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보면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 브랜드가 있다. 왜? 어디가 남다른 걸까? 디자인, 로고, 컬러?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브랜드 파워를 만드는 숨은 주역은 누구일까? 현대카드, 에스케이텔레콤, 하이트진로, 다음 커뮤니케이션, JTBC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굵직한 작업들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 브랜드 디자인에 서체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한국 디자인의 한 획을 그으며 선보이는 작업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토탈 임팩트(홈페이지). 오영식 대표(Executive Creative Director)와 차재국 부사장(Managing Director, Creative Director)을 만났다.
토탈 임팩트에 대해서라면 국내 최초로 회사 고유의 국문과 영문 서체를 개발했던 현대카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오영식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서체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한 작업이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한 가지 안타까운 건 현대카드 이후 사람들이 서체만 만들면 기업이든 브랜드이든 이미지가 쉽게 바뀐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현대카드가 파워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체 때문이 아니라 아이덴티티가 명확했기 때문이거든요. 기업 아이덴티티를 전제로 타입페이스 자체로 인식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캐릭터가 강한 디스플레이 폰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입니다. 일관성 있는 관리도 중요했고요. 심벌이나 로고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체를 만든 건데, 만일 서체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면 심벌에서 이미지를 강조한다든가, 다른 게 나왔을 거예요. 제한된 상황에서 최선을 찾다 보니 나온 결과일 뿐, 어떤 상황에서나 무조건 서체만 만든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작업마다 해결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하지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현대카드 서체를 기획했다는 사람 회사가 참 많습니다. 제가 듣기로도 다섯 군데 정도 되더군요(웃음). 그 뒤 개발한 SKT, JTBC 경우도 그렇고요.
차재국
허탈하죠. 약간의 수정을 본인들이 만든 것처럼 포장하는 사람들이…(웃음).
한 번 보면 각인이 되어서 쉽게 잊히지 않는 작업들이 많아요.
오영식
결과물이 ‘딴딴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는 원칙이라면 작업을 하면서 왜? 라는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에 대해서도 우리 작업에 대해서도 이게 정말 최선일까? 이게 가장 좋은 답일까? 를 항상 고민하지요.
차재국
마지막으로는,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데, 그리드를 꼭 지켜요. 형태가 나올 때 설계도면 짜듯이 딱 맞게 떨어져야 해요.
작업 스펙트럼도 매우 넓은 것 같아요. 어떻게 작업을 하시나요?
오영식
가끔은 우리가 봐도 아니 어떻게 이런 걸…(웃음)! 정말 한 회사가 한 거 맞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 차재국 부사장의 지휘 아래 탄생한 진로하이트 쏘달의 경우가 아마 기존의 우리 작업과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고 느끼실 것 같아요. 시간이 정말 없었는데 기존과는 다른 접근과 순간 집중력으로 뽑아낸 거라 제가 봐도 뿌듯해요.
차재국
마케팅 정황상 시장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시점에서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네이밍 결정이 안 되어서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고요. 매일 한 번씩 피드백 주고받으면서 1~2주일 안에 완성됐어요. 중요한 건 누구나가 다 그 시간 안에 클라이언트가 만족할만한 것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게 정말 가능하네요(웃음)?
오영식
예전 직장 생활을 할 때 상사에게 한 번 혼난 적이 있는데 시간이 너무 없다고 하니까 “프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제일 잘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시간 충분히 주면 누구든 못 하겠느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떤 디자인이든 제한은 다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고의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작업할 때도 소모적이지 않으려고 하고요. 클라이언트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작업을 할 경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차재국
클라이언트의 안목이 높아서 먼저 그리고 있던 그림과 저희가 제시한 것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지 않더라도 저희가 제시한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쪽 의견에 손을 들어주기도 하고요. 좋은 작업을 만들려면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아이덴티티, 공간, 패키지, 애뉴얼리포트, 전시 등 전 방위적으로 토탈 솔류션을 찾고 풀어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프로젝트에 대한 심도 깊은 공부에서 나온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안목, 이거다! 싶으면 끝까지 설득하는 자신감, 결과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하는 결과물. 토탈 임팩트의 행보에 이목이 주목되는 이유도 기대를 깨는 레퍼런스에 대한 기대와 믿음 때문일 것이다.
