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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 이새봄의 ‘새봄체’ 제작기 #3

    ‘새봄체’ 제작 과정을 논문과 전시로 기록한 이유


    글. 이새봄

    발행일. 2013년 07월 09일

    디자이너 이새봄의 ‘새봄체’ 제작기 #3

    새봄체의 원형을 <옥원듕회연>으로 정한 후 원형과 친해지기 위해서 임모(臨摹) 과정, 즉 <옥원듕회연>의 글씨를 따라 그려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붓으로 따라 써보기에는 그만한 필력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붓으로 써서 익히기보다는 필법이 나와 있는 교본이나 <옥원듕회연>의 자형을 모아놓은 책[『한글궁체서법 – 정자 문장 쓰기편』(박병천, 1997), 『궁체교과서 옥원듕회연 권지뉵』(이지연, 1995), 『한글궁체 옥원듕회연 자전』(임인선, 2005) 등]을 보면서 따라 그려보았습니다. 무작정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교본에 나와 있는 필법을 따라 그려보면서 <옥원듕회연>의 글자꼴의 특징을 익혔습니다.

    ▲ <옥원듕희연> 원전(왼쪽)과 그것을 토대로 따라 그려본 임모본

    이 아름다운 <옥원듕회연>의 서체를 누가 썼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옥원재합기연>(1786, 서울대 규장각 소장)이라는 소설과 구성 권수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똑같기에 <옥원듕회연>이 이 책의 이본(異本)이라고 불립니다.[『궁체이야기』(박정자·신정희·조주연 외, 2001), 114쪽 참고] 고로 <옥원듕회연>이 쓰인 연도를 추측해본다면, 대략 1800년도 전후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앞의 책 171~172쪽 참고)

    붓글씨체의 특징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서예에서는 보통 글씨에 필사자의 마음과 성품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비록 이 <옥원듕회연>의 글씨를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글씨를 익히고 바라본 저로서는 이 책을 쓴 사람이 분명 단아하면서도 굳은 심지의 성품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글씨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서 때로는 강인한 글자꼴로, 때로는 부드러운 글자꼴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한 글자 글자마다 사람의 마음과 성품이 드러나는 것. 이것이 바로 붓글씨체의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또한, 붓글씨체는 같은 글자라도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글자꼴이 달라집니다. 앞서 쓴 글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 기분, 필력 혹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 붓글씨체에서 나타나는 비고정적인 글자꼴(위)과 활자에서 보이는 고정적 글자꼴(아래)의 비교

    위의 그림을 보면 <옥원듕회연> 권지뉵의 한 면에 ‘나’라는 글자가 총 세 군데에 쓰였는데 그 세 글자 모두 글자의 꼴이 조금씩 다르지만, 활자에서는 하나의 꼴로 고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붓글씨체에서는 글씨를 쓰는 사람의 예술적 의도나 환경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하여 글자꼴이 고정적이지 않게 되며, 활자는 활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글자꼴로 ‘고정적이게’ 됩니다. 이러한 특징이 붓글씨체와 활자를 구별하게 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옥원듕회연>의 서체가 활자로 되기 위해서

    활자라는 것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유형화하고 고정화하여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글자’를 말합니다.[『타이포그래피 사전』(2012)] ‘유형화’와 ‘고정화’가 바로 활자의 주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앞서 이야기한,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꼴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정화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옥원듕회연>의 서체 또한 활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글자꼴들이 고정화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1화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옥원듕회연>의 서체를 활자로 만들 때 원도를 스캔 받아서 그대로 아웃라인을 딴 후 선을 정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옥원듕회연> 서체의 특징을 파악하고 공통적인 특색을 찾아서 활자로 만드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과정에서 서체의 특징 중 취해야 하는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네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방법 1. 줄기의 굵기를 고정화하기

    제일 먼저 고정화한 것은 글자의 굵기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붓글씨체의 특징이 비고정적인 글자꼴입니다. 꼴이 다르다 보니 글자 줄기의 굵기 또한 각기 달랐습니다. 그래서 활자로 만들면서 줄기의 굵기를 고정시켜 주었습니다.

    새봄체가 본문용으로 사용되고자 하므로 기존 본문용 활자(명조체)의 기본 줄기의 굵기를 조사한 후, 그와 비슷하도록 기본 줄기의 굵기를 설정하였습니다. 세로 줄기의 굵기는 기존의 것과 유사하게 하였으며, 가로 줄기는 기존의 것보다 더 굵게 하였습니다. 명조체는 세로 줄기와 가로 줄기의 굵기 대비가 큰 특징을 갖고 있지만 <옥원듕회연>의 서체는 글자의 줄기에서 단단한 획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명조체의 특징을 따르지 않고 <옥원듕회연> 서체의 특징을 따라서 가로 줄기의 굵기를 비교적 굵게 만들었습니다.

