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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하나만 누르면(터치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장소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시대. 음악은 친구 못지않은 정신적 건강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더욱이 뉴트로(new-tro) 열풍을 통해 바이닐(LP), 턴테이블,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등 아날로그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이 20~30대층을 통해 다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바이닐 앨범들을 보면 레트로한 분위기의 타입, 레터링, 디자인 덕에 더 눈이 가고,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명반―레코드판들. 그리고 그 타입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한 장 한 장, 한 자 한 자 모아보려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했다. 자신의 책을 ‘독해’하려 하지 말고, ‘음악 듣듯이’ 읽어달라고.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께도 청한다. 우리가 기록해 나갈 이 타입들을 ‘청음’하듯 감상해보시라고.
새로운 음악을 꿈꿨던 가수, 한국 대중음악의 전환점이 되어준 천재 음악가 유재하. 그가 세상에 남긴 단 한 장의 앨범, 1집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1집 〈사랑하기 때문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하며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앨범은 1987년 4월 발표되었고, 그해 11월 유재하는 갑작스럽게 팬들의 곁을 떠났다. 그와의 너무 때이른 작별이 안타깝기만 하다.
유재하는 작곡, 연주뿐 아니라 편곡까지 모두 스스로 해냈다. 그는 1집 음반을 통해 록과 블루스, 재즈와 클래식 등 여러 장르의 요소를 담아 전에 없던 새로운 사운드의 영역을 선보였다. 당시 소위 ‘뽕끼’, ‘신파조’로 언급되는 기성세대의 발라드와 작별을 고한 것 역시 이 음반이 효시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랑하기 때문에〉는 한국 대중음악 명반 2위라는 높은 순위의 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의 재킷 디자인은 세 종류로 나뉜다. 87년 4월 발매된 초반의 경우, 대표곡 ‘사랑하기 때문에’의 제목 글자가 인상적이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타이포그래피다. 앨범에 유재하의 자전적 연애사가 담겨서일까? 수록곡들을 듣다 보면 한 편의 멜로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첫 만남, 몇 번의 헤어짐, 그리고 재회. 쉽지 않은 연애에 대한 속내를 담배 연기에 빗대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디자인 의도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글자들이 이어져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구성하는 레터링은 묘한 감수성을 자아낸다. 〈사랑하기 때문에〉 초반은 87년 당시 소량 발매된 앨범으로, 지금은 여간해선 구하기 힘든 희귀 명반이다. 중고품 시장에서 무려 50만 원 가까운 금액으로 거래된 적도 있다.
87년 초반 발매 후 넉 달 뒤인 8월, 〈사랑하기 때문에〉가 재발매된다. 재킷 디자인은 초반과 완전히 결을 달리한 형태였다. 회색 콘크리트 벽면에 부착된 유재하의 폴라로이드 사진, 하단 여백에 단출하게 적힌 ‘87. 夏’라는 손글씨.
87년 8월 재반은 초반에 비해 발매 수량도 많았고, 현재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제공하는 〈사랑하기 때문에〉의 앨범 커버 이미지 또한 재반 버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앨범을 초반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초반의 ‘담배 연기 타이포그래피’였던 타이틀곡 제목이 재반에서는 손글씨로 바뀌어 있다. 누구의 글씨체일까, 혹시 유재하가 직접 쓴 글씨는 아닐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갖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가 발매되고(그리고 유재하가 팬들 곁을 떠나고) 그 이듬해, CD 앨범이 제작되었다. 유화로 그린 듯한 유재하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캘리그래피 타이틀이 놓인 디자인이다. 앨범 재킷이 마치 한 폭의 캔버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재하의 초상화는 그와 절친했던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가가 그린 것이다.
87년 8월 재반과 비교하면, 88년 CD의 재킷 디자인은 서정성을 다소 걷어낸 느낌이다. 재반의 부드러움 대신 거친 질감이 묻어난다. 이 디자인은 이것대로 또 독특한 정서를 자아내는데, 특히 유재하의 시선과 타이틀의 배치가 오묘하다. 허공에 떠 있는 글자를 무심히 쳐다보는 듯한 유재하의 얼굴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한동안 머물게 한다. 생생한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여서 더더욱,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임을 인식하게 돼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허해진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타이틀이 더없이 고독하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유재하의 음악을 듣고 유재하의 음악을 부른다. 신승훈, 김광진, 박진영, 유희열 등 많은 뮤지션들이 유재하의 음악을 통해 영감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곡을 발표하고 있다. 단 한장의 앨범만 남기고 떠난 유재하가 좀 더 많은 활동을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커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