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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하나만 누르면(터치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장소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시대. 음악은 친구 못지않은 정신적 건강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더욱이 뉴트로(new-tro) 열풍을 통해 바이닐(LP), 턴테이블,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등 아날로그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이 20~30대층을 통해 다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바이닐 앨범들을 보면 레트로한 분위기의 타입, 레터링, 디자인 덕에 더 눈이 가고,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명반―레코드판들. 그리고 그 타입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한 장 한 장, 한 자 한 자 모아보려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했다. 자신의 책을 ‘독해’하려 하지 말고, ‘음악 듣듯이’ 읽어달라고.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께도 청한다. 우리가 기록해 나갈 이 타입들을 ‘청음’하듯 감상해보시라고.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 앨범! 두 번째 타입레코드의 ‘pick’ 앨범은 바로 ‘가수황제’, ‘가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조용필의 〈趙容弼 대표곡 모음: 창밖의 여자/단발머리〉(1980)다.
40년이나 된 조용필의 첫 정규앨범은 수록곡 대다수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를 전국적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라서게 했다. 살아 있는 전설의 시작을 알린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수록곡 중 음악 전문가들이 꼽은 조용필 최고의 곡인 ‘단발머리’는 지금 들어도 거부감이 없다. 곡 전개 사이사이 반복되는 신디사이저 사운드, 보컬의 음색이 이루는 리드미컬한 조화는 2020년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힙’함을 과시한다.
앨범 재킷에는 조용필(趙容弼) 이름의 한자 레터링과 대표 수록곡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한글 레터링이 병기되어 있다.
이 앨범이 발표된 1980년만 해도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글자체 원도를 그리던 시절이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자소마다 수작업 특유의 손길·손질·손맥·손맛이 묻어난다. 한 자 한 자마다 맵시를 그려넣었을 그 손의 주인, 즉 레터러가 궁금해진다.
한자 레터링의 경우, 둥근 고딕 계열 서체로 흔히 말하는 굴림체 스타일이다. 안정감 있고 부드러운 시각 정서를 보여주며, 다소 좁은 글자 너비를 가지고 있어 세련된 인상을 자아낸다. 앨범 수록곡목의 레터링을 살펴보자. 상단 세로줄기의 경우, 둥근 고딕 계열의 스타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정방형의 꽉 찬 모듈로 제작되어 있다. 세 곡명 각각의 레터링은 통일감 있는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유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창밖의 여자’에서의 ‘ㅊ’과 ‘ㅈ’의 내림 획,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ㅇ’의 반복과 변형은 시각적으로 ‘보는 맛’을 더해준다.
위 이미지는 직접 작업해본 〈趙容弼 대표곡 모음: 창밖의 여자/단발머리〉 리커버다. 기존 앨범 커버가 레터링보다는 조용필의 포트레이트를 큼직하게 부각시켰다면, 리커버에선 레터링을 전면에 내세워보았다.
1980년 이 앨범을 발매했던 레이블 ‘지구레코드공사’의 로고타입이다. 한글과 알파벳 모두 레트로한 감성을 물씬 풍기면서도 가독성이 좋다.
조용필은 2019년 가수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콘서트 투어도 진행했다. 투어의 마지막 공연에서 그는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음악이란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나 역시 아직 배움의 길에 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 라고.
‘가왕’의 첫 정규 앨범 〈趙容弼 대표곡 모음: 창밖의 여자/단발머리〉를 다시 꺼내 보며 생각한다. 아티스트는 늙는다. 다만, 어떤 아티스트는 늙되 낡지 않는다, 라고.
조용필 추천 리스트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고추잠자리, Hello, Bounce,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