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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뮌헨 타이포그래피협회장 보리스 코한

    “디자인 안 하는 디자인이 없듯, 타이포그래피 안 하는 타이포그래피도 없죠.”


    인터뷰·번역. 김종호 / 사진. 김태범

    발행일. 2015년 02월 13일

    뮌헨 타이포그래피협회장 보리스 코한

    125년 전통의 독일 뮌헨 타이포그래피 협회는 유럽 최대의 타이포그래피 조직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이곳의 회장인 보리스 코한(Boris Kochan)이 한국에 다녀갔다. 비영어권의 문자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그는 '그란샨(Granshan)'이라는 국제 행사를 진행하며 영어의 그늘에 가려진 비 영어의 훌륭한 점을 공모전, 콘퍼런스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협회장으로서,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브랜딩 회사 KOCHAN & PARTNER의 대표로서, 마지막으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그를 만났다.

    독일 뮌헨 타이포그래피협회에 대해 궁금해요. 협회장이시잖아요.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요?

    1890년에 시작한 유럽 최대의 타이포그래피 조직이에요. 회원들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타입에 관여하는 기술자들이 대부분이지요. 예를 들어 글 쓰는 작가,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 웹 개발자 등 정말 실무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반면 학자나 교수들은 별로 없지요.

    우리의 목적은 타이포그래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에 있는데요, 스타일 적으로만 뛰어난 것보다는 책 하나를 만들어도 좋은 내용, 좋은 디자인, 좋은 가공의 세 박자를 고루 갖추게 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태야 해요. 디자이너만 있으면 일이 안되죠.

    뮌헨 타이포그래피협회에서는 1년에 타이포그래피 관련한 크고 작은 행사를 120일 정도 열어요. 3일에 한 번 꼴이니까 대단하지요. 회장단에서 어떤 일을 하자고 하면 그 일에 맞는 사람들이 자원해서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두 다 해요. 협회에서 따로 예산을 주거나 일을 맡기지 않아도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그 일을 해내는 것이 강점입니다.

    지난해 11월 방한했을 때, ‘디자인 콘텐츠 페스타 WOW’에서 강연하셨잖아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강의의 큰 주제는 아이덴티티였어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 KOCHAN & PARTNER가 브랜딩 중심의 회사인데요, 회사가 하는 일과 그 일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의 특징은 먼저 우리 회사의 브랜드를 잘 파악한 후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잘 파악해야 클라이언트의 문제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클라이언트 업무 외에 회사 차원의 기발한 프로젝트를 많이 해요. 이를 위해 직원들은 창의적인 접근으로 프로젝트를 찾아내고 회사는 제작비 신경 안 쓰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거죠. 돈은 클라이언트 업무로 벌고 사내 프로젝트로는 창의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 우리 회사의 기본 마인드예요. 회사 이야기로 브랜딩을 언급하고 다음으로 디자인과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제가 진행하고 있는 국제 타입 디자인 공모전 ‘그란샨(Granshan)’을 그 예로 들었지요.

    비 라틴 폰트 축제라고 들었어요. 아직 저희에겐 생소한 ‘그란샨(Granshan)’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08년에 시작해 올해로 8년째 진행하는 행사네요. 처음에는 중동 지역인 아르메니아의 언어글꼴연구소에서 ‘에딕’이라는 사람이 시작했어요. 아르메니아 주변 국가의 언어부터 시작했는데, 정확히 2년 후에 제가 조인해서 지금은 13개국 언어로 넓히고 규모가 커진 거죠. 그걸 시작한 이유가 비영어권 국가에도 훌륭한 문화와 아이덴티티가 많은데 세계적인 디자인 협회나 단체를 보면 항상 영어권 위주잖아요. 그늘에 가려있던 비영어권 나라들의 훌륭한 점을 끄집어내고 싶었던 것이고, 각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언어와 문자에 주목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그 나라의 아이덴티티가 되고 브랜드가 되거든요. 그걸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어요.

    두 번째는 비영어권 폰트 공모전이 없어서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나라별로야 있겠지만, 이렇게 모아놓고 한 적이 없었거든요. 다른 공모전과 다른 점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야지만 공모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따라서 일반인들이 아무나 낼 수는 없다는 것이고, 출품작 모두의 퀄리티가 보장되지요. 그래서 출품작이 많지는 않아요. 마지막 세 번째는 현지 디자이너들이 실질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공모전이라고 작품 파일만 보내고 마지막에 상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 자체에 대해 교류하고 싶었던 거죠. 콘퍼런스, 심포지엄, 워크숍, 공모전을 한번에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Granshan, conference, KOCHAN&PARTNER
    Granshan, design, 
    KOCHAN&PARTNER
     Granshan, documentation, KOCHAN&PARTNER

    작년 공모전에서는 한글 부분이 신설되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분들이 어떤 기준으로 심사했는지도 궁금해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각 지역의 타입 전문가들에 의해 한 나라별로 20~30개 작품씩 1차 추천을 받아요. 본선에 오르는 작품은 나라별로 15~20개 작품, 13개국 9개 언어 정도 되죠. 심사위원이 7명 있는데 그들 중에는 3~4개 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있어요. 한글 부문은 이번에 신설되었기 때문에 우선 김창식 산호세 교수가 한글 원리에 대해 심사위원들에게 리뷰를 하고 심사를 시작했어요. 하루에 16시간씩 이틀 동안 서로 토론하면서 심사했죠. 마치 학술대회처럼 말이에요.

