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활자 상자(type case). 빼곡히 들어찬 금속활자 틈에서, 필요한 활자만을 쏙쏙 뽑아내는 누군가의 노련한 손도 보인다. 지금 이곳은 활판인쇄소 내부인가 보다. 손가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카맣게 묻은 얼룩 때문인지 자잘한 주름이 빗금처럼 선명해 보인다. 손은 부지런히 활자를 골라내어 다른 쪽 손에 들린 문선상자(galley box)에 담아내고 있다. H, e, l, v, e, t, i, c, a. 한 개의 대문자(upper case)와 여덟 개의 소문자(lower case)를 조판하여 ‘Helvetica’라는 글자(letter)를 이룬다.
손의 주인공은 어느 나이 든 남성. 활판인쇄소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문선공(type picker)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조판한 활자를 인쇄판(printing plate)에 올려놓는다. 잉크 바른 롤러를 이용하여 인쇄판 위 활자들의 판면에 잉크를 고르게 입힌다.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판면에 엽서 크기의 백지 한 장을 올려놓고 그 위로 묵직한 실린더를 움직여 압력을 가해주자, 흰 종이 표면에 간결한 인상의 ‘Helvetica’라는 글자가 찍혔다.
이처럼 영화 〈헬베티카〉의 오프닝은 활자의 문선부터 조판, 인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은 종이에 인쇄된 ‘Helvetica’ 아홉 글자가 오프닝 타이틀처럼 클로즈업된다. 이 인상적인 오프닝을 통해,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1450년경과, 스위스의 하스 활자 주조소(Haas Type Foundry)가 헬베티카를 내놓은 1957년 사이의 500여 년 시간이 함축적으로 느껴진다. 수 세기에 걸친 활자(type, 타입)와 인쇄술의 긴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
네덜란드의 저명한 타이포그래퍼인 헤라르트 윙어르(Gerard Unger)는 서체 [헬베티카]에 대해 “균일한 글꼴의 대표적인 예”라고 분류하면서 “이 글꼴을 디자인한 막스 미딩거는 [헬베티카]로 조판한 글 안에서 어떤 글자도 다른 것과 달라 보이지 않도록 오랜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한다.(『당신이 읽는 동안』, 워크룸, 2013) 게리 허스트윗 감독의 2007년작 〈헬베티카〉는 이 [헬베티카]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헬베티카]의 탄생
영화는 미국 시내 곳곳에서 발견한 [헬베티카]의 다양한 활용 사례를 포착하여 인서트 컷으로 보여준다. 각종 간판, 안내 표지, 교통 사인(transit signage), 포스터, 잡지 커버 등 [헬베티카]는 그야말로 어디에나 있다. 영화 속 인터뷰이 중 한 명인 그래픽 디자이너 마이클 비에루트(Michael Bierut)의 말대로, [헬베티카]는 “산소와 중력 같은 것(It seems like air, it seems like gravity)”인지도 모르겠다. 존재 자체가 너무나 당연해졌다는 뜻일 텐데, 그만큼 수많은 분야에서 널리 범용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왜, [헬베티카]는 ‘산소’와 ‘중력’ 같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우선, 스위스의 소도시 뮌헨슈타인(Münchenstein)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옛 하스(Haas)사의 터가 남아 있는데, 활자 주조소였던 여기가 바로 [헬베티카]의 출생지이다. 1950년대 하스사를 경영한 에두아르 호프먼(Eduard Hoffman)은 새로운 활자체(typeface, 타입페이스)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혼자서는 무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같은 회사의 세일즈맨이었던 막스 미딩거(Max Meideinger)에게 디자인 작업을 요청한다. 아이디어는 에두아르 호프먼이, 실체적 질감으로서의 구체화는 막스 미딩거가 담당한 셈. [헬베티카]는 두 사람의 협력으로 태어난 합작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하스사는 독일의 활자 주조소인 스템펠(Steple)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스템펠 역시 독일의 모노타입(Monotype)사(당시 회사명은 ‘라이노타입(Linotype)’이었으며 2013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를 운영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스사와 스템펠사의 활자들, 그리고 [헬베티카]에 대한 모든 소유권은 현재 모노타입사에게 있다.
