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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토그램 애니메이션 감독 조주상

    자칭 ‘애니메이션 만드는 NPC(Non Player Character)’ 조주상


    인터뷰. TS 편집팀

    발행일. 2012년 06월 29일

    픽토그램 애니메이션 감독 조주상

    혹시 이런 상상을 해본 적 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픽토그램. 특히 남자와 여자를 표시하는 화장실의 남녀 픽토그램이 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공공장소나 거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픽토그램(pictogram)은 고정된 사물이다. 정보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이 디자인은 해석의 여지가 없는, 표지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픽토그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스쳐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차이를 포착해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이 사람, 애니메이션 감독 조주상이다. 

    조주상 감독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디자인학 석사 애니메이션 전공. <양성평등>, <편견>, <픽토그램 스토리>, <픽토그램 인사이드> 등의 작품으로 자그레브(Zagreb)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비롯,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수상.

    “움직이지 않는 픽토그램은 움직여야 하는 본질을 가진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픽토그램 스토리>(2008) 연출 의도 중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니까 처음엔 디자인과 관련된 일은 다 했어요. 편집디자인도 하고··· 이것저것 했죠. 그러다 90년대 초반, 제3세대 디자인이라고 해서 웹디자인이 등장했어요. 그렇게 웹디자이너로 10년 정도 일을 했는데, 재미가 없는 거예요. 디자인처럼 종이 등에 딱 고정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10년 경력을 가진 사람이 하루아침에 초짜로 시작하는 건데. 그때 결심을 굳히게 해준 매체가 바로 픽토그램이었어요.

    픽토그램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발상이 신선한데요

    보통 픽토그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목에 ‘픽토그램’이라는 단어를 계속 넣고 있죠(웃음). 저는 디자이너였으니까 픽토그램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고요.

    첫 작품이 여자 화장실 픽토그램이 주인공인 <양성평등>인데, 어떻게 픽토그램을 캐릭터화 할 생각을 하게 됐나요?

    10년간 웹디자이너로만 일했던 사람인데,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해요. 그런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애니메이션이에요’라고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도구가 없었어요. 그래서 공모전을 준비했습니다. 일단 공모전에서 상을 받으면 적어도 실력은 인정받는 거니까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서울여성 디지털 디자인 공모전이었죠. 주제가 ‘양성평등’이었는데··· 사실 상금 때문에 지원했어요. 상금도 많았고, 부상이 노트북이었거든요. 되게 불순하죠?(웃음)

    덕분에 공모전 대상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으셨죠?

    아예 대상을 노렸어요(웃음). 양성평등에 관한 사례를 들어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는데 의미가 없겠더라고요. 대상은 뭔가 달라야 하잖아요. 그때 딱 떠오른 게 픽토그램이었어요. 상의 대부분이 관객상인 걸 보면 관객들도 즐겁게 본 것 같고요.

    ▲ <양성평등>(2004)
         화장실 픽토그램의 여성이 세상에 나와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간다는 내용.
         서울여성 디지털 디자인 공모대전 대상, 춘천 애니타운 페스티벌,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등에서 수상
    ▲ <픽토그램 스토리>(2008)
         화장실의 남녀 픽토그램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 어느 날 여자 픽토그램이 괴한에 의해 납치되자
         남자 픽토그램이 구하러 쫓아간다. 그러나 납치된 여자친구를 구하러 가는 도중에도 남자는
         다른 픽토그램이 처한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준다. 결국 괴한의 소굴까지 왔지만
         커다란 문에 막혀 남자는 절망하고···.

    “픽토그램의 안쪽 생활은 어떨까 궁금했다.”

    <픽토그램 인사이드>(2011) 연출 의도 중

    “픽토그램의 세계는 우리를 둘러싼 가상계라기보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진행되는 또 다른 평행 세계라고 볼 수 있겠다. 픽토그램들이 인간화되고 이미지에서 존재가 되는 형국은 인간에게 부여된 질서의 멈춤의 강제를 인간 삶의 노동과 연결지으며 픽토그램이 일종의 질서의 코드화 장치임을 또는 그 무의식적인 기제가 묻어남을 메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인디포럼 2012, 관객과의 대화 중

    그러면 ‘양성평등’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픽토그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네요?

    인간을 대표하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픽토그램이 유일하잖아요. 그걸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픽토그램을 통해 거창하게는 인류나 평화에 관한 것부터 사회 문제,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 등 ‘우리’의 이야기부터 ‘나’의 이야기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어요. 그건 <픽토그램 스토리>나 <픽토그램 인사이드>를 보면 아실 거예요. 사실 <양성평등>은 지금 보면 속된 말로 굉장히 허접하죠(웃음). 애니메이션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실은 일주일 만에 만든 작품이거든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잖아요

    아이디어로 승부한 거죠. 아이디어 빼고 뭐가 있어요?(웃음) 하지만 <양성평등>이란 작품은 그게 어울려요.

