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없는 디자인 전문 계간지 『그래픽』. 2007년 1월에 창간해 7년이 지났다. 광고주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난해 『연필 깎기의 정석』을 내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 때도 그 마음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 출판 시스템에서는 나오기 힘든 책들만 골라낸 덕분에 서점의 책은 좀 더 다양해졌다. 프로파간다의 발행인 김광철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전히 한 눈 안 팔고 『그래픽』 잡지를 발행하고 있고, 1년 반 전부터 단행본 출간에 힘쓰고 있어요. 이제는 잡지보다는 단행본 출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데, 환경적인 요인이 있어요. 잡지의 사회적인 위상이 낮아지고 잡지 산업 자체가 많이 축소되었으니까요. 잡지는 영향력을 바탕으로 하는 매체인데 사람들이 잡지를 잘 안 봐요. 잡지냐 단행본이냐는 사실 부차적인 거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미디어는 바뀌어도 프로파간다의 정체성이 달라질 일은 없으니까요.
프로파간다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신다면요?
회사라기보다 이벤트 혹은 한시적 목적의 출판 퍼포먼스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책 자체도 대중적이거나 전통적이지 않고요.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생각보다 상업 출판 시스템에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이 내용이나 형태 측면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실험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출판이라고 할 때 누구나 떠올리는 내용과 형식의 책은 기존 출판사가 잘하고 있거니와 그 아성도 튼튼하기 때문에 숟가락 하나 추가한다는 건 저희에겐 무의미한 일이고요. 『그래픽』의 경우 아직도 광고가 없고, 수주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지저분하게 잡지를 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단행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출판은 한 사회의 다양성, 대안적인 목소리 혹은 숨겨진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이고 기성 가치관을 공격하거나 새로운 가치관을 주창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잡지든 단행본이든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프로파간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프로파간다라는 이름엔 부정적인 것도 섞여 있다고 봐요. 언론도 하나의 인격체라고 본다면 많은 언론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잖아요. 왜곡이 많죠. 직필정론, 불편부당을 주창하지만 사실 허황된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선전’이 솔직합니다. ‘선동’은 더 좋고! 장막에 숨어서 세뇌하지 말고, 나와서 선전하듯 하는 게 차라리 괜찮지요.
예전 직장생활을 생각하면 지금 생활은 극적인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것인가요?
극적인 반전이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어릴 때부터 역류하려는 태도, 기본적인 불만이 있는 거죠. 사회나 세상이나 주류의 흐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면 그런 불만이 에너지가 돼요. 순응하면 특별한 게 안 나오잖아요. 괴짜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불만이나 반골 기질이 실천에 반영되면 힘이 되죠. 저에게 지금 그것은 출판이고요. 하지만 지속가능한 체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여전히 너무나 마이너한 세계니까.
독립이라는 건 상대적이다. 기성이 있기에 독립이 있다. 규칙을 알아야 규칙을 깰 수 있는 법. 대항하려면 대항의 대상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독립출판의 정신은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출판도 하나의 생태계다. 태어나고 자라고 부딪치고 사라진다. 독립, 혁신, 새로움이라는 언어는 이 원초적인 생명력 앞에서 얼마나 진부한가. 프로파간다가 이 진부함에 어떤 식으로 구멍을 낼지 자못 궁금하다.
잡지를 간행하다가 단행본 출판에 매진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잡지 하나를 쉼 없이 내는 것이 인내심을 시험하는 측면도 있고요. 사람들이 그동안 단행본 출판을 하라고 해도 처음엔 관심이 없었어요. 경력을 잡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책이란 출판사 사람들이 하는 거로 생각했으니까. 2년 전 서무실을 서교동에서 파주출판도시로 옮기면서 단행본 출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업종 변경이라기보다는 일회적이고 시의적인 잡지의 기능과는 다른 책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담론을 응집력 있게 보여주는 것 외에 형식과 주제 면에서 훨씬 자유롭게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것 같아요.
『연필 깎기의 정석』을 처음 봤을 때 저도 깜짝 놀랐는데 그 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의 이로 씨가 추천해 준 타이틀이에요. 팔리느냐, 아니냐가 기준은 아니고요. 그냥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상 우리나라 책들이 종수에 비해 굉장히 획일적이고 기획 방향이 사회 트렌드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어요. 엉뚱하고 유희적인 건 왜 가능하지 않은가? 저 책은 거대한 농담일 수 그냥 장난처럼 출간했어요. 운이 좋았는지 좀 화제가 됐고 프로파간다가 시각 문화계에서만 알려졌다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 책의 내용이 프로파간다 출판의 은유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연필 깎는 직업을 가진 저자 데이비드 리스처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만족스럽게 자기 일을 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밀도가 높은 탓인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어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한국인은 너무나 사회적이죠. 출판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독립출판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독립출판이 4~5년 전부터 자생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는데 출판의 형식을 통해 일부 구성원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고 봅니다. 오버그라운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태지만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희는 독립출판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그것이 뭘까? 외형적인 결과가 기본 출판과는 그 내용이 확연히 달라요. 오로지 상업적인 고려 때문에 피동적인 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조건은 감내할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죠.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말이죠.
