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파이카(paika)’ 이수향·하지훈과의 인터뷰는, 여느 2인 체제 스튜디오와의 인터뷰와 다소 다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의 경험상, 스튜디오를 공동 운영하는 두 디자이너의 인터뷰 답변은 ‘우리’로서의 말과 두 ‘나’로서의 말로 구성되었던 것 같다. 사실, 에디터(인터뷰어) 쪽에서도 이런 구성을 고려하여 질의의 흐름을 유도한다. 파이카 때도 그랬다. 그런데 답변 내용을 정리해놓고 보니, 이수향과 하지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로서의 언어와 태도를 유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점이 에디터는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짧은 직장 생활을 함께한 동료였고,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시점에 독립했다. 그러고는 스튜디오 운영 파트너가 됐다. “친해지기 전에는 한 번 싸우면 화해하기까지 기간과 시간이 오래 걸렸다”라고 말하는 걸 보니, 충분히 친해지고 나서 협업을 본격화한 건 아닌 듯하다. 일단 일을 같이 시작한 뒤 서서히 이쪽이 저쪽을, 저쪽이 이쪽을 알아갔던 것 같다. 처음부터 ‘케미’가 잘 맞아서 동업했다기보다는 일을 하는 동안 ‘케미’가 형성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낯간지러운 감상이 될 테지만, 속성이 다른 두 원소가 하나로 화합(化合)하는 데에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며 그중 절대 요소는 역시 ‘시간’이라는 점을 파이카와의 대화를 통해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화학 작용(chemistry)이란 게 본래 그런 거 아닐까. 둘 이상의 물질 또는 원소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본래의 성질을 잃어 버리고 다른 물질을 생성하는 것.(‘화합’의 사전적 정의이기도 하다.) 이수향과 하지훈 두 디자이너는 얼마간 ‘나’를 거둬들이는 대신, ‘우리’로서의 새 물질 ‘파이카’를 생성하고 있는 셈이다. 에디터도 앞으로는 인터뷰를 할 때 ‘나’를 뒤세우고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더 담아야겠다고 반성해본다. 이쪽과 저쪽의 화학 생성물로서, ‘케미 좋은’ 인터뷰를 선보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15년 스튜디오를 열었으니 이제 6년째네요. 그사이 스튜디오 이름을 한 번 바꿨고, 작업실도 한 번 옮긴 줄로 압니다. 두 분이 원래 직장 동료였다가 동업자(!)로 전향하신 거 맞죠? 제가 잘 모르긴 하지만, 지난 5~6년간 디자이너로서, 스튜디오 공동 운영자로서, 두 분이 꽤 치열하게 버텨오셨을 것 같습니다. 2015년부터 현재 시점까지 통틀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제일 뿌듯했던 순간은 각각 언제였나요?
안녕하세요, 파이카 이수향·하지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에 대해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직장에서 만났고, 각자 다른 시기에 퇴사를 했지만 목표와 뜻, 마음이 서로 맞아 함께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트스트’라는 이름으로 출발해서 어느덧 ‘파이카’로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작업 공간의 불안정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것 같네요. 초창기 때는 작업실 고정 비용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지하에 첫 작업실을 얻었는데, 여름엔 습하고 겨울엔 추워서 일할 때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돌이켜보면 추억인데, 당시에는 여러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뿌듯한 순간은, 우리의 디자인이 실물화되어 나온 모든 순간들입니다. 파이카의 디자인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을 통해 세상에 비춰질 때마다 기분이 좋고, 생동감을 느낍니다.
paica가 아니라 paika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paica가 떠오릅니다. 2017년인가 2018년인가, 스튜디오명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고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스튜디오 정체성을 이제 ‘서체 디자인’ 분야로 집중하려는 걸까, 라고요. 이후 작업들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다만, 레터링 쪽은 확실히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저는 라틴 알파벳보다는 한글 레터링 작업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N개의 서울’ 사업 일환인 구로구 지역 리서치 DB 〈구로백과〉 아이덴티티(2019), 구로구청 예술단 프로젝트 ‘구청탐방’ 포스터(2019), 서울청년예술단 ‘몸의대화’의 2019년 공연 〈88탁수〉, 아티스트 김진 개인전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 포스터(2019), 〈2019 서울청년주간: 시선이 만나다〉 포스터, 강화도의 로컬굿즈 브랜드 ‘진달래섬’ 로고타입(2020), ···. 이 밖에도 제가 좋아하는 레터링 작업들이 더 있지만, 이쯤에서 열거는 멈출게요.(웃음)
잠깐만요, 뭘 여쭈려고 했더라. 죄송합니다. 하하···. 아, 이겁니다. 그래픽 작업에서 ‘글자’를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시는 건가요? 스튜디오 이름인 ‘paika’도 그런 방향성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는 건가요?