논리와 합리성이 토탈 임팩트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는데 작업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차재국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는 수백 가지의 방법이 있어요. 너 왜 이렇게 했니? 점 왜 찍었니? 왜 빨간색이니? 끝까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생각하고 결과에 대해 평가해요. 시작부터 ‘왜?’냐고 묻고 들어가지만 모든 과정의 끝에도 ‘왜?’가 있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두 사람만 봐도 성향이 달라요. 엄청 싸워요. 하지만 좋은 결과물을 위해 싸우거든요. 대표님이 디자인했다고 무조건 오케이, 이런 건 없어요(웃음).
오영식
퀄리티 높은 작업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해 열린 크리틱을 하는 게 저희의 장점인 것 같아요. 시안이 100개 있어도 고르는 안목은 연차에 따라 다르거든요. 하지만 선별하는 기준이 정확하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설렁설렁 일해 온 사람들이 아니고 정말로 뼈를 묻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왔으니까요.
계속해서 좋은 작업이 나오려면 클라이언트의 안목과 토탈 임팩트의 실력이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외에도 플러스알파가 있다면 뭘까요?
오영식
저희 특징이기도 한데 일을 맡으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한 번 맡으면 3년, 5년, 10년까지도 가는 일이 많거든요. 케미가 잘 맞는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것도 행운이지요. 클라이언트나 저희나 생각하는 방향이 전략적, 논리적이라는 점도 있고요.
차재국
케미도 있지만 무조건 클라이언트의 생각에만 따르진 않는다는 점도 있어요. 안에서 보는 시각과 밖에서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잖아요. 저희는 저희 생각대로 컨설팅해서 제안을 하죠. 그것을 받아들이는 클라이언트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어요. 그쪽에서 원하는 게 있어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엔 세 번은 어필을 해요. 받아들여졌을 때 좋은 레퍼런스가 나온 경우가 많았고요.
함께 온갖 전투를 치른 전우 같은 느낌도 들고, 유대감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오영식
초기 멤버가 세 명인데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아요. 알고 지낸 지 20년이니까 가족보다 더 든든한 존재들이죠. 가족보다 더 오래 같이 지냈으니까. 대표인 제가 얘기해도 부사장이 듣고 있다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결론 내죠(웃음). 결론이 나오면 숙성의 시간을 가져요. 장인정신을 갖고 계속 다듬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 실장이고요.
차재국
식구라고 생각해요. 저희 세 사람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그래요. 컴퍼니라는 말도 어원을 살펴보면 빵을 나눠 먹는 식구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토탈 임팩트의 레퍼런스에 대한 기대가 워낙 높으니까 스트레스도 클 것 같아요. 예전 작업보다 좋은 결과를 내놓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신지요?
오영식
성격 아닐까요?(웃음)
차재국
일에 대한 기대치보다 이 프로젝트의 문제점은 그게 아닌데 자꾸 다른 방향을 제시할 때, 그때 스트레스가 더 커요. 기본적으로 일이라는 게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거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 공간이 없어서 못 한다, 이런 건 변명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일의 본질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니까요. 변화를 바랄 때 첫 번째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을 해야 하고, 두 번째는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 두 번째가 저희 일이지요. 그런데 저희는 두 번째뿐만 아니라 첫 번째까지 해내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회사와 차이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공부를 정말 많이 해요. 백 데이터가 풍부할 수밖에 없죠. 예를 들면 어느 맥주 회사보다 저희가 맥주를 더 잘 알고, 어떤 카드 회사직원보다 카드 서비스에 대한 점을 잘 안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를 이해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토탈 임팩트의 공격력은 강한 공부력과 끈끈한 유대감에서 나오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알았다.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마인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도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상식과 기본적인 룰을 지키는 일이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정도를 걷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사람 중심의 정신. 이것이야말로 토탈 임팩트가 오랫동안 최고를 유지해온 이유가 아닐까.
