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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하나만 누르면(터치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장소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시대. 음악은 친구 못지않은 정신적 건강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더욱이 뉴트로(new-tro) 열풍을 통해 바이닐(LP), 턴테이블,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등 아날로그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이 20~30대층을 통해 다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바이닐 앨범들을 보면 레트로한 분위기의 타입, 레터링, 디자인 덕에 더 눈이 가고,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명반―레코드판들. 그리고 그 타입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한 장 한 장, 한 자 한 자 모아보려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했다. 자신의 책을 ‘독해’하려 하지 말고, ‘음악 듣듯이’ 읽어달라고.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께도 청한다. 우리가 기록해 나갈 이 타입들을 ‘청음’하듯 감상해보시라고.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타입레코드」 코너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레코드숍 ‘곽엘피’ 곽 사장님의 추천작이다. 대표곡 ‘싸이콩 아가씨’가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발매된 해가 무려 1962년이다. ‘싸이콩 아가씨’를 부른 김백희 외에 권정애, 박일석, 김일남의 곡들이 수록돼 있다. 사실, 노래 제목들도 가수 이름들도 생소하다. 하지만 곽 사장님에 따르면 꽤나 희소가치 높은 앨범이라고 한다. 당시 나온 국내 레코드판으로서는 드물게 12인치가 아닌 10인치 음반이기 때문이다.
‘싸이콩 아가씨’의 노래 분위기나 가사를 보면, 베트남의 최대 도시 사이공(현 ‘호찌민’)에 대한 동경이 짙게 배어 있다. 60년대에 비해 지금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해외 여행이 상당히 보편화되고 자연스러워진 터라, 어느 도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다. 호찌민 역시 마찬가지. 이런 점을 생각하면, ‘싸이콩 아가씨’라는 노래가 꽤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앨범 커버에서도 60년대 사이공, 그러니까 쉽게 가볼 수 없는 먼 도시에 대한 동경이 물씬 풍긴다. ‘싸이콩 아가씨’를 부른 가수 김백희의 큰 사진 뒤로 폭죽이 터지고 있고, 표지 하단에는 노래 제목이 큼지막이 적혀 있다. 사이공의 휘황찬란한 밤거리가 떠오른다.
노래 제목 글자를 보자. 62년도 앨범이여서일까? 붓글씨로 쓴 듯한 레터링이 눈에 띈다. 붓으로 쓴 것 같으면서도, 자음과 모음에서 보이는 부드러운 획과 날카롭고 단단한 획의 적절한 섞임은 이질적이면서도 특이한 매력을 자아낸다. 좀더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야자수와 그 열매 같다고 할까?
글줄이 가지런하지 않은 점도 독특하다. ‘싸이콩’은 사선, ‘아가씨’는 ‘싸이콩’에 비해 비교적 일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싸·이·콩·아·가·씨 여섯 글자가 마치 오선지 위 음표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양새다. 붓글씨스러운(?) 레터링이 반듯하지 않고 이렇듯 동적이다 보니, 레터링 자체가 풍류적으로 느껴진다. 커버 배경의 폭죽 이미지와 어울리니 더더욱 그렇다. 사이공 밤거리를 걷는 여행객들의 신나는 발걸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앨범 제작사는 ‘대도레코드’라는 곳이다. 로고가 매우 인상적이다. 해외 레코드사 로고로 착각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만한 디자인이다. 이국적인 세련미가 돋보인다. 필기체 스타일의 라틴 알파벳, 그리고 종의 그래픽 이미지의 조화도 나쁘지 않다. 요즘 시선으로는 이른바 레트로풍이다. 2020년에 사용해도 손색없는 로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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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anks to → 레코드숍 ‘곽엘피’ (경기 파주 지목로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