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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포잔치 2011 도록

    총 776쪽인 이 두꺼운 책 안에는, 지난해 서울에 모였던 108 디자이너들의 출품작과 포트폴리오가 담겨져 있다.


    글. 임재훈

    발행일. 2012년 04월 08일

    타이포잔치 2011 도록

    지난해 열린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의 부제는 '동아시아의 불꽃(東亞火花, Fire Flower of East Asia)'이었다. 한•중•일 시각디자이너 108명이 한글•한자•가나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선보인 자리였다. 이 전시는 2001년 제1회 이후 10년 만에 개최된 것이라 당시 시각디자인계의 큰 행사였다. 전시작들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10여 일간 머물렀다. 전시 외에도 포럼, 워크숍, 강연회 같은 부대행사들이 전시작들과 함께 관람객들을 맞았다.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8.30~9.14)였던 전시 기간은 무척 더웠던 걸로 기억된다. 관람객들뿐만 아니라, 타이포그래피라는 공통의 시각언어로 잔치를 연 3국의 작가들도 똑같은 열기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하기야, '동아시아의 불꽃'을 위해 모인 것이었으니, 분명 그들도 뜨거웠을 것이다. 

    전시가 끝난 지 다섯 달이 지나간다. 이 시점에, 다시금 2011년의 불꽃을 되살리는 책 한 권이 나왔다. 2월에 출간된 <타이포잔치 2011>(안그라픽스)이다.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도록이다. 총 776쪽인 이 두꺼운 책 안에는, 지난해 서울에 모였던 108 디자이너들의 출품작과 포트폴리오가 담겨져 있다. 2001년 제1회 타이포잔치 도록의 커버가 빨강이었던 것에 이어, 제2회 도록은 노랑을 입었다. 아직도 몇몇 헌책방에선 ‘빨간 책’을 찾는 디자인 전공자들이 존재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들이 또 ‘노란 책’을 찾게 될 것이 분명하다.

    <타이포잔치 2011>은 두 가지 면에서 지난해의 불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선, 참여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목차 구성은 본전시(main exhibition), 특별전시(special exhibition), 포럼(forum), 스페셜 피처(special feature), 워크숍(workshop), 강연(lecture) 등 6개로 이뤄져 있는데, 각 목차마다 해당 작가들의 글이 게재돼 있다. 타이포그래피와 시각디자인을 주제로 한 글이다. 작품 해설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닌,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까지 풀어낸 일종의 에세이 형식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박금준은 “(타이포그래피를) 내 방식대로 해체하고 조합하면서 때론 건축처럼 때론 회화처럼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라고 썼다.

    중국의 리사오보는 “디자인은 물건을 장식하기 위함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요하게 기능을 수행한다”라고 했고, 일본의 키타가와 잇세이는 “창조성의 원천은 내 양심의 틈에 있는 의식적인 간과나, 백색 공간이나, 지각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라고도 했다. 이런 글들은, 전시 도록인 <타이포잔치 2011>을 인문학 서적으로도 읽히게끔 한다.

    이 책이 간직한 또 다른 불꽃은 바로 영문 번역이다. 한글로 쓰인 모든 텍스트에 영어 번역문이 함께하고 있다. 4명의 전문 번역가들이 이 책 한 권에 매달려 국문을 영문으로 변환해 썼다. 해외 출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알파벳 타이포그래피가 주를 이루는 서양에서, <타이포잔치 2011>은 또 한 번 동아시아의 불꽃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어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쓰이고, 동아시아인들 역시 알파벳 타이포그래피에 익숙하다. 때때로 한글•한자•가나는, 알파벳이라는 촘촘한 그리드 뒤에 가려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일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자국어 타이포그래피는 반갑기만 하다.

    <타오르는 책>이란 제목의 오래된 시집이 있다. 그 시집에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타이포잔치 2011>을 펼치면 그와 비슷한 글자들을 볼 수 있다. 한•중•일 108 디자이너들이 불을 켜듯 빚어낸 타이포그래피 작업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에 ‘동아시아의 불꽃’으로 불렸던 작품들 말이다. 그렇다면, 이 두꺼운 ‘노란 책’을 ‘타오르는 책’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최정호, 정병규, 아사바 카쓰미, 히라노 코가, 타나카 잇코, 칸타이킁, 뤼징런, 쉬빙. 동아시아 3국을 대표하는 시각디자이너 8인이다. 지난해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의 특별전시에 소개된 작가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현 디자인계에 전하는 뼈 있는 조언들을 <타이포잔치 2011>로부터 옮겨왔다.

    한글의 기본원칙부터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몇 번이고 얘기하지만, 가로획이 0.1밀리미터 움직여도 전체의 균형이 깨진다는 사실은 글자의 원리를 터득하지 못하고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기지도 못하는데 뛰려고 기교를 부리는 것은 금물이라니까요._ 최정호

    한글 타이포그래피적 사유는 서양 인문학의 구절양장(九折羊腸)을 대안적으로 통과하여야 한다. 여기서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우리의 인문학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타이포그래피적 실천을 통하여 재영토화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이것은 한국 디자인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따져보는 일이기도 한다. _ 정병규

    ‘문자의 발생’이라는 말이야말로 우리들,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가장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_ 아사바 카쓰미

    일단 문자가 말이 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서 당황하곤 한다. 같은 문자라도 비극적으로 보이거나 희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나의 생각이나 감상까지 들어가게 되면, 같은 글씨를 몇 번이고 쓰게 되어 이체자(異体字)가 늘기만 한다. _ 히라노 코가

    최근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마이너’하거나 보수를 받지 않고 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지만, 나는 마이너한 일이 좋다. (…) 덕분에 꽤나 용기가 필요한 실험을 할 수 있다. 발상의 훈련에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_ 타나카 잇코

    오늘날 학생들은 컴퓨터에 너무 의존한 채 손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 결과 이들은 조판의 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첨단 기술이 다가 아님을 깨닫지 못한다. _ 칸타이킁

    편집 디자인의 과정은 문자의 깊은 이해와 더불어 책의 디자인 언어 개념을 주입시켜 북디자인의 본질(읽기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다. 편집 디자인의 진정한 목적은 책 내용의 정확한 전달에 있다. _ 뤼징런

    당신은 창작을 생각할 필요 없고 예술 자체를 고려해야 한다. 양식, 유파, 재료 등의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고 예술 계통의 중간에서 작업을 할 필요도 없다. _ 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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