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고 따뜻하다. 둥글둥글 정가는 모양새로 마음을 움직인다는 얘기다. 스튜디오 취그라프(CHUIGRAF)의 디자인은 최종원 실장의 그런 성격을 닮았다. 디자인한다는 건, 퀴즈를 풀어가는 일이라며 성실히 그 과정을 즐기며 사람. 남의 말이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제 것으로 만들어 현명하게 적용할 줄 알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그 너머의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 작은 스튜디오지만 어쩐지 힘있게 느껴지는 이유 중의 이유이다.
CHUIGRAF, 스튜디오 이름의 뜻
한자의 ‘취할 취(醉)’와 그래픽(graphic)의 앞부분을 따서 그라프(GRAF), 그래서 취그라프예요. ‘취’ 자는 뜻이 여러 가지인데요, 그중에서 ‘취하다’, 그리고 또 ‘지나치게 좋아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탐닉하다’라는 뜻과도 통하죠. 그래서 부여한 의미가 ‘그래픽 디자인을 지나치게 좋아하는….’이라는 뜻이에요.
지금까지의 활동
학부 졸업하기 전, 3년 동안 회사에 다니며 아바타와 웹디자인을 했었어요. 졸업 후에는 디자인 스튜디오 ‘601비상’에 들어가서 기업 브로슈어, 애뉴얼 리포트 등의 작업을 했었고요. 그러고 그 후 대학원에 진학했는데요, 대학원 수료할 즈음에 친구들과 스튜디오 헤르쯔를 창업했다가 독립해서 지금의 취그라프를 하게 된 거예요. 시작한 지는 2년 반 정도 됐네요. 취그라프는 소규모 스튜디오이지만, 같이 하는 객원 멤버들이 있고 필요한 경우 주변에 다른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서 작업하기도 해요. 편집, 브랜딩, 웹이 주 작업이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601비상’ 홈페이지 리뉴얼 작업이요. 601비상 입사하고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였는데, 제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되어 거의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었죠. 그때가 벌써 5~6년 전이라 최근 다시 리뉴얼 돼서 아쉽긴 하지만, 첫 작업이기도 하고 나름 잘 만들었던 것 같아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때 잡았던 콘셉트에 대해 설명해 드리면 601비상이 한국적인 느낌이 있는 스튜디오잖아요. 스튜디오라고 하면 작업으로 이야기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모아 면면이 특색 있는 책, 달력 등의 옆면을 스캔하는 작업을 했어요. 스캔하는 동안 조금씩 책을 움직였더니 이미지가 왜곡되면서 불꽃 모양, 산맥 모양 등이 연상되는 그래픽적으로 근사한 이미지가 되더라고요. 일곱 가지 정도의 이미지들을 메인에 띄워 사람들이 접속할 때마다 랜덤으로 나오게 했어요. 601비상의 아이덴티티를 잘 표현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해요.
웹 디자인의 매력
포스터 작업 등의 그래픽 디자인이 일방적으로 내지르는 소리라고 한다면 웹 디자인은 사용자와 인터렉션이 되잖아요. 표현 방식도 좀 더 다양하고요. 드러나 있던 게 감춰질 수도 있고 감춰져 있던 게 드러날 수도 있고. 그런 점이 매력이죠. 학부 때부터 웹을 해서 그런지 그래픽과 웹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익숙하고 좋아요.
간결하고도 따뜻한 이미지의 근원
저는 오래 생각하고 짧게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간결한 디자인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제 성격이 두루뭉술하다 보니 그런 게 투영되지 않나 싶어요.
특별히 관심을 갖는 주제
예전에는 한국적인 디자인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이제는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디자이너들의 패러디나 오마주에 관심이 있어요. 생각해왔던 스테이셔너리 브랜드에 이런 그래픽을 녹여내고 싶은데 표현 방법이나 패러디와 오마주 대상에 대해 고민 중인 단계예요.
서촌체 소개,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제가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티보 칼멘(Tibor Kalman)인데요, 그의 작업 중에 버내큘러 디자인을 보면서 매우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세련된 디자인만 좋아했었거든요. 그 주제가 대학원 논문으로 이어졌고 서촌 지역 길거리 서체를 연구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 서체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고 그중에 특징적인 것들을 뽑아내서 서체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몇 가지 글자들을 만들어 실험했던 거죠. 논문은 지금 개인 사정으로 멈춰 있는 상태예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서체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작업 스타일, 버릇
작업을 묵혀두는 습관이 있어요. 물론 일정이 촉박한 건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웬만하면 일단 시안을 빨리 만들고 시간을 두고 내버려 두었다가 다시 꺼내 봐요.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그때부터 작업 전개가 잘 풀리는 경우가 많지요. 언젠가 폴 랜드(Paul Rand)에 관한 책을 보다가 디자인을 시간을 두고 묵혀두길 추천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때부터 습관이 그렇게 들었어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디자인은 퀴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내놓는 디자인이 그 퀴즈의 해답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제가 예전에 했던 에이북스 브랜딩 작업을 예를 들면요, 당시 시작하는 단계의 브랜드였고 제작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돼 있었어요. 그래서 애플리케이션도 최소한의 종류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명함 하나, 스티커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스티커를 택배 박스에 붙이거나 편지를 보내거나 포장을 할 때, 어느 곳에 붙여도 어울릴 수 있는 형태와 크기로 디자인을 한 거예요. 그리고 ‘비용 절감을 위해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라는 퀴즈의 문제가 잘 풀렸다는 생각을 했지요.
영감을 받는 어떤 것 혹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앞에 말씀드렸듯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티보 칼멘이에요. 그의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제품들, 메시지가 강한 편집 디자인들을 좋아해요. 작업 자체에서 영감을 받는다기보다 작업의 접근 방식이나 열정에서 동기부여가 되죠. 또한, 일상에서 영감 받는 것이 있는데요, 여행을 다닐 때 간판, 전단들을 촬영하기도 모아오기도 해요. 외국이나 혹은 낯선 지방의 모습에서 좋은 느낌을 받아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생각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제 작업에서 타이포그래피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다른 방법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타이포그래피적인 디자인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
티보 칼멘과 함께 알란 플래처(Alan Fletcher)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의 책 중에 라고 있는데요,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거리가 새록새록 떠올라요. 제가 아직은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할아버지 디자이너가 됐을 때 알란 플래처처럼 후배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제가 가진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을 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
그동안 다른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왔지만, 올해는 취그라프의 홈페이지를 꼭 만드는 것.(웃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예전에 디자인 업체들의 매출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요,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들은 로열티로 받는 금액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은 클라이언트 작업을 베이스로 매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편이고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클라이언트 작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낼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제가 디자이너가 된 이유가 진짜 하고 싶은, 재미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의 토대를 만드는 게 장기적인 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