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한 권
1 제목 | 2 차례 | 3 서문
딱 세 가지만 속성 소개
일단은 1, 2, 3만 읽어보는 디자이너
“ 123 읽자이너 ”
스무 번째 책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원칙과 실천』
· · · 아르민 호프만 지음, 최문경 감수, 강주현·박정훈 옮김, 안그라픽스, 2022 · · ·
1 제목
스위스 그래픽 디자이너 아르민 호프만(Armin Hofmann)의 저작을 번역한 책이다. 스위스의 출판사 니글리(niggli)를 통해 1965년 초판과 1988년 개정판이 나왔고, 한국어판은 개정판을 옮긴 것이다. 스위스판의 표지 디자인과 판형이 한국어판에서도 유지되어 있다. 원저는 표지에 독일어 『Methodik Der Form Und Bildgestaltung』, 프랑스어 『Manuel De Création Graphique』, 영어 『Graphic Design Manual: Principles and Practice』 등 세 개 언어로 제목을 병기했는데 이는 스위스가 네 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이기 때문 아닌가 싶다.
프랑스어와 영어 제목을 직역하면 한국어판 제목 그대로다.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원칙과 실천』(이하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독일어 제목은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영역하면 ‘Methodology of form and image design’, 즉 ‘형태 및 이미지 디자인 방법론’이다. 시답잖은 감상일 수 있겠는데, 똑같은 책을 두고 어떤 언어는 ‘매뉴얼’로 규정하는가 하면 또 어떤 언어는 ‘이론서’로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차이도 현대철학에서 얘기하는 언어관(言語觀)으로 해제가 될 수 있을까.
2 차례
7 서문
9 들어가며
13 점, 글
23 점, 그림
15 선, 글
77 선, 그림
17 대립, 글
133 대립, 그림
19 문자와 기호, 글
147 문자와 기호, 그림
차례는 간명한데 쪽수가 들쭉날쭉하다. 23쪽 다음 차례가 15쪽, 77쪽, 17쪽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이유가 있다. [서문]과 [들어가며]를 제외한 이 책의 본문은 ‘글’과 ‘그림’ 영역으로 양분되어 있다. 13~21쪽이 글 영역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림 영역이다. 책의 부제가 ‘원칙과 실천’인데, 글 영역을 ‘원칙’으로 그림 영역을 ‘실천’으로 이해하면 책 읽기가 편해진다.
앞서 언급한 독일어 제목을 빌리면 ‘형태 및 이미지 디자인 방법론(Methodik Der Form Und Bildgestaltung)’의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들, 그러니까 ‘점’, ‘선’, ‘대립’, ‘문자와 기호’ 등 네 가지 개념의 정의와 용법이 글 영역(‘원칙’ 파트)에 적혀 있다. 이 지면을 먼저 숙독한 뒤에 그림 영역(‘실천’ 파트)으로 넘어가면 된다. 예를 들어 13쪽 [점]의 원칙을 읽고 나서 23쪽 [점]의 실천 사례를 짝지어 보는 구조다.
3 서문
서두에 소개했듯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은 1965년에 집필되고 1988년 개정된 책이다. 초판이 등장한 60년대 중반은 이른바 작도(作圖)의 시대였다. 디자인을 손으로 그리던 때였던 것이다. 개정판이 나온 80년대 후반은 컴퓨팅을 활용한 디자인 도입 초기(정확히 말하면 1984년 애플 매킨토시가 출시된 지 5년째, 1982년 어도비가 설립된 지 7년째)였다. 1965~1988년의 디자인 실무 환경을 반영한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이 과연 2022년에도 실용적일 수 있는가, 라는 점이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의 독서 여부를 결정하는 큰 기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 아르민 호프만의 개정판 서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개인용 컴퓨터의 문서 작성 프로그램이 널리 퍼지고 있다.
― 아르민 호프만,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1988년 개정판 서문
컴퓨터 퍼블리싱 기능을 사용하면서 그래픽이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기본 지식이 거의, 또는 전무한 이들에게 본 개정판은 유용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
시대와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상수(常數)로서 통용되는 “그래픽이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기본 지식”을 다룬 “입문서”라는 저자의 일성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데이비드 카슨(David Carson)도 아르민 호프만의 위 서문과 궤를 같이하는 말을 최근에 했었다.
질문
― 인도의 크리에이터 양성 스튜디오 ‘스터(Stir)’와의 2019년 인터뷰 중
“ 요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는 것은? ”
(A dominant thkinking amongst designers today you wish didn’t exist.)
답변: 데이비드 카슨
“ 게을러지는 것, 디자이너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들―컬럼의 width값과 space값 조정, 문장들 간의 간격 조정 등등―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설정된 디폴트(default)에 너무나 많이 맡겨버리는 것. ”
(Getting lazy and let the computer make too many decision for them, and the software. Decisions that you should be making as a designer all the way down to widths of column, space between columns and space between sent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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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매뉴얼』을 쓴 아르민 호프만은 1920년생으로 2020년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 카슨은 1955년생이니 아들뻘이다. 두 세대가 ‘디지털 세대’ 후배 디자이너들을 걱정하는 바가 똑같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두 어르신(?)의 우려에 적극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을 귀중본으로 소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