[헬베티카]는 19세기의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 인쇄용 산세리프 활자체)’를 업그레이드한 형태로서, 최초 이름은 ‘노이에 하스 그로테스크(Neue Haas Grotesk)’였다. 다소 복잡하게 들리는 이 명칭은, 당시 넓은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이에 스템펠사는 스위스의 라틴어 이름인 ‘헬베티아(Helvetia)’를 제안했지만, 하스사 대표인 에두아르 호프만은 반대했다. 활자체를 국가명으로 부를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내놓은 새 명칭은 ‘스위스인’, ‘스위스 양식’, ‘스위스의’ 등을 의미하는 ‘헬베티카(Helvetica)’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이름이다.
[헬베티카]는 왜 환영받았을까?
[헬베티카]가 당대 디자이너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낸 배경은 영화 속 빔 크로웰(Wim Crouwel, 1967년 기하학적 활자체인 [뉴알파벳]을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퍼 겸 그래픽 디자이너로 〈헬베티카〉에서는 스스로를 모더니스트라고 칭하기도 함)의 설명에 잘 나타나 있다.
“[헬베티카]는 19세기 활자체로부터 정말 진일보한 형태였습니다. 다소 기계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수공으로 인한 요소들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에게 이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훨씬 중립적으로 보였거든요. ‘중립주의(neutralism)’는 디자이너가 좋아했던 단어입니다. 활자체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이런 거예요. ‘의미(meaning)’란 콘텐츠의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활자체 자체가 이미 어떤 의미를 가지면 안 된다는 거죠. 이런 이유 때문에 디자이너가 [헬베티카]를 좋아했던 겁니다.”
활자체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달리 말해 ‘표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빔 크로웰의 말대로라면, 그 ‘표정’은 텍스트 혹은 콘텍스트를 통해 형성하거나, 디자인을 통해 부여하는 것이다. 무표정하고 기계적인 [헬베티카]는,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디자이너의 표현 영역을 넓혔는지도 모르겠다. 18세기의 보도니(Bodoni)와 센추리 스쿨북(Century Schoolbook), 19세기의 베르톨트 시티(Berthold City), 20세기의 푸투라(Futura)와 아방가르드(Avant Garde) 등에 비하면, 확실히 [헬베티카]는 ‘무표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헬베티카]는 펌이나 염색 등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머리칼인 셈이다. 아무런 스타일도 색도 없는 이 머리칼은, 헤어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가지각색의 형태로 거듭날 수 있는 것. 아마도 이런 매력 덕분에 [헬베티카]가 많은 디자이너로부터 환영을 받은 것이 아닐까?
[헬베티카]로 적은 ‘sunshine’에는 햇빛이 없다?
모든 디자이너가 [헬베티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안티 [헬베티카]’ 대표 디자이너로, 이 영화에는 에릭 슈피커만(Erik Spiekermann),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 데이비드 카슨(David Karson) 같은 쟁쟁한 인물이 등장해 조롱의 언사를 펼친다. 세 명의 저명한 디자이너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헬베티카]의 문제점은 ‘개성의 부재’. 특히 [헬베티카]로 인쇄한 단어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웃음을 연발하는 데이비드 카슨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역시 그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 사람은 공통으로 [헬베티카]의 무표정과 무뚝뚝함, 즉 개성의 부재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데, 이것은 비단 [헬베티카]만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이들이 진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소통(communication)’인 것. [헬베티카]의 장점을 부각한 다른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과적으로 〈헬베티카〉는 [헬베티카]라는 유명한 활자체를 소재로, 동시대 여러 디자이너의 입을 빌려 시각 디자인의 본질인 ‘소통’을 논하는 작품이다.
to see, to be seen, and communication
활자(type)의 얼굴(face)을 활자체(typeface)라고 한다. 활자는 ‘얼굴’을 가졌다. 그 얼굴로 우리를 보고, 우리는 그 얼굴을 본다. 활자체와 수용자 사이의 소통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는’ 행위로부터 비롯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이러한 봄(to see)과 보임(to be seen)의 방식은 미세하게, 혹은 터프하게 변화를 맞이한다. 그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서로가 서로를 잘 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 보이게끔 조율하는 것이 시각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그래픽 디자이너, 타입페이스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 ···)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 말미에 매튜 카터(Mathew Carter)는 이렇게 내다본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재능 있는 어린 디자이너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대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떤 활자체를 디자인하게 될지 누가 예측할 수 있겠어요? 우리에게는 큰 수확입니다. 대중적이고 접근성 높은 기술들이 발전할수록, 그들의 노력에 인한 크나큰 혜택을 받게 될 거라고 봐요.”
그의 밝은 전망처럼,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계속 되는 한, 개인과 개인, 부류와 부류, 더 나아가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소통의 거리는 점차 좁혀질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보고 보이게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시각 디자이너들의 존재는 일반인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