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하고 또 풋풋하여라. 천재성을 갈구하고 궁금한 것은 당장 알아야 하며,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뭔지는 잘 몰라도 소소한 즐거움만 있으면 더없이 만족스럽단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도 뭘 잘 몰라서 하는 고민이라며 뭐든 파고 들어야겠다고 눈빛을 반짝이는 그녀. 좌충우돌 청춘잔혹사를 겪고 있는 학생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최빛그림을 만나 보았다.
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그림을 그리자.’라는 의미에서 제가 지은 이름이에요. 원래 이름이 굉장히 흔했던 것도 싫었는데, 가족끼리 고심해서 지은 게 아니라 작명소에서 운 따라 만든 걸 알고부터 더 애정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한글 이름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요, 그래서 스무 살 때 개명을 하게 됐어요. 이름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가끔 걱정하세요. 사람들이 제 이름 기억하기 쉬우니까 행실 나쁘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죠. 그런 점을 항상 명심해요.
내가 소개하는 나는
지금까지는 디자이너라고 하기엔 부끄러워서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하게 된 것도 그래픽적인 결과물을 보고 해주신 거잖아요. 지금 공부하는 것도 디자인이고. 그래서 요즘엔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아요. 전 그냥 디자인을 좋아하는 학생이고 남들만큼 음악도 영화도 좋아하는 평범한 20대라고 소개해야겠네요.
지금까지의 활동
2011년에 20대 문화를 담은 픽업매거진이라는 웹진을 만들었었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함께 했던 친구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오래가진 못했죠. 그리고 저희 교회 고등부에서 만 4년을 일하며 수련회 포스터라던가 캠프 현수막, 신문 편집 등의 작업을 했어요. 최근에는 사이시옷이라는 창작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필요에 따라 포스터를 만들기도 하죠. 가장 꾸준히 하고 있는 작업은 폴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는데,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의 기록이에요. 가끔 특이한 것을 찍어서 올리기도 하고요. 예전에 대림미술관에서 하는 폴 스미스 전시를 간 적이 있는데요, 그분은 디카로 일상을 찍어서 그걸로 영감을 얻기도 하신대요. 그때부터 저도 그렇게 저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면 좋겠다 해서 시작한 일이에요.
사이시옷에 대해 더 얘기한다면
‘우리는 트위터를 통해서 모였지만,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이 친하며 밴드를 표방한다.’는 슬로건이 있어요.(웃음) 처음 이 모임을 만든 리더가 밴드를 하고 싶었대요. 그런데 막상 할 줄 아는 건 없고. 그래도 무작정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한 거죠. 지금 30명의 멤버가 있지만, 실제 악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2명 정도예요. 연습은 한 번도 안 했지만, 올해 합주를 해보는 것이 목표이고요.(웃음) 실제 성격은 창작 모임인데요, 그래도 각자 맡은 역할이 있어요. 저는 사이시옷의 수석 디자이너이고요.(웃음) 장구이스트, 플래너, 매니저, 심지어 무의미도 있어요. 장난스럽지만 재미있어요. 제일 처음에 기획했던 모임이 고구마 캐러 가는 거였는데, 제가 포스터 작업을 했어요. 결국, 리더와 그 친구들만 갔을 뿐 우리 멤버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지만요.(웃음) 그동안 하이쿠(짧은 시) 경연 대회도 하고 연작 소설도 꾸준히 써오고 있어요. 오는 6~7월에는 연희동에 있는 SF&판타지 도서관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초기작을 보기로 정했죠. 그동안 20대 청춘들이 모여 일상의 소소함을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향유하고 있었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고요.
가장 첫 번째 작업
초등학교 6학년 때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정말 신기했죠. 사진에 효과 주고 글씨 막 변하고. 그런 게 신기해서 다음 카페에서 컴퓨터 강좌 보면서 열심히 따라 했었어요. 그래픽적으로 뭔가를 했었던 것의 시작이었죠.
