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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타이포 아티스트 정유경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에서 ‘실용성’을 말씀하셨잖아요. 실용적이려면 쉬워야 해요. 제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뷰. 황소영

    발행일. 2013년 12월 06일

    한글 타이포 아티스트 정유경

    전통과 현대의 만남? 고개가 꺄우뚱해지거나 별 새로울 것 없어 무관심해진 지 오래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와 뻔한 소재 때문. 그런데 한글 타이포 작품 <한글 책가도>와 '12로보지신' 시리즈는 어, 새롭다. 사람 군상을 흉내 내는 12로보지신이 각각의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한글이라는 공간 속에서 그들만의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 수많은 시도와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 가는 정유경 작가의 한글 타이포 이야기이다.

    한글 타이포 아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8년부터 ’12지신’에 관해 한글로 패턴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지금 제가 만든 캐릭터들은 자음으로 만든 것이지만, 초창기에는 모음을 가지고 작업했거든요. 모음은 ‘어미 모’ 자를 쓰는 말로 ‘모든 걸 포용한다.’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그래서 모음을 가지고 나무, 꽃 등 자연적인 것과 접목했었죠. 그런데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는 자음이 명확하더라고요. 그래서 이후 캐릭터 작업은 자음을 써서 만든 것이고요. ‘타이포 아트’라는 표현은 그래픽보다 조금 더 아트적인 느낌을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래픽은 무언가 한계 짓는 느낌이랄까, 좀 더 포괄적인 의미가 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그래픽은 차가운 느낌이지만, 아트는 좀 더 따뜻한 느낌을 줘서 친근한 것 같아요.

    한글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7번이나 하셨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요?

    작업 초반 모음으로 만든 캐릭터에 애착이 가요. 보통 한글 작품은 자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은데, 이 작업으로 한글에 대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았지요. 또 하나는 <꿈>이라는 작품인데요, ‘동경’이라는 것을 주제로 어디로든 함께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글 책가도>라는 작품은 이 자체의 전체적인 느낌이 가장 좋고요. ‘책가도’는 책장 안에 책, 도자기, 문방구, 향로, 청동기 등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그린 민화를 뜻해요. 옛날 아버지가 아들의 급제나 출세를 기원하기 위해 선물한 것이 기원이라고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선물’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예요.

    ‘12로보지신’ 시리즈에 등장하는 책가도와 로봇이 의외로 조화롭네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되셨나요?

    로봇은 인간을 흉내 낸 해학적인 표현이라고 보면 돼요. 12지신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잖아요. 책가도라는 공간에 인간군상 면면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사람마다 생각과 관심사, 생활 방식이 모두 다르니까 공간도 제각각, 해석도 제각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지요. <한글 책가도>라는 작품 말고 글자 하나하나를 공간으로 생각하고 ‘놀이터’라는 제목을 붙인 시리즈가 있는데요, <놀이: 터 ㅎ(해당 자음)> 이런 식으로 이름을 표현해요. 놀이는 ‘즐거움’이고 터는 ‘공간’을 뜻해요. 공간 속에서 놀이하는 거지 놀이터에 가서 노는 게 아니거든요. ㄱ, ㄴ, ㅇ 등 글자마다 공간이 다 달라요. 사람의 욕구나 희망을 각각 담고 있는 거예요.

    한글 책가도
    놀이: 터 시리즈
    축제

    한글의 어떤 매력이 이 일을 계속 하게 하나요?

    석사 논문을 쓰며 한글 연구를 시작했어요.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 오행이라는 동양 철학에 한글로도 모든 게 다 통하는 거예요. 삼라만상을 한글에 대입시켜서 만들기 시작한 한 것인데요, 하다 보니 색채도 오행 오감으로 맞추고 그 속에 이야깃거리를 끌어내려고 했죠. 동양사상과 맞는 한국적인 것을 더 한국화시키는 방법적인 요소를 찾은 거예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에서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실용성’이잖아요. 실용적이려면 쉬워야 하고요. 제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쉽고 재미있게 하는 거고, 보는 이들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면 좋겠어요.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교육도 하고 계시잖아요.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나요?

