보이며 자신의 네임밸류를 입증했다.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싸이코〉(1960) 같은 작품들은 요즘 영화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늘날 〈세븐〉(1995)이나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같은 영화의 인상적인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솔 바스로부터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컨티넨털 에어라인, 딕시, 미놀타, YWCA 등 솔 바스가 디자인한 기업 로고
솔 바스가 영화 쪽 일만 한 것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기업들의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로고들은 각 기업에서 평균 34년 이상 변경 없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기업 로고의 수명보다 상당히 긴 편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고 하니, 솔 바스의 시각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비단 영화에만 국한되어 있던 것이 아님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90년대 마틴 스콜세지와의 만남, 영면 전 해까지 계속된 커리어
솔 바스는 직접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까지 할 만큼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그는 수 편의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1968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왜 인간은 창작하는가(Why Man Creates)〉로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했다.(그는 다섯 번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승승장구할 수 많은 없는 일이다. 오르막의 끝에는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1980년대말부터 솔 바스의 커리어는 점차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하기야, 약 40년간 할리우드의 크리에이터로 활약했던 그였다. 그런데 마지막 반전이 극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말년의 솔 바스를 강제소환(?)시킨 주인공은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솔 바스는 1990년대 스콜세지의 주요 작품인 〈좋은 친구들〉(1990), 〈케이프 피어〉(1991), 〈순수의 시대〉(1993), 〈카지노〉(1995)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제작했다. 솔 바스가 1996년에 영면했다는 점을 떠올려보건대, 그는 말하자면 죽음이라는 ‘엔딩’이 가까워질 때까지 줄곧 자기 삶의 영사기를 성실히 작동시켜왔던 것이다. 솔 바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들기(Making the ordinary extraordinary)”라고 설명한 바 있다. 만약 솔 바스의 전기 영화가 나온다면, 포스터 문구로 제격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