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경험을 했지만, 나오는 결과가 확연히 다를 때가 많다. 그게 바로 관심의 차이. 대학교 소모임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접한 이후 집요한 관심과 연구를 거듭하여 세상과 공유하려는 이가 있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밈]의 김의래 실장. 그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다양한 강의와 학문에 지식을 동반한 실험적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교육자이자 타이포그래퍼. 인상적인 그의 작품을 만나보았다.
내가 소개하는 나는?
‘스스로 만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이야기 하면 남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대해서는 그것을 수긍하기 위해 상당히 어려운 합의들을 거쳐야 한다는 말도 되지요. 개인적으로 주체적인 성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런 성향 때문에 스튜디오를 창업하게 되었지만 마찬가지로 의뢰인들과 의견을 합의하는데 있어 종종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하죠. 현재는 기획하는 집단인 포니테일과 함께 ‘밈앤포니테일’이란 이름으로 포니테일의 김선미 편집장님과 함께 회사를 운영 중입니다.
스튜디오 이름의 뜻
‘밈(meme)’은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문화복제 유전자’를 의미해요. 이는 복제를 통해서 끊임없이 확대하는 문화의 속성을 가리켜 리차드 도킨스가 진화생물학적 입장에서 지칭한 용어이지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할 당시 한참 진화생물학 관련한 책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영향을 받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복제’라는 단어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지되는 반면 진화생물학에서는 끊임없이 발전적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의 근본으로 판단하기에 매력적인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밈(meme)의 스펠링이 일반적으로 ‘밈’이라고 발음되기 보다는 ‘미미’, ‘메메’로 읽힐 여지가 있어 발음 기호인 ‘mim’으로 결정하게 된 거예요.
요즘 최고의 관심사
스튜디오 [밈]이 갖고 있는 (혹은 가져야 할) 시각적 성격.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의 시각적 성격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개성이 합쳐져 보여지는 것이지만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거예요. 한마디로 “[밈]이 작업했다.”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으면 하는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2010년도에 살림 출판사에서 발간한 <1/n>이라는 인문학 잡지를 디자인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때의 작업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잡지의 편집 디자인 뿐만 아니라 잡지의 기획서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참여해 의견을 내고 협의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편집 디자인 자체를 다방면적으로 이해하게 된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죠. <1/n>이라는 잡지는 예산 문제로 1년 반 만에 폐간 되었지만, 그때 만났던 인연들과 지금까지도 계속 연을 맺고 다양한 일들을 해오고 있어요.
다양한 워크샵과 강의를 진행하는데, 주로 어떤 내용인지?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추가로 비영리 디자인 대안 교육 공동체인 ‘타이포그래피 야학’을 운영하고 있어요. ‘타이포그래피 야학’은 타이포그래피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현업의 디자이너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대상에 특별히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아요.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처음 대학에 진학해서 들어간 소모임이 타이포그래피 관련 모임이었어요.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해요. 그리고 김주성, 성재혁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 타이포그래피를 배우면서 그 관심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졌던 것 같아요. 저는 타이포그래피를 한글 타이포그래피와 로만 타이포그래피를 특별히 나누지 않고, ‘타이포그래피’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한글과 로만 글꼴 섞어 짜기 연구’ 소개
섞어 짜기 연구는 말 그대로 “한글과 로만 글꼴을 어떻게 함께 조판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대부분 암묵적인 경험으로 한글과 로만 글꼴을 섞어 짜고 있지만, 이것을 조금 더 체계화하여 방법론적인 것을 형식적 지식으로 정리 하고자 하는 연구이지요. 앞서 학부 과정 결과인 졸업 전시로 동아시아권 민부리 문자체계와 어울리는 로만 알파벳의 비율과 글꼴을 고민하여 전시 하였고, 최근에는 조금 더 깊게 다뤄보고자 섞어 짜기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계획하고 있어요.
자신을 빠져들게 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매력
하얀 지면위에 적절하게 배열된 검정색 글꼴이 1200dpi이상의 레이저 프린터에서 출력 될때의 느낌!
작업 프로세스, 작업 스타일
우선 어떤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하고, 그것에 어울리는 판형과 글꼴을 고르면서 작업을 시작해요. 그래픽 요소 보다는 본문에 사용할 글꼴을 먼저 결정하는 편이죠. 이는 표면적인 그래픽 요소보다 본문의 레이아웃에서 전체 작업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항상 다양한 본문용 글꼴의 특징들을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새로운 본문 글꼴이 나오면 가능한 미리 구입해서 프린트 테스트를 해보는 편입니다.
영감을 주는 어떤 것
과거에는 선배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요. 그냥 떨어져 있는 종이 조각이나 건물의 질감 등에서도 문득 영감을 받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시간. 오랜 시간 동안 잡지 디자인과 클라이언트 일을 진행하다 보니 생긴 습관인데, 작업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리 좋은 작업이 나와도 의뢰인이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마감 시간’의 강박에 필요 이상으로 시달리기도 하죠.
궁극적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공동체를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디자이너라면 우리 사회와 주변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시각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대상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들과 여러 가지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닐까 합니다.
계획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밈]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또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이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