굉장히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작업하시는 것 같아요.
오영식
저희한테는 그게 당연한 거예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야 기반이 튼튼하다고 믿으니까요. 회사도 제가 계속 잡고 가기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맡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부사장 중심 체계로 가고 있어요. 20년 동안 함께 해온 부사장과 실장은 때로는 가족보다 더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에요.
차재국
대표님과 실장 옆에 있으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도움이 필요할 때 선뜻 도움을 주신 적도 많고요. 일도 사안에 따라 대표님이 혼자 남아서 하실 때도 있어요.
오영식
금요일은 야근 없이 정시 퇴근이 원칙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영문 자료가 필요한 일이 들어오면 그 일은 제가 제일 잘하니까 그냥 혼자 해요. 30분이면 될 일을 두세 사람이 몇 시간씩 남을 이유가 없고,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차재국
모든 자료를 모아서 드리고 저희는 퇴근하는 거죠(웃음).
토탈 임팩트만의 남다른 운영방식이 있는 것 같네요.
오영식
되도록이면 평등하게 일할 기회와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사무실 기기도 임원이든 사원이든 동일한 제품을 쓰고, 오래 일한 친구들에게는 한 달 휴가를 주기도 하고, 가장 좋은 컴퓨터는 제일 손 빠르고 일 잘하는 사람한테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종이컵을 쓰지 않고 개인 텀플러를 갖고 있는데 작은 일이지만 이런 행위로 나무 한 그루 살릴 수 있잖아요. 2004년에 시작했으니 10년인데 그동안 한결같이 유지해온 것도 있고 바뀐 것도 있고 그러네요.
차재국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과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주 똑같을 수는 없겠죠.
오영식
저희도 직장생활 하면서 싫은 경험 많았고. 그래서 직장에 다닐 때 정말 싫었던 것만큼은 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부사장님은 외주를 준 경우 돈 입금 날짜는 정말 칼 같이 지키더라고요(웃음).
차재국
그냥 상식이고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
JTBC 작업 때 윤디자인연구소와 협업을 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협업을 많이 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떠신가요?
차재국
JTBC의 경우 저희가 컨설팅과 아이덴티티, 영문 전용서체를 맡아 진행하고 윤디자인에서 한글 전용서체를 만들었죠. 반응도 좋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내부에서 소화시키는 일도 있지만, 프로젝트마다 다르니까 필요한 경우 협업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전체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솔류션을 찾았는데 여기엔 캘리그래피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 싶으면 그에 적합한 캘리그래퍼를 찾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오영식
논리적으로 사고해서 답을 찾아가는 저희 특징을 이해하시고 통하는 분들과는 오랫동안 일을 같이해요. 특히 윤디자인연구소 하고도 많은 일을 같이했는데, 각자 잘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예전부터 함께 일했던 분도 많아서 앞으로 더 많은 일을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정말 일을 사랑하면서 살아오셨는데 최근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차재국
오랫동안 완벽주의로 살아왔어요. 지금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고 제 기준이 높다는 것도 인정해요. 같은 컨디션이면 페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두 가지가 있어요. 쪽팔린 거랑 치사한 거. 일하든 사람을 만나든 이거 두 가지는 잊지 말고 살아가려고 해요.
오영식
전 개인적으로 그래픽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가거나 집안의 도움을 받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키운 거죠.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해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개인의 명예를 높이기보다 회사가 잘되기를 바라고 5년 후쯤엔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요. 은퇴 후에도 월급 주면 좋겠는데(웃음). 어느 순간 인생 전체를 보게 되면서 인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희 작업에도 품격이 담기길 바라고요. 살아갈수록 인격을 갖춘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