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작업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보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과정이다. 기억의 지층을 파고 들어가 내면에 있는 '무엇'을 만나게 한다. 그 무엇은 '나'일 수도 있고 '우리'일 수도 있으며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존재'일 수도 있다. 공간, 그리고 관계-맺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디자인 스튜디오 맺음. 조은환 작가가 먼저 반갑게 맞아준다. 그의 다정한 인사는 추운 공간에 따뜻한 목도리를 둘러준 듯 포근하다.
작업 방식이 독특해요. 익숙한 것이 낯선 것이 되기도 하고.
조은환
옛날 물건으로 작업한 게 많아요. 서울역 리노베이션 할 때 폐기물로 설치물을 만들었는데 저희도 모르는 새 리사이클링 디자이너로 분리되기도 하고(웃음). 친환경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데(웃음). 옛 물건이나 기억을 간직하고 바라보고 조율하는 게 좋아요. 같은 의자라고 해도 내가 앉던 것과 남이 앉던 건 다르잖아요. 예전에 내게 의미 있던 것을 지금 내 옆에 어떻게 둘 것인가. 리러브(re-love), 다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생각하죠.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가?(웃음)
공간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점인가요?
조은환
최근엔 아기자기하게 하고 싶더라고요. 얼마 전에 웨딩 부티크 숍을 했는데 겉은 미래지향적인데 천장 패널 400개에 다 자수를 넣었어요. 주변에선 다 말렸죠(웃음). 소소한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한 번 보고 우와! 하고 다시는 안 가는 건물보다 자주 찾아가고 싶은 곳을 만들고 싶어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무난한 아름다움을 막대한 자본으로 만드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피드백을 듣는 편인가요?
조은환
그것도 어딜 다녀야 아는데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서(웃음). ‘맺음’이라는 이름도 가까운 친구들은 결혼정보회사 이름 같다고 해요(웃음). 제 색깔이 100% 드러났다고 보긴 어렵지만 다른 방식으로 하는구나, 라는 말은 많이 들어요. 우리나라에서 실내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같이 하는 분은 드물어서 그런가 봐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간 디자인을 하다 보면 그곳에 놓일 가구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니까 일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네요.
작업하시는 걸 보면 공간 디자인의 범위가 참 넓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은환
공간은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조금 알겠다 싶으면 모르는 게 또 나와서 아직도 배우고 있어요.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라 혼자의 재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고요.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내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관공서 건물을 디자인할 때도 국가, 사회, 이념 등 거대 담론만 생각하면 진실이 아닌 이념에 끌려가 버릴 수 있거든요.
관계, 소통, 혹은 맺음. 나가 아닌 우리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누군가로부터 소외당했을 때의 경험은 날카로운 칼에 찔렸을 때나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 느끼는 물리적 아픔과 똑같다고 한다. 맺음의 작업은 공간에 대한 미학을 넘어 사물과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바라보며, 다시 사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조금 늦게 신태호 작가가 돌아왔다. "날씨도 추운데 이 오지까지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해맑은 미소, 공간의 분위기가 또 한 번 달라진다.
최근 하고 계신 작업 얘기 좀 해주세요.
신태호
한지 프로젝트에요. 안에 어떤 구조물도 없이 오직 한지로만 의자를 만들었어요. 예전엔 한지로 갑옷을 만들었다고도 해요. 한지는 뭉치면 더 단단해지는 속성이 있어요. 재작년에 영국에서 전시를 했고요, 작년엔 국내 전시를 했는데, 생각할 거리를 갖게 됐어요. 올해 4월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획전을 할 예정이고요.
한지 의자가 심플하면서도 아름답네요. 실제 작업은 어려울 것 같아요.
신태호
쉽지는 않네요(웃음).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있던 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한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전통소재이기 때문만은 아니고요, 소재가 갖는 특성이 현재에도 적합한 부분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실험성이 강하고 당장 실용성을 갖지 못한다고 해도 길을 여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우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1차 목표고 2차 목표는 실용화에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시나요? 서로 의견이 다를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신태호
프로젝트마다 달라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문제로 주어지는 게 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있어요. 문제로 주어질 때는 우리 색깔을 넣으면서 합리성을 고민하죠. 문제를 제기할 때는 둘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져요. 전자는 해결점에 포인트를 두고 후자는 자유롭게 생각을 퍼트리는 방향으로 가고요. 가구는 100퍼센트 저희 의견을 넣는 편이고요, 공간 디자인은 상대의 필요성이 분명하니까 수용하지만 작업 맥락이나 계기가 혼재될 때가 많죠.
맺음의 가장 큰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신태호
맺음 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름을 위한 소통’이거든요. 생각이 다를 때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나, 그 접점이 같아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 달라질 수 있나, 그런 고민을 해요. 방향성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소통을 해내 가는 과정에서 큰 맥락이 잡힌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가자! 라고 정하지 않고 남들이 지금껏 안 했던 일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죠. 재미있어야 야근을 해도 즐거우니까. 오늘도 야근입니다(웃음).
'맺다'라는 말에 열매를 맺다, 인연을 맺다, 끝을 맺다 등 이어주고 연결하며 완성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이들의 작업을 단지 리사이클링 디자인이라는 범주로 국한하기엔 스펙트럼이 넓다. 맺음은 잊고 있던 기억과 역사를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아 사물과 인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맺어준다. 과거와 현재, 망각과 기억,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차이가 다름을 인정하는 공존의 방식으로.
서로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조은환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처음 듣는 질문이네요(웃음).
신태호
모범생 이미지였어요. 버스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이 참 바르구나. 나하고는 안 어울리겠다, 친해지지 말아야지(웃음).
조은환
그때 이 친구가 자주 입던 자주색 재킷이 있었어요. 어린아이 같은 웃음과 밝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자주색 재킷과 눈빛에서 범상치는 않게 살았구나, 싶었죠. 뭔가 깊은 경험을 하신 분 같은?(웃음)
신태호
제가 재수를 해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웃음). 서로 다른 장점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요?
신태호
이 친구는 전체를 보고 파악하는 안목이 높아요. 넓게 방향을 잡고 균형을 찾아주죠.
조은환
직관이 강해요. 순간적인 포커스를 잡아 깊게 파고들어야 할 때 강점을 발휘하죠.
신태호
디자인적으로 보면 굉장히 자유로운 면이 있어요. 회화적이라고나 할까. 반면 전 디테일하게 정리되고 정돈된 면이 나오고요.
조은환
겉으로 보면 제가 바른 생활을 해왔는데, 작업은 과격한 면이 있어요. 이 친구는 일상은 자유로운데 오히려 표현은 절제되고 단순한 것을 잘하고요.
신태호
평소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건가?(웃음)
공간이 주는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조은환
건축은 정치적이고 가구는 단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공간은 할수록 재미있어요. 공간마다 주는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수도원을 예를 들면 빛, 소리, 경건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이 주는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누가 그곳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매력이고요.
신태호
공간이 재미있는 건 다른 디자인 분야에 비해 온몸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어서인 것 같아요. 공간 안에 있는 것들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가로막는 것, 동선 등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이 느껴지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조은환
공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니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방법을 좀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펙트럼이 넓게 일을 해보고 싶어요.
신태호
지금쯤 나만의 아카이브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좋다는 부분은 왜 좋은지, 싫다는 부분은 왜 싫은지 정리를 하고 싶고요. 아무래도 연초니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