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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글꼴 디자이너 노은유

    “안그라픽스 타이포그래피 연구소가 올해 출범했어요. 이곳에서 계속 글꼴을 만들고 연구해 나갈 계획입니다.”


    인터뷰. 노은유

    발행일. 2012년 10월 12일

    한글 글꼴 디자이너 노은유

    그녀는 한글 글꼴 디자이너다. 그녀는 연구자다. 그녀는 선생이다. 그녀는 직장인이다. 그녀는 감성적이다. 그녀는 투명한 눈동자를 지녔다. 그녀는 조곤조곤하게 말한다. 그녀는 활자를 사랑한다. 그녀는 외국어 소리를 우리 글자로 표현한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다. 그녀는 뛰어난 추적자다. 연구하는 디자이너 노은유, 그녀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기존에 있는 글자의 모양을 다듬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 계시잖아요. 파격적인 작업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웃음) 언어학자들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긴 한데 디자이너가 상상하는 또 다른 형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새로운 자소를 만들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일본어 ‘つ’를 우리말로 표현하려면 쓰도 아니고 츠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쌍치읓을 만들어봤어요. 발음기관이나 소리를 연구해 논문도 쓰고 ‘소리체’라고 이름 붙였어요.

    새로운 자소를 만드는 일은 틀을 깨는 일이기에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언어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하고 망설이기도 했죠. 하지만 창의성이라는 측면을 좀 더 생각한다면 실험성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리체가 글꼴화 되어 출시되기를 바라고요.

    언제부터 소리를 글자로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전공했어요. 외고에 다녔거든요. 자연스럽게 언어학에 관심이 생겼죠. 어렸을 때부터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서 외고에 갔다가, 가서 좌절하고 다시 정신 차린 거죠(웃음).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 공부를 하면서 흥미가 생겼고요. 개인적으로 언어학적인 면과 디자인적인 면을 함께 아우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한글공방에서 활동 중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대학 때 타이포그래피 한글꼴 소모임이 있었어요. 졸업 후 각자 활동을 하다가 마음 맞는 사람들 몇이 모인 거죠. 연령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인데도 즐겁게 모이고 있어요. 배움도 갖고 술도 마시고(웃음).

    ▲ 소리체, 2008
        일본어·중국어·영어·독일어에 있는 우리말과는 다른 소리를 조선시대 옛한글 자소로 복원하거나
        훈민정음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자소를 만들어 넣은 외국어 발음기호용 한글 글꼴
    디자인을 전공하거나 디자이너로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타이포그래피와 마주치게 된다. 카페 간판을 보고, 이력서를 쓰고, 명함을 만들고 하는 것도 이미 타이포그래피에 익숙한 행위인 것이다. 글꼴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글꼴 디자이너로서 그녀는 활판 인쇄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활판 인쇄의 매력은 뭔가요?

    질감이 더 풍부해요. 활자로 찍으면 요철이 존재하니까 디지털 인쇄에서 느껴지는 얇은 느낌과는 다르죠. 종이 종류와 결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따뜻한 인간미가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마음대로 안 되는 점도 매력이에요. 인쇄를 할 때 칼처럼 딱 맞추려고 해도 안 맞춰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프로세스는 디지털과 같지만 활판은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하니까요.

    몸으로 직접 해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오타가 많이 나오죠(웃음). 홍익대학교인데 흥익대학교라고 찍고. 글자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제약이 주는 표현의 극대화가 있어요. 작업의 질이 더 좋게 나오기도 하고. 오히려 한계를 느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더라고요. 학생들에게도 힘들어하기보다 재미로 즐겨보라고 하죠.

    글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내가 어떤 글자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과 어떤 회사를 위한 건지, 어떤 표현과 느낌을 낼 것인지, 상황에 맞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같은 글자라 해도 간판을 만드는 용도인지 핸드폰에 들어가는 용도인지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으면 안 맞는 거죠.

    ▲ 로명체, 2010
        가로줄기가 가늘고 세로줄기가 굵은 한자 명조 계열의 글꼴
    ▲ 소리체·로명체를 사용해 제작한 이상 시집, 2010
    그녀는 디자이너지만 연구자로서의 기질이 강하다. 박사논문을 쓰는 동안 한글 활자계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최정호의 흔적을 추적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까지 건너가서 초기 작업물을 찾아냈다. 아무도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주변의 반응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일단 부딪쳐보자! 라는 열정 하나로 움직였다. 꿈을 꾸는 듯 투명한 눈동자 속에는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찾아내는 추적자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담겨 있다. 

    디자이너인 동시에 연구자잖아요. 그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호기심이 많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거든요. 탐정 기질이 있나 봐요.(웃음) 누군가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기록을 남겨야 되지 않나 싶어요. 글꼴 디자이너로서 뿌리를 찾는 작업이기도 하고.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어요.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저 혼자만의 힘이나 실력으로는 하지 못했을 일이죠.

    최정호 선생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최정호 선생은 지금 활자의 기본틀을 잡았다고 할 만큼 활자시대의 거장이세요. 현재 디지털 글꼴들은 거의 최정호 선생의 원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정확하게 연구된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추적하게 되었죠. 어떤 글꼴이든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보니 도달점은 항상 최정호라는 인물이더라고요.

    ▲ [왼쪽부터 시계방향] 최정호 글꼴 ‘꽃’ 모음 / 모리사와체 / 최정호가 사용했던 레터링 도구
    ▲ [왼쪽] 2010년 시인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시각시(Visual Poetry)> 전시작 ‘날개’와 ‘27살의 유언’
    ▲ [오른쪽] 경복궁에서 열린 <한글, 세상과 어울림: 2010 한글글꼴전> 전시작 ‘세종 世宗’(로명체로 작업)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안그라픽스 타이포그래피 연구소가 올해 출범을 했어요. 그곳에서 글꼴을 만들고 연구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도 계속 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소리체를 출시하는 게 목표고, 출판은 최정호 선생에 대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에요. 글꼴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기억해야 하는 이름 세 글자지만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읽고 쓰는 글자의 원류가 그 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까지 박사논문 쓰느라 작업을 많이 못 했어요. 그래서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네요. 작업을 통해 살아 있는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꼴을 만들고 싶어요. 디자인과 연구, 두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제 강점인 것 같아요. 대표작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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