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따져 물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춘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간이 청춘의 시간인 것이다. 그 기간의 길고 짧음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치바나 다카시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을 빌리자면, 청춘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라 불리는 7080세대, 1990년대의 세기말 세대, 2000년대의 밀레니엄 세대들 모두 청춘을 거쳤다. 청춘기, 그들의 공통된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민이 표출되는 방식은 시대별로 달랐을 테고, 청춘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 차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로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디자인’을 꼽아봤다. 시대에 따라 다른 표현 방식으로 디자인된 청춘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는 일. 이를테면, ‘청춘’이라는 두 글자가 과거에는 정방형의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되고, 요즘은 탈구조적인 캘리그래피로 쓰이는 점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청춘을 지내온 사람, 지금 청춘인 사람, 앞으로 청춘을 맞을 사람 모두의 감성을 아우르고, 결국 모두가 ‘청춘’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 타이포그래피 서울과 함께 청춘을 이야기한 아날로그 세대, 그리고 디지털 세대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들은 디자이너답게 각자의 청춘과 어울리는 폰트까지 골라주었으니, 이름하여 ‘청춘의 타이포’다. 그들이 고른 청춘의 타이포에, 그들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쩌면 여러분의 청춘도 함께 담겨 있을지도.
‘청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
‘꿈’이 떠오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늘 꿈을 꿨어요. 훗날 어떤 상황이더라도 좋은 글씨를 써서 남기겠다는 목표도 분명했고요. 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을 향해 걷는 건 고사하고, 책조차 마음껏 사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려운 환경을 오히려 즐겼습니다. 이것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고 생각해요. 어떤 환경이든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 환경은 자신을 자라게 하는 토양이 됩니다.
내 청춘의 음악 또는 영화, 책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알게 되고 선생님의 작품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죠. 그 후론 서예전시만 있으면 달려갔어요. 그땐 서예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잘 알지 못했지만 무조건 보러 갔습니다. 추사의 글씨는 글의 내용에 따라 글꼴과 구도, 서법이 다릅니다. 이는 작품에 임하는 정신이 다름을 뜻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그와 같은 글씨를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내 청춘, 일생일대의 사건
IMF예요(웃음). 당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래처의 부도로 회사 운영이 힘들어졌고, 덩달아 망했어요. 그때 ‘나는 사업가의 자질이 없다’는 걸 알았죠. 덕분에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생각한 것이 캘리그래피였고, 몇 년간의 준비 끝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결국은 IMF가 꿈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된 셈이죠.
요즘 청춘, 부럽다 vs. 안타깝다
서예는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오랜 연마, 즉 공부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십 수년에 걸쳐 배우고, 익힌 것을 불과 몇 개월 만에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너무 조급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깝죠. 추사선생님은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아니한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券氣)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글씨 씀의 가벼움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본을 충실히 하고,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글씨, 즉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씨를 쓸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곧 멀리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구요.
내 청춘의 타이포
‘꿈이 있다면 그대는 언제나 젊다’는 의미에서 ‘윤명조’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한글 서체 중에는 최정호 선생이 만든 서체가 가장 오래 되었지만 반대로 가장 젊은 서체가 아닌가 합니다. 그 점에서 맥을 이어가고 있는 ‘윤명조’가 지금의 서체 중에는 젊게 느껴지네요.
청춘에게
‘꿈을 가져라’,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걸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니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고,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질이 있는 거예요. 당장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밀고 나가세요. 저 역시 초등학교 때 서예를 배운 이후 독학으로 캘리그래퍼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좋아하면 끊임없이 공부하게 되고, 평생의 업이 되기도 합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따지지 말고 멀리 보세요.
다만, 그 일을 시작할 때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저를 예로 들면 ‘다양한 의미를 가진 우리말을 한글 캘리그래피에 접목시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한글의 새로운 표정, 아름다움을 보여주자’, ‘캘리그래피를 정식 디자인의 한 분야로 발전시키자’가 목표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의 목표는 과도기적인 한글 캘리그래피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캘리그래피가 시대의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까지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자신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지요. 공자의 말씀으로 끝맺겠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그것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