    이번에 산돌과 윤디자인 폰트가 최종 엔트리에 올라 경쟁을 했어요. 1, 2위를 산돌 폰트가 하고 3위가 윤디자인 폰트였지만, 사실 그 순위는 큰 의미가 없어요. 엔트리에 올랐을 땐 이미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태였거든요. 심사 당시의 분위기가 순위를 크게 좌우했기 때문에 등수는 운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네요.(웃음) 앞으로는 더욱 많은 한글 폰트가 출품되어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란샨 콘퍼런스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기존 행사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나요?

    행사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정규 콘퍼런스로 비영어권 글꼴 디자이너나 타이포그래피 하는 분들을 초청해서 강연 중심으로 하는 게 있고요, 또 하나는 심포지엄이 있는데 여기에는 비영어권의 글꼴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 그리고 언어학자까지 초청해 토론을 벌이는 거예요. 독특하죠. 작년에 태국 방콕에서 행사했었거든요.

    그런데 태국에는 제대로 된 글꼴 디자이너가 3명밖에 없었고, 글꼴 디자인의 역사적인 흐름을 정리한 책도 한 권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심포지엄으로 태국어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정리해 준 거죠. 이 행사를 할 때 방콕 국영 방송사에서 45분 특집 방송을 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러니까 이 콘퍼런스는 단순한 행사 차원이 아니라 비영어권의 잡혀있지 않은 글꼴 디자인 체계를 바로 잡아주는 역할도 하는 거죠.

    또한, 행사가 끝나고 나면 결과집을 한정판으로 만드는데요, 이것의 완성도도 정말 높아요. 전에 이야기했듯이 자원자가 나서서 기획부터 편집까지 모두 다 하는 거예요. 단순히 행사를 정리한 결과물이 아닌 완벽한 한 권의 책으로써 만들어요. 보통 열정을 가지고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이 콘퍼런스가 지금 4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굉장히 놀라운 일을 하고 있어요.

    TDC, einladung, KOCHAN&PARTNER
     TDC, fest, KOCHAN&PARTNER
     TGM, qved, KOCHAN&PARTNER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처음에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셨어요?

    저로 말씀드리자면 세상을 떠돌며 세리프에서 엔터프라이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의 크고 작은 영역을 넘나드는 방랑자라고나 할까요? 원래 언론사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디자인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어느 날 잡지에 실을 기사를 다 쓰고 나서 디자인을 맡겨야 했는데요, 마침 그걸 할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했고 그렇게 발을 딛게 된 거죠.

    정말 우연히 시작하신 거네요.(웃음) 처음에 언급하셨던 회사 이야기도 해 주시겠어요?

    1981년에 설립한 KOCHAN & PARTNER는 오늘날 독일의 상위 10위 안에 드는 자영 브랜딩 업체예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60여 명이 모여 작업을 하기 때문에 다각적인 관점에서 대상을 분석할 수 있고, 그 결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기도 하지요. 이러한 협업이 이루어짐으로써 글로벌 기업이나 중소기업, 지역 단체 등이 요구하는 크로스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여행사, 문화예술기관, 통신사, 출판사, 교육기관, 비영리 단체 등의 디자인 솔루션을 개발해 왔답니다.

    저희 작품은 책 디자인이나 학회 브랜딩에서부터 기업의 경영 전략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요. 하지만 저는 오랜 고객인 슈투디오주스 여행사(Studiosus Reisen)와 같은 자영업체들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요. 카탈로그 제작에서부터 브랜딩 작업까지 30년 넘게 인연을 계속해 왔거든요.

    디자인 프로세스와 작업 방식이 궁금해요.

    작업 방식은 ‘사물에서 얻는 영감’을 따르는 것이에요. 그다음으로는 함께 의논하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웃어 줄 동료가 필요하지요. KOCHAN & PARTNER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물론 작업에 따라 달라지죠. 그중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6-3-5 기법인데요, 단시간에 체계적으로 큰 성과를 내는 브레인라이팅 기법을 사용하는 그룹이 있고요, 거기에서 나온 모든 아이디어는 다른 그룹에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돌고 도는 거죠. 단기간에 브랜드 개발 프로세스의 정밀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독자적인 모델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사람에게 적용하듯 하나의 브랜드를 7개의 개별 속성으로 나누는 방식 말이에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글이란 것은 언어에 새 옷을 입히고, 그것을 유려하게 만들며, 막연한 느낌을 정보의 형태로 구체화하며, 열매가 단단한 외피를 형성하듯 지식을 체계화해요. 이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타이포그래피이지요. 명언 중에 “세상에서 디자인을 안 하는 디자인은 없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것을 인용해서 “세상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안 하는 타이포그래피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말하자면 “세상엔 타이포그래피가 아닌 게 없다.”는 것인데요, 하다못해 문서를 작성할 때에도 모양을 꾸미기 위해서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떤 글자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 자체가 타이포그래피라는 거죠. 이런 원론적인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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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RM, KOCHAN&P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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