    ▲ 현재 본문용 활자(명조체)와 새봄체의 기본 줄기의 굵기와 굵기 비율

    방법 2. 글자 공간을 배분하기

    한글을 활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완성형 한글코드(KSC 5601)로 지정된 2,350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2,350자를 만들 때,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디자이너의 감각에만 의존하여 만들기보다는 2,350자 전체를 통괄하는 규칙을 설정하고 적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체계적으로 디자인하기에 좋습니다. 이런 규칙을 설정해 줌으로써 비고정적이었던 붓글씨체를 보다 유형화하고 고정화할 수 있는 글자꼴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글자의 각 요소들(닿자, 홀자, 받침)이 차지하는 기본 공간을 설정할 때 규칙을 세웠습니다. 글자의 모임꼴(가로모임꼴(예: 마, 맘), 세로모임꼴(예: 모, 몸), 섞임모임꼴(예: 뫄,뫔))에 따라 그룹으로 나누었고, 각 요소의 기본 공간을 할당해주었으며 각 요소가 모임꼴이나 받침의 유무에 따라 변화할 때에도 규칙을 설정하여 주었습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닿자를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ㅁ’으로 정했으며 그 공간에서 시각삭제 현상을 이용하여 요소마다 위치와 높이, 넓이 등을 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의 ‘ㅁ’이 매의 ‘ㅁ’으로 변할 때 넓이와 높이가 일정 크기(약 20units) 감소하었는데 이러한 규칙은 맘의 ‘ㅁ’이 맴의 ‘ㅁ’으로 변할 때에도 같게 적용이 되었지요. 또한, 마의 ‘ㅏ’에서 받침이 생겨 맘의 ‘ㅏ’로 될 때와 매의 ‘ㅐ’에서 받침이 생겨 맴의 ‘ㅐ’로 될 때, 이 둘의 변화하는 요인과 성격이 같기 때문에 홀자들의 높이가 감소하는 수치 또한 같도록(약 340units) 설정해주었습니다.

    ▲ 글자의 모임꼴에 따라 설정한 글자 요소들의 공간

    이러한 규칙들은 한글 전반적으로 적용되었으며 이것은 한글 디자인 작업 초반에 글자의 뼈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후반 작업 때 한 글자 내에서의 조형성과 다른 글자들과의 조화와 균형을 위한 수정 과정 중 이 규칙에 벗어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방법 3. 글자의 꼴에 붓의 맛을 적용하기

    새봄체가 부드러운 글자 표정을 나타내도록 붓이라는 필기도구를 택하였었습니다. 그렇기에 글자의 형태를 최대한 활자화하면서도 붓의 맛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글자의 변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일부를 간략하게 보면 위의 그림과 같은데, 글자 ‘나’의 원형(<옥원듕회연>의 서체, 첫 번째)에서부터 완성된 ‘나’의 모습(네 번째)까지 변화과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닿자 ‘ㄴ’의 형태만을 살펴보게 되면, 원형의 ‘ㄴ’이 워낙 부리가 길어서 세로 줄기의 대부분이 부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부리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음 줄기로 꺾어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형태도 강하게 꺾어진 것처럼 표현되어있고 이음 줄기가 직선적이고 두껍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형을 그대로 활자로 만들기에는 닿자의 높이가 낮아서 가로 흐름선이 흔들리게 되는 요인이 될 것이고, 강한 획의 형태로 인해 글자 표정이 부드럽게 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형태를 포기하고 현 명조체의 ‘ㄴ’ 형태(아래 그림의 다섯 번째 ‘나’ 참고)를 따랐습니다. 그러다 가로쓰기를 위해 글자꼴을 점차 수정하게 되면서 잃어버렸던 붓의 맛을 제 방식대로 가미하여 기존의 ‘ㄴ’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한 형태로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 [왼쪽부터] <옥원듕회연>의 서체, 처음 제안서 냈을 때의 ‘나’, 가로쓰기를 위해 수정했던 ‘나’, 최종 완성본 ‘나’, 현 명조체의 ‘나’

    방법 4. 가로쓰기에 맞게 글자꼴 만들기

    새봄체의 콘셉트가 ‘가로쓰기용 본문용 붓글씨체’였기 때문에, 새봄체를 만드는 내내 ‘가로쓰기’에 맞는 글자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원전의 형태를 그대로 취하게 되면 글자의 무게중심이나 균형이 오른쪽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가로로 쓰고 읽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로쓰기에 맞게 하기 위해 적용했던 방법의 하나가 아래 그림처럼 세로쓰기에 맞게 글자의 오른쪽에 굳어져 있던 글자꼴의 균형과 무게중심을 글자의 가운데로 옮기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한글 전반에 걸쳐 적용되었지요.

    ▲ <옥원듕회연>의 ‘수’(왼쪽)와 새봄체의 ‘수’(오른쪽)

    이 방법뿐만 아니라 닿자에서 홀자로 넘어가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해 홀자의 부리를 더욱 길게, 그리고 부리가 이루는 각도를 더욱 수평적이게 만드는 방법을 적용하기도 하였고, 각 모임꼴마다 닿자의 높이 변화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함으로써 글자들이 모였을 때 닿자의 상단 흐름선이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가로쓰기에 맞게 하는 것이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글자꼴과 속 공간의 수정을 통하여 시선의 가로 흐름선이 점차 흔들리지 않게 되어 가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답니다.

    새봄체를 만들면서

    벌써 약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새봄체와 함께 많은 일이 있었지요. 혼자 작업하였기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로 인해 몇 번씩 엎어가면서 진행하였고, 진행 과정을 활자디자인 분야의 선배님들과 선생님들께 보여 드리고 조언을 받으면서 여러 번 깨지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새봄체를 만들면서 겪었던 모든 과정이 저에게는 선물이었고 앞으로도 활자디자이너로서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새봄체를 만들며 겪었던 과정들을 여러 통로을 통하여 공유하려고 합니다. 논문 「한글 궁체 연구를 통한 현대 활자꼴 개발」(2012)을 통해 새봄체의 시작과 제작과정, 결과물을 자세히 담아내었고, 현재는 <새봄의 흐름> 전이라는 전시회를 통하여 새봄체의 제작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 전시회는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뚱에서 7월 17일까지 열립니다. 제가 항상 상주해 있으니, 전시회에 오셔서 저에게 물어보시거나 말을 걸어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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