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스튜디오나 디자이너가가 홍대나 상수, 한남이나 서촌에서의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고유의 위치 적인 특성도 한몫 하겠지만, 서로 교류하고 협업할 수 있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그래픽 가가 스튜디오도 지역의 디자이너, 스튜디오와의 교류와 협업을 꿈꾸며 위탁판매와 작업실 대여, 다양한 강좌 등을 기획하고 오픈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어려웠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꾸준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이건하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래픽 가가 스튜디오에 대한 소개를 해주세요.
그래픽을 기반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하는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현재는 학업을 위해 서울로 이전한 상태입니다. 그래픽 가가 스튜디오는 2013년 우연히 인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해 겨울 하고 싶은 작업과 기획을 실행하고자 거주하고 있던 광주에 독립 스튜디오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가가(Gaga)의 의미는 ‘좋아서 미쳐버린’ 혹은 ‘홀딱 반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 앞에 그래픽이라는 단어를 두고 그래픽 가가 스튜디오라 작명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요?
앞에서 언급되었지만 대학원 진학으로 인해 서울로 이전하였습니다. 4월 즈음부터 스튜디오가 아닌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활동할 예정입니다. 최근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전반적인 디자인의 이해와 기초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갑작스레 학업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컴퓨터 작업보다는 관련 서적을 구매하여 읽고 있습니다. 작업에 관해서는 디자인에 반영되는 성향과 유행에 의존한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람들이 그래픽 가가 스튜디오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프로젝트 의뢰를 하는지 궁금해요. 스튜디오만의 컬러랄까요?
사실 이 부분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튜디오 규모나 경력 모두 어떠한 기대를 하고 의뢰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제 작업물에 확신을 하고 최선을 다해 디자인하고 설득할 뿐이지요. 지향하는 디자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스튜디오 초창기부터 최근 작업까지 쭉 둘러보며 부족한 부분이나 약점을 개선하는 편입니다.
스튜디오 운영 시간이 월, 수, 금, 토, 4일뿐이던데요, 따로 하시는 일이 있나요?
스튜디오와 동시에 광주에 커피숍을 오픈했습니다. 스튜디오를 시작하며 처음 브랜딩한 작업이기도 하고, 직접 매장에서 제조와 서빙을 하다 보니 투잡을 하기에 벅찼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위탁판매와 작업실 대여, 다양한 강좌 등으로 손님이 많이 몰릴 것을 예상해 월, 수, 금, 토로 정했지만, 생각보다 성행하지 못해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현재 위탁판매라든지 여러 행사를 기획하는 스튜디오는 중단 상태입니다. 짧은 시간에 판매 제품을 맡겨주시고 강좌를 해주셨던 분들께는 아직도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현재 광주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대부분 스튜디오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래픽 가가처럼 지방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스튜디오가 많으신지요? 또, 같은 지역의 디자이너분들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수도권 지역의 스튜디오들에 비하면 지방의 디자이너들이 독립 스튜디오나 작가로 활동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요. 광주에서 활동하는 스튜디오도 몇 곳 있지만 오랜 활동으로 정착하기에는 아직 어려워 보입니다. 소수에 불과하다 보니 협업에 관련해서도 맞춰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타입 제작도 직접 하시는 것 같은데요, 글자를 직접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학창시절 한글을 주제로 졸업작품 준비를 하며 한글과 문자에 관한 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에 대학원 진학을 위해 당시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의 권유로 영문 타입 페이스를 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타입을 제작하고 서체로 쓰이기보단, 문자의 장식적인 개념으로 ‘제시’를 하는 수준입니다. 타이포그래피를 중점으로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지만, 서체 제작에 대한 과정은 따로 배운 적이 없어 조금 헤매는 편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원래 영상을 공부하고 있었던 터라 큰 관심이 없었어요. 요즘은 타이포그래피의 기초부터 타입 제작까지 여러 분야를 다룬 책들이 너무 잘 나오고 있어서 독학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강의나 세미나도 개설되고 있는 편이니 저 역시 올해에는 전문과정을 밟아나갈 생각입니다.
직접 만든 글자 몇 가지 소개해주세요.
가장 애정으로 만든 글자는 독일 활자 디자이너인 루돌프 코흐(Rudolf Koch)의 ‘빌헬름 클링스포어 고티슈(Wilhelm Klingspor Gotisch)’ 서체를 한글 타입 페이스로 변경한 작업입니다. 기존 서체의 특성상 글자마다 연결되는 곡선에 질서를 두고 균형을 잡아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이 꽤 길었고 골치 아팠지만 돌이켜보면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를 깊게 파고드는 작업을 선호하는 편인데 괴롭지만 뿌듯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결과물이 만족스럽게 나왔을 땐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 외에 최근 작업한 한글 고딕 ‘다온체’ 같은 경우는 반듯한 형태의 가독성을 지닌 담백한 서체를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제작 의도에만 집중하다 보니 간소화한 부분이 상당한 것 같아 다음 작업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 느낍니다.
여러 가지 행사도 기획하셨잖아요. 디자인의 확장 개념이라고 보면 될까요?
주로 광주에서 기획했던 행사가 많았는데, 서울보다 여러 디자이너의 작품을 접하거나 구매할 기회가 드물어요. 그래서 위탁판매를 시작으로 광주 비엔날레 마켓과 스튜디오 내에서 몇 가지 행사를 진행해왔습니다. 가장 큰 목적은 서울보다 광주에 있는 디자이너, 디자인 학부생들의 모임이 굉장히 드물고 공동작업이나 전시, 강좌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처음이다 보니 미숙한 것도 있었고 금전적으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마무리된 기획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는 어리고 경험도 없는데 욕심이 과했던 것 같아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자료는 바로바로 찾아 둘러보는 편이지만 트렌드에 딱히 민감한 편도 아닙니다. 예전엔 몰랐던 점인데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작업 방식이나 디자인 철학, 가치관을 들을 수 있는 인터뷰라든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실린 글들이 꽤 있으니 찾아 읽어보는 게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굳이 신간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내용이 담긴 책들이 꽤 많으니 주변 디자이너들에게도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작업을 하든 작업 전에 꼭 거치는 과정인데요. 가령 어떤 한 문장만으로도 작업 중 제가 간과하는 부분이나 엉뚱한 방향으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하곤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었다면요?
기억에 남는 경우를 뽑으라면 좋았던 경우보다 고생했던 일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전에 광주의 한 공공기관에서 기획한 행사의 인쇄물을 제작했습니다. 이러한 기관에서 의뢰를 맡은 경험이 그다지 없던 상태였는데, 그래서인지 행사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작업과 연결되는 공감대를 만들지 못해 관계자분들을 굉장히 힘들게 해드렸습니다. 갑자기 인쇄물의 배송지가 광주에서 서울에서 바뀌는 바람에 그날 새벽 서울로 올라가 인쇄소에서 직접 인쇄물을 받고 퀵으로 보내드리기도 하고. 인쇄 당일 추가 수량이 생겨 자비로 해결하기도 했고요. 물론 큰 금액의 견적으로 진행된 상황이라 감안하고 작업과 인쇄를 순조롭게 마쳤지만, 저의 업무능력이나 지적 수준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던 경험이었습니다.
최종 목표가 있다면요?
먼저 학생의 신분이니 겸손하게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 그리고 일과 학업을 유동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목표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한 다음에 다시 한 번 인터뷰할 기회가 있다면 그땐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