    이후로 장애인 문제를 다룬 <편견>, <노약자 보호석은···>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을 발표하셨는데요

    사실 첫 작품은 의도가 불순했잖아요?(웃음) <양성평등>을 만들면서, 이후 여러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많이 배우고,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양성평등 스타일로 장애인 문제라든가 아동학대 등을 다뤄볼까 생각했고요. 그, ‘스타일’이라는 게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가는 거잖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애니메이션 작업과 비교했을 때 픽토그램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얼굴 표정이나 손가락 등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3차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있는데, 픽토그램은 그런 표현이 없어요. 섬세하게 웃거나 울거나 하는 부분을 작업할 필요가 없으니까 픽토그램 애니메이션은 일단 작업 속도가 빠르죠.

    픽토그램 애니메이션에서는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하나요?

    그걸 동작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어렵죠. 그래서 더 하고 싶고요. 감정을 표정이나 대사로 표현하는 건 1차원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죠!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픽토그램을 통해 말없이 슬랩스틱으로 보여주는 연습도 하고요.

    ▲ <버스데이 파티>(2009)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한 생일 축하 파티를 계획하지만, 생각처럼 수월하지가 않다. 
         그러나 우연한 실수가 마법의 순간을 선물하는데···.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것. 그러나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이제 그런 것들을 좀 더 아끼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조주상의 ‘디자인 솜씨’(2002) 중

    <픽토그램 스토리> 같은 픽토그램 애니메이션이나 정통 3D 애니메이션인 <버스데이 파티>를 보면 스토리 자체는 대부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제가 내는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일입니다. 다만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것, 이게 차이점이죠. 다들 놓치는 부분을 잡아내는 게 재미있잖아요.

    혹시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토이 스토리> 1편. 보면서 충격을 받았죠. “어, 저건 뭐야!”라면서.(웃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이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히로시마, 안시, 자그레브 등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그 소식을 전하는 매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이것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죠. 게다가 KBS나 EBS에서 상영되던 단편 애니메이션 프로그램도 없어져서···. 지금은 SBS 한 곳에서만 볼 수 있네요.

    조주상이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무엇인지?

    제가 생각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죠. 사진을 찍거나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분명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소재나 장르가 분명히 있어요. <양성평등>을 실사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무겁겠어요.

    그래서인지 모든 작품이 유쾌해요.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이고.

    애니메이션의 본질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해하기 쉽고. 게다가 성격이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제 작품을 보고 얼굴을 찌뿌리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상상할 수도없는 일이죠. 평범한 소재라도 재미있고, 즐거운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것. 이런 재미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겁니다(웃음).

    <버스데이 파티>를 보면 계획에 어긋난 실수가 마법의 순간을 선물하는데요 내 인생에 우연히 찾아든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면?

    일생에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한 기적 같은 날 보다는 매일매일 찾아오는 ‘일상’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인생의 소울메이트가 눈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정도?(웃음)

    ▲ <픽토그램 인사이드>(2011)
          픽토그램들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픽토그램 인사이드>를 통해 그들의 내부 세계가 공개된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NPC(Non Player Character)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인터뷰(2012) 중

    좋아하는 감독이 있나요?

    마이클 두덕 드 비트(Michle Dudok de Wit), 그리고 <로봇(Robot)>을 만든 크리스 웻지(Chris Wedge) 감독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산다는 건 만만찮은 일일 것 같은데요.

    장르를 불문하고 단편일 경우엔 대부분 힘든데, 단편 애니메이션은 더하죠. 상영관은 고사하고,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없거든요. 저 역시 보고 싶은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어도 작품을 만든 감독을 찾아가 보여달라고 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으니까(웃음). 그래도 예전에는 방송사에서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꽤 있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지원이 늘어난다거나···

    지원이 늘어나면 해결이 될까···. 사실 대부분의 지원이 예술 애니메이션에 치중되어 있어요. 상업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는 셈이죠. 결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이려다 보니 난해한, 예술성 있는 작품을 선호하게 되고, 관객들은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고, 오히려 괴리감을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예술 애니메이션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회에 외칩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외칠 것인가는 감독마다 다르니까요.

    조주상 감독이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요?

    3D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3D로 작업하면서도 랜더링을 할 때 결과는 2D로 보이게 해요. 그런 걸 보면 2D에 대한 미련도 있는 것 같고. 합성 쪽도 재미있어요. ‘픽토그램 인사이드’ 등을 보면 아시겠지만, 작품 전체가 실사와 합성으로 이뤄져 있거든요. 아직은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픽토그램 애니메이션도 그러한 과정일 수 있고요. 특정 장르에 규정되기 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

    아이들 가르치면서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청주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교육은 오랜 꿈이었거든요. 그리고 작품은 1년에 1편씩 만드는 것. 2008년 이후 1년에 한 작품씩 발표하고 있긴 있죠.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만드는 편에 속하죠. 죽기 전까지 100편을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겠죠?(웃음)

    그렇다면 죽기 전에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은?

    사람을 살리는 작품. 살아갈 희망을 주는 작품, 답이 없는 길을 가는 이들에게 더듬어 소망을 제시하는 작품.

    조주상을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애니메이션 만드는 NPC(Non Player Character).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주변인이라는 얘기?

    에이~, 주연의 삶을 원하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조연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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