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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읽자이너 #16 『스티브 잡스』

    누군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900여 쪽 분량


    글. 임재훈

    발행일. 2022년 06월 06일

    123 읽자이너 #16 『스티브 잡스』

    한 달 한 권
    1 제목 | 2 차례 | 3 서문
    딱 세 가지만 속성 소개

    일단은 1, 2, 3만 읽어보는 디자이너
    “ 123 읽자이너 ”

     열여섯 번째 책
     『스티브 잡스』
    · · ·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2011 · · ·

    1  제목

    전기(biography)는 크게 두 종류다. 전기의 주인공을 직접 인터뷰하며 집필한 것, 그렇지 않은 것. 각각 특징이 있다. 먼저 전자의 경우, ‘재미’를 좌우하는 건 주인공의 인터뷰 태도다. 스스로를 어디까지 열어 젖히느냐. 이것이 관건이다.

    후자는 특정 인물의 사후에 진행되는 방식일 것이다. 이 경우도 전기의 ‘재미’는 주인공에게 달려 있다. 어떤 삶을 살았는가, 사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남겼는가, …. 다만 이런 소스들의 수집 출처가 인물 본인의 입이 아니라 주변인, 관계인, 매체(주인공의 생전 인터뷰나 기고문, 주인공에 대한 인물론과 각종 기사 및 촌평 등)라는 점에서, 전기 작가의 상상과 추측(‘미루어 짐작건대 이 인물은 이러이러한 인간이었을 것이다’)이 크게 작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인물의 사후 전기가 대개 평전(critical biography)인 까닭일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는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 저자인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서문에서 밝혔듯 2010년 “40여 차례에 걸쳐 그(스티브 잡스)를 인터뷰”했고 “그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더 구체화하기 위해 (…) 100명이 넘는 친구와 친척, 경쟁자, 적수, 동료 들을 인터뷰”했다. 아무 수식어 없는 인물명, 즉 전기 제목 『스티브 잡스』(원제 또한 『Steve Jobs』다)는 이러한 객관적 바이오그래피를 부각해준다.

    유명 인사를 소개할 때 으례 쓰는 관용구가 ‘설명이(수식어가) 필요없는’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제목에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관용구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인물을 받아들일 때 필요한 건 수식어가 아니라 팩트다. 어디에선 히어로인 인물이 어느 그룹에선 빌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몹시 원론적이고 도덕적이며 지루하기 그지없는 얘기지만, 사람은 한 가지만 봐서는 모른다. ‘하프 터틀넥’만 입는 것 같았던 인물도 알고 보면 ‘턱시도’를 입기도 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옷’ 얘기인데 다음 단락에서 후술해보려 한다.

    © typography seoul

    2  차례

     1. 어린 시절 ― 버려지고 선택받다
     2. 뜻밖의 커플 ― 두 명의 스티브
     3. 자퇴 ― 환각과 성찰
     4. 아타리와 인도 ― 게임 설계 기술과 선(禪)
     5. 애플 Ⅰ ― 켜고 부팅하고 교감하라
     6. 애플 Ⅱ ― 새로운 시대의 여명
     7. 크리스앤과 리사 ―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이었기에……
     8. 제록스와 리사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9. 기업공개 ― 부와 명성을 모두 얻은 남자
     10. 맥의 탄생 ―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라
     11. 현실 왜곡장 ― 자신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보스
     12. 디자인 ―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 건다
     13. 맥 만들기 ―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14. 스컬리를 영입하다 ― 펩시 챌린지
     15. 매킨토시 출시 ―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
     16.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 두 궤도의 교차
     17. 이카로스 ― 올라가는 것은……
     18. 넥스트 ―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19. 픽사 ― 기술과 예술의 만남
     20. 보통 남자 ― 사랑이라는 두 글자
     21. 토이 스토리 ― 버즈와 우디 구조대
     22. 잡스의 재림 ― 마침내 사나운 야수가 돌아오다
     23. 부활 ― 지금의 패자는 훗날 승자가 되리니
     24. 다른 것을 생각하라 ― iCEO 잡스
     25. 디자인의 원칙 ― 잡스와 아이브의 스튜디오
     26. 아이맥 ― 반가워 (다시 만나서)
     27. CEO ―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별난
     28. 애플 스토어 ― 회청색 사암과 지니어스 바
     29. 디지털 허브 ― 아이튠스에서 아이팟까지
     30. 아이튠스 스토어 ― 피리 부는 사나이
     31. 뮤직 맨 ― 그의 인생이 담긴 사운드트랙
     32. 픽사의 친구들 ― ……그리고 적들
     33. 21세기 맥 ― 애플을 차별화하는 것
     34. 1라운드 ― 메멘토 모리
     35. 아이폰 ― 혁신 제품 세 가지를 하나로
     36. 2라운드 ― 암의 재발
     37. 아이패드 ― 포스트 PC 시대로
     38. 새로운 전투들 ― 그리고 예전 전투들의 메아리
     39. 무한대를 향해 ― 클라우드, 우주선 그리고 그 너머
     40. 3라운드 ― 말기의 분투
     41. 유산 ― 가장 밝게 빛나는 창조력의 천국