기억에 남는 작업
첫째는 먼저 말씀드렸던 픽업매거진이요. 그때 기획했던 코너 중에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있었어요. 2호선 타고 가다가 발견하면 무작정 가서 명함 드리고 어떤 일을 한다고 설명하고 앉아 계신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죠. 질문은 주로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무엇이고 어디까지 읽었고 지금 목적지는 어디냐. 그런 것들을 묻는 것, 그 작업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두 번째는 제가 고고 보이스라는 인디밴드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로고 공모전을 하는 거예요. 어쩌다가 뽑혔는데 그 로고를 쓰진 않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해서 그 밴드를 알게 됐고, 후에 공연 포스터도 만들게 되었어요. 그것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요즘 최고의 관심사
진로. 아무래도 내년에 졸업하니까요. 앞으로 뭘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왜 그런지 요즘에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하기 싫은 것도 많아졌고.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뭘 모르니까 이런 혼란이 오는 것 같기도 해요. 자꾸 무언가를 파다 보면 새로움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자꾸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들어요.
SNS 계정이 참 많다.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SNS에서는 저와 취향이 맞거나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잖아요. 친구를 만나듯이 말이에요. SNS를 통해 만난 지인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 사이버 공간이 마치 기숙사 같다고요. 일과를 끝내고 옹기종기 모여서 오늘은 뭘 했네, 쟤는 또 뭘 했네.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도 풀고 소소한 행복도 느낄 수 있어요. 그런 매력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천재 하고 싶다.’라는 말을 쓴 걸 보았는데, 어떤 의미였나
제가 생각하는 천재는 굉장히 번뜩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면서도 ‘아!’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저도 그런 걸 하고 싶다는 의미로 써 놓은 것이죠.
추구하는 그림(디자인) 스타일
위트 있고 재미있는 것이 좋아요. 반어적인 것도 좋고요. 예전에 ‘성서로’라는 이름의 교회 수련회 포스터를 만든 적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학생 중에 ‘이성서’라는 아이가 있었거든요. 그 아이를 주인공을 크게 내세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렇게 작업을 했었죠. 아직 스타일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딱히 없지만,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저만의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언젠가 영화감독 이안이 만든 <라이프 오브 파이>, <색계>, <브로큰 마운틴>이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평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나의 작업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품은 적이 있지요. 아직 이루어 가는 과정이니까요.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또는 영감을 주는 어떤 것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일러스트레이터 오노 준이치요. 천재라 불리 우는 사람이죠.(웃음) 그는 어린이들의 감성을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려요. 꼭 왼손으로 그리는 것처럼요. 나이를 먹어도 그걸 유지한다는 것이 대단해요. 그리고 그래픽디자이너 정진열 교수님이 ‘볕’이라는 글자를 바닥에 쓰고 몇 획만 띠어다가 창문에 붙이는 작업을 하셨었어요. 그런데 정말 ‘볕’이 들어오면서 창에 붙인 몇 획의 그림자랑 바닥에 남아있는 글자가 합쳐져서 ‘볕’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죠. ‘볕’으로 ‘볕’을 만드신 거잖아요.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을 빠져들게 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매력
저는 고딕을 참 좋아해요. 딱딱 떨어지고 강렬하고 선동적이고 복고적인 느낌도 들고. 그런데 명조를 쓰면 점잖고 부드럽고 신사가 얘기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있거든요. 이렇게 글자로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장기적인 계획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단기적인 계획은 졸업작품을 열심히 준비하는 거예요. 졸업작품으로 페이크진(fake zine)을 만들고 있어요. 표면적으로는 미술저널인데, 모두 제 작품이지만, 수상 경력이 화려한 가상 인물의 작품인 듯 실려 있는 거죠. 우리가 보통 아주 작은 작품이라도 상을 받았다거나 경력이 화려한 작가의 작품이면 와~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약간 비틀어 보고 싶었어요. 결과물이 잘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또, 졸업하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생각이에요. 런던은 비싸니까 시골로 갈까 생각 중이죠.(웃음) 어디든 가서 많은 경험을 쌓고 많이 배우고 싶어요. 다녀오면 뭔가 계획이 생길 것 같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어떤 세부 계획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