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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하나만 누르면(터치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장소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시대. 음악은 친구 못지않은 정신적 건강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더욱이 뉴트로(new-tro) 열풍을 통해 바이닐(LP), 턴테이블,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등 아날로그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이 20~30대층을 통해 다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바이닐 앨범들을 보면 레트로한 분위기의 타입, 레터링, 디자인 덕에 더 눈이 가고,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명반―레코드판들. 그리고 그 타입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한 장 한 장, 한 자 한 자 모아보려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했다. 자신의 책을 ‘독해’하려 하지 말고, ‘음악 듣듯이’ 읽어달라고.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께도 청한다. 우리가 기록해 나갈 이 타입들을 ‘청음’하듯 감상해보시라고.
우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그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그 말을~
세 번째 타입레코드의 주인공은 ‘함중아와 양키스’ 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룹사운드라 할 수 있다. 함중아와 양키스는 1975년 함중아, 정동권, 신창호, 이수한, 한태곤이 결성한 5인조 그룹이었다. 70년대 말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다 1982년 팀 해체를 맞았고, 이후 함중아는 솔로가수로, 정동권은 ‘2기 양키스’를 이끌며 활동을 이어갔다.
함중아는 ‘한국의 1세대 록커’로 불리는 신중현 사단 출신이다. 1970년대 초 사이키델릭 그룹사운드 ‘신중현과 골든 그레입스(Golen Grapes)’에서 활약하며 록 성향의 음악 활동을 했으나, 1970년대 후반 트로트 고고 장르로 전향하게 된다. 트로트 고고란, 쉽게 말해 록 사운드와 트로트 리듬을 버무린 음악 장르를 의미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삽입곡으로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풍문으로 들었소’. 영화의 흥행과 함께 노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까지도 TV 프로그램 등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곡이다. 영화 OST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버전이 수록돼 있는데, 이 노래의 오리지널 뮤지션이 바로 함중아와 양키스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함중아와 양키스의 1980년 발매 앨범 ‘양키스 골든 디럭스’를 통해 처음 대중과 만났다. 그 시절 유행하던 트로트 고고 장르의 대표곡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또 하나의 히트곡이 ‘내게도 사랑이’다. 이 노래는 1981년 KBS 2TV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풍문으로 들었소’만큼이나 트로트 고고의 장르적 매력이 흠뻑 묻어나는 명곡이다.
앨범 커버의 ‘함중아’ 한글 레터링을 살펴보자. 70~80년대 레터링들에서 많이 발견되는 직선적이고 단단한 이미지가 묻어난다. 특히 상단을 중심으로 투시법을 적용해 입체 효과를 준 것이 인상적이다. ‘함중아 레터링’은 이 앨범의 커버와 동일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함중아 골든디럭스’ 앨범에서도 볼 수 있다.
‘골든디럭스’ 레터링의 경우, 굵기를 가늘게 하여 ‘함중아’ 레터링과 강약의 시각적 흐름을 만들고 있다. 또한 글자의 맺음 부분에서 획을 길게 뺐는데, 동물의 꼬리가 말린 듯한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함중아’ 레터링에서 느껴지는 무거움과 진중함을 다소 해소하는 재미도 있으면서, 세련미까지 놓치지 않았다.
위 이미지는 함중아와 양키스 앨범 표지를 리커버해본 것이다. 함중아와 양키스는 활동 당시 국어순화운동 정책에 따라 ‘함중아와 초록별’이라는 한글 명칭을 만들어 병용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록색 바탕을 활용했고, 기존의 레터링을 바탕색 위에 입혀보았다.
2018년엔 함중아와 양키스의 원곡, 장기하와 얼굴들의 커버곡 버전이 동시 수록된 ‘풍문으로 들었소’ 7인치 한정판 바이닐(아래 사진 왼쪽)이 출시되기도 했다. 이 앨범이 젊은 층 사이에 널리 소개되면서 함중아와 양키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올 1월에는 1980년작 ‘양키스 골든디럭스’ 앨범의 리마스터링 재발매(아래 사진 오른쪽)가 성사되기까지 했다.
함중아와 양키스 팬들에게 2019년 슬픈 해로 기억될 것이다. ‘1기 양키스’, ‘양키스 원조 멤버’로 불리는 두 뮤지션, 함중아와 정동권이 그해 겨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2020년 다시 듣는 그들의 음악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오리지널 앨범은 물론이고, 한정판 바이닐과 리마스터링 앨범 모두가 어지간히 발품을 팔지 않고선 구하기 힘든 음반들이다. 풍문으로라도 이 명반들의 구매 좌표를 전해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