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삶에 직접 쓰인 고급 건축 문화에 대한 식견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갖게 한다. 이번 여행은 중세 이슬람 문명의 아주 고급스럽고 우아한 궁전을 통해 그들이 생각한 고격한 삶을 함께 반추해보고 싶다. 성경에 의하면 태초에 신은 에덴이라는 정원을 창조했는데, 그곳은 물과 향기와 기쁨이 넘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낙원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BC 10세기경 아시리아 시대부터 중동지역의 인류는 운하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와 신비함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전설적인 정원을 재창조하려 애썼다.
기쁨이 넘치는 평화로운 낙원은 어떤 곳일까? 무슬림들은 천국은 신이 인간에게 약속한 장소로 낙원을 현실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예정된 천상세계를 현세에서 구현하여 그 삶을 보여주고 맛보게 함으로써 천국을 더욱 갈망하게 하였다.
종교는 지적인 동시에 대중과 영합하는 측면을 다 가져야했다. 이슬람에게 주변의 자연과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기쁨은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승화의 대상이다. 현세는 그들에게 아랍어로 얘기하고 선택해준 신의 축복을 기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낙원이 지중해 연안의 푸른 하늘과 온화한 햇살 속의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에 만들어진다. 그곳은 삼나무 그늘 아래 페르시아 샘가의 물소리와 오렌지 향기가 천상의 향기인 듯 느껴지는 마치 천국의 정원을 지상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이슬람 최고 수준의 건축
750년 바그다드에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피신해온 압달 라흐만 1세 이후 800년 동안 스페인 남부지방은 술탄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데, 1236년 수도 코르도바가 기독교도에게 함락당하자 살아남은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무하마드 1세는 그라나다로 피신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거점이 된 그곳에 분수와 석류나무가 넘치는 낙원을 짓기 시작하고, 약 250여 년간 통치하게 되는데, 바로 그 건축이 알람브라 궁전이다.
7채의 궁전이 있었으나 코마레스 궁전과 사자의 궁전만이 남아 영화롭던 옛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당시 이슬람 문화는 유럽의 문화보다 낙후된 사막의 후진문화가 아니었다. 수도였던 코르도바는 바그다드나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뒤지지 않는 유럽 최고의 도시로, 유럽의 유복한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중세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선진 문화였던 이슬람문화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코르도바를 거쳐 로마 쇠퇴 이후 문화적 암흑기였던 유럽에 전해졌고, 서양 문화를 꽃피우는 역할을 하며 르네상스 태동의 기초가 되었다. 다시 말해 알람브라는 유럽 변방의 건축이 아니라 중세 유럽과 이슬람 문화의 최고 수준의 건축으로 문화가 절정에 올랐던 마지막 시기에 지어진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무하마드 5세에 이르러 사자의 궁전을 덧지어 화려하고 우아하며 문학적인 기품의 장식된 궁전으로 완성되어 번영의 황금기를 맞는데, 1492년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기독교 세계에 항복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불렸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판 마법사가 지은 건축’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었다.
이슬람의 평화와 빛의 세계
낙원에 대한 동경은 아랍인들의 꿈이다. 그들은 사막의 자연에는 없는 인공의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다시 사막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 사막의 후예들은 중동지역이 아님에도 중동 특유의 내부지향적인 구조에 사막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심고, 물의 수로로 얽힌 그들의 본향적 건물을 지었다. 동방의 이슬람 건축과는 또 다른 미지의 형식으로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감각적 영향이 느껴지는 무어인들의 양식이다.
그들에게는 건축보다 정원이 더 중요했고 건축의 내부 역시 정원의 연장이었다. 검정, 초록, 노랑, 파랑의 우주의 4원색을 사용하여 무한하고 영원한 살아있는 형식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소리와 향기 등 인간의 5가지 감각과 섬세하게 결합하였다. 벽체의 반짝이는 타일에는 나무들을 그려 사방의 벽면을 푸른 숲의 오아시스처럼 치장하고 천장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우주를 옮겨다 놓은 듯 별들이 빛나는 하늘을 만들었다. 숲의 그늘 아래 꽃의 융단을 깐 카펫을 밟으며 천상의 음악을 듣는 낙원의 삶을 즐긴 것이다.