    대외 처세에 능란한 인물일수록 자기 본모습의 개폐 기술도 뛰어나다. 열 때와 닫을 때를 빠르게 판단하고, 여닫는 범위 또한 잘 제어한다. 한마디로 자기 통제력이 월등하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도 그런 부류의 셀러브리티였다. 그는 왠지 다른 IT 기업가들처럼 ‘사업가’스럽다기보다는 ‘IT 긱(geek)’ 같은 이미지를 구가했는데, 여기에 가장 일조한 것이 그의 프레젠테이션 룩(?)이다. 검은색 하프 터틀넥(늘 고집했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 제품이 단종되자 ‘세인트 크로이만’을 입기 시작했다), 청바지(리바이스), 뉴발란스 스니커즈(주로 990 라인을 신었다). 포멀보다 캐주얼을 추구하는 그의 옷차림은 더할 나위 없이 대중 친화적이었고, 애플의 애플다움을 보여주는 표상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정장도 입었다. 2010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였다. 당시 중계 방송 때 아이패드 1세대 TV 광고가 최초로 론칭했고, 스티브 잡스는 홍보차 시상식에 참석했다. “아이패드라는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라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아카데미 시상식에 온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오스카 레드카펫을 밟은 이유’) 자체로 마케팅이 된다는 걸 염두에 둔 행보였을 것이다. 턱시도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밟은 그의 모습은 ‘TPO 따위 신경쓰지 않는 막무가내 긱은 아니다’라는 점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때와 장소에 맞춰 자신을, 자신이 상징하는 브랜드 가치와 정체성을 세일즈할 줄 아는 경영인. 스티브 잡스는 그런 인물이었던 거다.

    월터 아이작슨의 서문 내용처럼 “스티브는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을 인터뷰할 경우 그의 입에서는 대단히 정제된 소스만이 추출될 것이고, 전기 작가는 이를 토대로 바이오그래피에 서사성을 더해야 한다. 작위적이고 따분한 내용이 담기기 십상이다. 『스티브 잡스』는 정반대다. 서문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사전에 보여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월터 아이작슨의 조건에 순순히 응했다. 전기에서 주제로 다뤄줬으면 하는 내용을 제안하는 정도의 개입을 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월터 아이작슨은 그저 ‘참고’만 한 것으로 보인다.

    © typography seoul

    처음 [어린 시절 ― 버려지고 선택받다]부터 마지막 [유산 ― 가장 밝게 빛나는 창조력의 천국]까지 차례명들만 보면 다분히 영웅 서사에 충실한 따분한 전기 같다. 하지만 본문은 다르다. 저런 인간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 라고 여겨질 정도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도대체 미래를 몇 수 앞이나 내다보고 있었던 걸까 경의를 표하게 되는 대목들도 있다. 『스티브 잡스』에 스티브 잡스에 대한 무지성 추앙과 무근본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은 다 보여드릴 테니 판단은 알아서들’이라는 듯이.

    그러나 누군가의 다차원적 면모를 고루 따져가며 객관적으로 인물평을 해주는 타인들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언제나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우리 생활인들의 시선과 정서가 일인에게만 오래 머무르기 힘든 탓이다. 그렇게 하기엔 우리가 너무 바쁘고, 각자의 일상다반사를 헤쳐 나가는 데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쏟아야 한다. 모두가 월터 아이작슨 같은 전기 작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타인을 향한 객관적 시선과 정서를 갖도록 노력해보자, 라는 것이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의 독후감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감명보다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900여 쪽 분량의 책 한 권이 필요할 수도 있구나’라는 각성(!)이 더 압도적이다. 내 삶의 면면들은 어떤 서사를 갖고 있나, 서사성을 갖추고 있긴 한가, 스토리텔링에 필요한 콘텐츠들은 충분한가, 라는 반성도 해보게 된다. 객관의 영역에서 논의될 만한 삶의 궤적들이 나에게 과연 갖추어져 있나, 내 삶의 면면은 어쩌면 너무 많은 주관적 요소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나, 하는 불안도 엄습해 온다.


    3  서문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가 작고한 2011년 10월 5일 이후 10월 24일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2015년 2판, 2021년 3판이 나왔다. 3판은 스티브 잡스 사후 10주기 특별판인데, 월터 아이작슨의 새로운 서문 「스티브 잡스 작고 10주기에 부쳐」가 증보되었다. 이 글의 한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열여섯 번째 [123 읽자이너]를 마친다.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특정 인물의 성과에 대한 존중과 그의 결함에 대한 반감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성과와 결함이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 만약 스티브 잡스의 타고난 성향이 보다 친절하고 온화했더라면, 과연 그에게 현실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몰아붙이는 열정도 따랐을까? 사람의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은 종종 이중나선처럼 얽히고설킨다. 선은 악과 관계가 있으며 쾌락도 고통처럼 서로 연결된다. 불쾌한 실 가닥을 죄다 뽑아내고 스티브 잡스라는 원단을 남길 수는 없다는 얘기다.

    ― 『스티브 잡스』 3판(스티브 잡스 사후 10주기 특별판)에 증보된 월터 아이작슨의 새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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