‘아트스트’에서 ‘파이카’로 스튜디오명을 변경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트스트라는 이름을 많이 헷갈려 하시기도 했고, ‘아티스트’를 변형한 단어라서 임팩트가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여러 생각을 하는데, 우연히 본 사전에서 ‘파이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글자 크기를 재는 단위를 뜻하는 단어라는 것이 저희가 몸담은 분야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스튜디오명으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발음도 편하고 예뻤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첫인상에서,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요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작업자가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글자’를 특별히 중요하게 다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파이카의 작업들 중 글자와 관련한 것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나 ‘언급’이 많은 점은 저희도 재미있게 느끼는 지점이에요.
물론 글자를 만드는 작업은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서체 작업을 하다 보면 서체 디자이너 분들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파이카가 글자를 위주로 힘을 줘서 나아간다고 단언할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파이카의 작업 내역엔 공공사업 관련 프로젝트들이 유독 많아 보입니다. 좀 전에 언급했던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말고도, 대전에서 열린 〈에너지스테이션03: 깨어나 소리치다〉(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행사로, 1919년 만세운동 장소 중 한 곳인 대전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서 열렸다 ― 에디터 주) 같은 수도권 외 크고 작은 지역 사업에도 참여하셨더라고요. 뭐랄까, 단순히 공공기관의 작업 의뢰를 자주 수행하는 느낌보다는, 거꾸로 파이카 쪽에서 공공사업 분야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공공을 가꿀 수 있는지 증명하고 싶은 비전이랄까요, 그런 것도 읽혔습니다. 어떠세요? 제가 너무 넘겨짚었나요?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의 공공을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사회의 무언가 혹은 어떠한 것들에 크거나 작거나, 많거나 적거나, 여러 다양한 가치와 영향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어요. 디자이너로서 저희의 바람이기도 하고, 지난 시간 동안 늘 간직해온 작업관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방향성이 비단 공공 관련 프로젝트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여러 분야의 작업들을 통해 유의미한 가치와 영향을 전달하고, 해당 분야들을 더 좋은 모습으로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게 많다 보니 너무 제가 좋아하는 파이카의 작업들 위주로만 질문을 드린 것 같네요.(웃음) 디자이너 이수향·하지훈 스스로 꼽는 2021년 4월 시점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정한 디자인을 ‘대표작’이라는 타이틀로 꼽기란 쉽지 않은 일이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사실 저희가 하는 모든 작업을 애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이카의 대표작은?’이라는 질문은 오히려 저희 쪽에서 드려보고 싶습니다. 가끔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대중은 우리의 어떤 작업을 좋아해주실까, 하고요.
중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프로젝트들이 각기 다른 가치를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희가 저희 스스로 모든 작업들을 애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무언가를 뽑는 게 아무래도 저희에겐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실없는 질문처럼 들릴까 걱정스럽습니다만, 일단 말해보겠습니다. 음, 세 사람 중 둘이 다투면 나머지 한 사람이 중재를 해줄 수 있잖아요. 넷 중 두세 사람이 서로 토라지면 나머지 한두 명이 ‘으쌰으쌰’ 분위기를 도모해볼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2인 체제에서 두 멤버가 서로 갈등한다면, 화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쭤봅니다. 직장 동료였다가 스튜디오 공동 운영자로서 6년째 함께하고 계신데요. 작업 과정에서 서로 입장 차가 생기면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대화로 풀거나, 한쪽에서 양보하거나.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화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친해지기 전에는(웃음) 한 번 싸우면 화해하기까지 기간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갈등이 아예 안 생길 수는 없기 때문에, 감정 상하는 기분을 오래 가져가지 않으려고 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지금은 둘 다 화해의 기술(?)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생겨서 웬만하면 바로 풀려고 합니다. 감정 골이 길어져도 하루는 넘기지 않게요. 결과적으로 갈등을 통해 저희 둘 다 발전하는 계기가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화해도 경험인 것 같아요.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첫 인터뷰이께 드리는 공식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희 인터뷰 시리즈 중에 「interVIEW / afterVIEW」라는 게 있습니다. 첫 인터뷰 이후 수 년이 지나 같은 분과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는 시리즈예요. 파이카 두 분과도 5년쯤 후에 「interVIEW / afterVIEW」로 다시 뵙고 싶은데요. 그때쯤 디자이너 이수향·하지훈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길 바라세요?
5년 후 인터뷰라니 의미 있는 기획이네요!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그때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저희의 5년 후는 지금보다 좀더 발전되어 멋있는 모습이면 좋겠네요. 그리고 여러 다양한 분야의 작업들과 더 많은 작업들을 진행하는 파이카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에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