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예술하냐?”
–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p.10
언젠가부터 익숙해진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는 개념. 그런데, 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준호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속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온 디자이너이다. 대학 시절 나름의 고민을 거쳐 소통하기 위해 만든 작업물은 ‘예술 하냐’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받았는데, 이에 꺾이지 않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와중 조나단 반브룩이나 네빌 브로디 등의 영국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는 강한 동기가 된다.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는 디자이너 권준호가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한 과정을 담고 있는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딱히 자극적이지도, 딱딱하지도 않지만 담담한 필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Part 1.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에서부터 ‘Part 3. 나의 사사로운 디자인 이야기’까지는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반부로, 저자 권준호가 만난 영국과 디자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각 파트의 마무리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작업물을 보여준다. 사회 문제와 그 속의 사람들을 조명하는 그의 세 작업 ‘런던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기 사람이 있다’, ‘Life – 탈북 여성의 삶’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저자의 소통에 관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저자 권준호의 시선을 따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디자이너 인터뷰로 타인의 시선을, 영국 디자인 교육 기관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로 정보를 담고 있는 식. 만약 책이 전반부만으로 구성되었다면 진지한 디자인 수필집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전, 후반이 함께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디자이너 인터뷰에서는 ‘댄 펀’이나 ‘와이 낫 어소시에이츠’와 같은 저자 본인이 영감을 받을 영국의 디자이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 형식으로 이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담아낸 것은 꽤 영리한 방법인데, 왜냐하면 질문을 통해 저자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에 곧장 다가설 수 있고 그들의 답변을 통해 더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이에 더해 영국 디자인 교육 기관 네 곳을 소개한 글은 실제로 영국 유학에 관심이 있는 디자이너에게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전히 작업을 통해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어렵기만 하고, 그 과정의 중간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p.383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 관한 저자의 고민이 기록되어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이 마무리되고 출판된 지금, 그는 아직도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어쩌면 그 개념에 대한 명확한 답은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계속되는 이상 앞으로도 그의 작업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최근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이 책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책 정보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은이: 권준호
디자인: 일상의 실천
출판사: 지콜론북
발행일: 2013년 9월 17일
가격: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