사진은 대사의 방과 가장 아름다운 천장으로 불리는 자매의 방으로 ‘모카라베’라고 불리는 종유석 모양의 장식 천장이다. 천장 가득한 모카라베의 기하학적 무늬는 빛과 그늘의 입체적 대조와 연결로 마치 살아있는 듯 물결친다. 당시 동·서양을 훨씬 앞선 천문학의 발달은 하늘의 운행과 우주의 빛들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고, 별들과 빛에 대한 미적 탐구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으로 변모한 우주의 빛이 서로 반사되며 또 다른 빛으로 연이어지고 투과되면 자매의 방은 보라색이나 황금색 등으로 변하며 빛의 분수가 천상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듯하다. 벽과 바닥의 나무와 꽃들과 함께 무수히 율동하는 듯한 빛의 세계는 깊은 고요 속의 진정 화려함으로 건물 깊숙이 배어든다.
중세 천 년을 지배해온 기독교 세계의 미는 현실이 아닌 초월적 세계를 드러내고 암시하는 빛과 색의 아름다움이라면, 당시 이슬람의 미학에서 빛이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암흑과 달리 스스로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 존재의 표현이고 “만물 중 가장 분명한 것으로 어떤 정의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흩날리는 물소리의 문학적 정원
낙원은 숲의 정원과 빛의 세계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건축과 천장의 우주 그리고 식물과 빛들이 독자적인 가운데 서로와의 조화를 꿈꾼다. 수로의 물과 높은 천장은 방을 시원하게 하는 동시에 궁전의 거의 모든 곳을 따라 흘러내리고, 흰 물보라와 함께 소리 내며 분수를 통해 솟아오르고 부서지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획일적인 기하학적 건축에 반투명한 레이스 천을 드리운 듯 하다. 생생하고 아스라히 변화하며 흐르는 물의 모습은 빛과 바람에 투과되어 애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유명한 사자의 정원은 124개의 가늘고 섬세한 긴 기둥의 주랑 속에 둘러싸여 1시에는 한 마리 2시에는 두 마리 등 12마리 사자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와 시간을 알리며, 푸른 하늘과 대비된 하얀 빛의 그늘 속에서 경이로운 생명의 힘을 발한다. 사방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수로의 물소리와 합쳐진 오후의 황금빛 대리석 정원은 현실에는 없는 투명하고 환한 평화가 깃든 침묵 속에 합창하는 곳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시각적 예술보다 문학적 취향이 우선시 되었던 교육의 영향으로 궁정 곳곳에는 문학적 기품의 시로 궁전을 장식하여 더욱 친밀하고도 평온한 곳이 되었다. 행정과 업무를 보는 사무실엔 “여기서 정의를 발견할 것이다”는 코란의 권위적 구절도 있지만, 생활하던 방에서는 키스를 너무해 이빨이 다 뽑혔다는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시들로 많이 새겨졌는데, 이빨이 다 뽑힐듯한 키스를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는지요? 서두에 문화의 고급스러움에 관해 얘기했지만 고격함만 추구하는 것은 역동적 힘을 잃어버리기 쉽다. 인간 욕구와 야생의 본능 또한 긍정할 수 있을 때 지적인 동시에 개방적이고 활기찬 삶이 될 수 있으며, 건축도 그러하다.
이슬람의 주류 철학자들은 내세의 기쁨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고 현세의 기쁨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신의 존재는 그의 창조물을 통해서만 보일뿐 그 외의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일련의 사상은 눈에 보이는 식물 등 현실의 것의 아름다움을 인정했다.
“장미꽃밭에서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성의 망루에 푸른 달빛이 은은히 흐르고, 흐르는 시냇가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세계. 이 너무나도 멋진 세계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라고 노래했던 무슬림들에게 미인이란 삼나무처럼 가는 허리에 모래 언덕 같은 몸매와, 부드러운 곱슬머리에 숨쉴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입술을 가진 밝은 여인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마치 그들의 선조가 사막에서 찾아낸 본연의 향수인 듯 느껴지는 낙원의 꽃밭에서 하렘여인들의 장밋빛 손가락과 머리맡으로 쏟아지는 별들의 향유를 느끼게 하는 낙원의 심연으로 오늘의 우리를 초대한다. 성가를 부르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아도 오히려 성스럽게 느껴지는 기쁨의 향기를 지금까지 느끼게 한다.
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교수이며 건축가와 디자이너이다.
동양사상과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명묵의 건축>, <미의 신화> 등의 저서가 있다.
대표작으로는 강하미술관, 한칸집, 카트러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