    처음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에게 ‘도를 아세요?’라고 물어요. 반응은 어리둥절해하겠지요.(웃음) 그런데 다시 ‘이도를 아세요?’라고 물으면 그때야 아하~ 하고 웃는 거예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글에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제 수업 핵심이에요. 거기서부터 소통이 시작되거든요. 그래피와 아트가 어떻게 다르냐면요, 그래피는 글과 말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지만, 아트는 굳이 커뮤니케이션을 안 해도 돼요. 중국 작가 중에 쉬빙(徐冰, Xu Bing)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의 <천서>라는 작품을 보면 한문인데, 한문 같지 않은, 전혀 읽히지 않는 한문 천 개의 글자를 만들었거든요. 느낌이 남다른 이미지로서 다가오도록요. 그걸 보면서 한글도 익히지 않아도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생들에게도 글자를 그냥 공간에 뿌려놔라 그러거든요. 이런 연습으로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타이포그래피가 나올 것 같아요.

    타이포그래피 아트를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부분이 있다면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그 말에 많은 동감을 해요. 많이 베끼다 보면 자연스레 새로운 것도 해보게 되거든요. 보통 이 단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업에 대해 스토리텔링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해요. ‘스토리’는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텔링’은 방법적인 문제이거든요. 이미지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야기하고 연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개성을 찾으실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도시
    [좌]꿈, 일상 [우]꿈, 허상
    한글책가도_경주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제가 전시를 하거나 갤러리 쪽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어떤 작품이 좋은 거예요?, 어떤 그림을 사야 하나요?”라고 사람들이 많이 물어요. 그럼 저는 “그냥 본인이 봐서 좋은 그림이 좋은 그림이지요.”라고 대답해요. 한 번 보고도 ‘쉽고 재미있다 그리고 예쁘다’라고 느껴야 좋은 거죠. 누가 추천한 그림을 사서 집에 걸었는데 막상 무서움을 느낄 수도 있거든요. 그림의 느낌이라는 것이 너무 주관적이기 때문에 본 작품의 미학적인 해석보다 일단 자기가 좋고 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업 프로세스와 스타일은 어떤가요?

    일상에서 하나하나 따와 아이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요.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아이콘들을 총집합하는 거죠. 예를 들면 순간순간 길을 걷다가 또는 사극을 보다가 한복에 놓인 자수를 보고, 민화를 보고 색채를 따오기도 해요. 하지만 고전적인 색채들은 톤 다운이 되어 있어요. 저는 그 톤을 올려서 현대적인 느낌도 나게 고쳐서 쓰는 거지요. 또, 예쁜 공간이 있으면 사진을 찍었다가 아이콘화시키고 제 나름의 공간으로 재배치하기도 해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요?

    한국적인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해요. 하라 켄야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요, 전통적인 걸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물 자체도 시간이 흐르면 변화하지만, 그 쓰임새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 비녀를 머리에만 꽂는 거로 생각하지 않고 브로치로도 달 수 있다는 거예요. 시각적인 차이를 세밀하게 잡아내고 그걸 새롭게 표현해내는 작업,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공간적인 것이 허락된다면, 그 공간을 입체적인 작업으로 꾸미고 싶어요. 그게 야외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인데요, 예를 들면 <한글 책가도>가 한 벽을 천체로 차지할 수 있고, 그림이 아닌 입체 형태로 만들어 튀어나오게도, 아니면 들어가 보이게도 하고 싶은 거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의 작업이나 한국적인 콘텐츠를 담은 책을 쓰리란 계획이 있어요. 내년 5월 22일(목)~30일(금)까지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뚱’에서 한글타이포 작품 전시를 하는데요, 그즈음에 이 책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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