독립출판에도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는 워낙 소규모였어요. 하지만 내부 응집력은 강했죠. 작년부터 좀 더 상업적인 독립출판을 하는 곳이 나타나고 있고, 프로파간다도 점점 더 대중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해요. 분명 변화의 조짐이 있죠. 좀 더 외형을 확장한다든가 출판 산업에 진입하려는 의지가 있어요. 이쪽 내부에도 트렌드라는 게 있고 진부할 수 있고 패션처럼 소비되는 측면도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왜냐면 그런 비판을 받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은 게 현실이에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일단 많이 만들어보고 노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 과정에서 깨지고 도태되고 그러면서 계속 나아가야죠.
사소한 것,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 그럼에도 누군가는 재미있어할지도 모르는 것. 이런 것을 주제로 쓴 책을 낸다. 진부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언더그라운드 마인드’라고 부를 수 있겠다. 풍파가 심한 출판계에서 자본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으면서 꾸준히 책을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왜 이 일을 할까? 물어보는 건 우문처럼 느껴졌다. 그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프로파간다가 내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저희가 한다면 기존 출판사는 자기들의 출판 시스템 안에서 내기 힘든 책을 낸다고 보면 됩니다. 단순히 책의 경제성만을 말하는 건 아니고요, 하나의 타이틀을 출간하기로 하는 동기가 상당히 다를 것 같아요. 저희는 그저 출판계가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출간할 배짱이 있어요. 반대로 말하면 다른 출판사가 더 유능하게 잘할 수 있는 책은 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죠. 허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태생적인 정체성으로 봐야 할 문제고 독립출판을 표방하는 우리 같은 출판사마저 벌어 보겠다고 휩쓸리는 건 좀 별로라고 생각해요. 유명 저자를 끌어들이는 게 출판사의 가장 큰 과제라고 하던데, 저희는 그럴 능력도 없고 의지도 박약해요. 남은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출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콘텐츠를 담아내는 방식의 출판뿐이죠. 아마도 그 전체가 어리석은 과정일 텐데, 할 수 있다면 가장 어리석은 방식으로 해보자, 왜?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과정일 테니까. 백 년 천 년 출판할 것도 아닌데, 하는 동안엔 장렬하게 하다가 바람같이 퇴장하자고. 좀 허세처럼 보이네요.(웃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은 어떠세요?
불만이죠(웃음). 사는 게 불만인지도 몰라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행복할까요? 채워지지 않는 게 분명 있죠. 이 사회에서 사는 한 정치 경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명제 자체가 너무 단순하지 않나요? 행복하면 이런 출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고.(웃음). 불만, 분노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홍보는 어떻게 하세요?
홍보가 그리 효율적이지 않아요. 안 알리는 게 오히려 콘셉트라고 할 정도죠. 너무 많은 홍보, 너무 과도한 촉진, 흔해 빠진 홍보 문구, 너무 크리에이티브한(?) SNS 홍보 수단이 사람을 질리게 해요. 닥치고 가만히 있자, 고 이야기 합니다. 거기 휩쓸릴 시간에 맥주나 한잔 하자고.
프로파간다가 다른 출판사와 너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요?
기본적으로 『그래픽』과 같은 선상에 있는 시각 문화를 아카이빙하는 단행본, 그동안 출판 대상이 아니었던 서브컬처 단행본, 두 축으로 움직이는데 물론 그 사이에 애매한 것도 있어요. 그동안 제가 많이 들었던 충고가 있어요. “네가 하고 싶은 출판을 하려면 일단 돈을 버는 출판을 해야 한다. 그걸 토대로 네가 하고 싶은 책을 내라.” 이런 마인드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고 싶은 출판과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출판을 구분하려는 모든 시도가 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자세가 출판계를 너무 황폐하게 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출판을 그냥 하면 되는 겁니다. 돈 버는 출판은 쉬운가요? 거긴 더 치열하죠. 이상을 유예하고 이상에 반하는 출판을? 너무 고단한 일일 테죠.
앞으로 계획을 좀 말씀해주세요.
전 책임감이나 열정을 믿지 않아요. 열정은 변덕스럽고 내일은 또 어디로 튈지 모르죠. 보이지 않는 시스템, 내가 생각하는 출판을 할 수 있는 관계망을 구축하는 게 중요합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겁니다. 잡지 출판 외에 단행본을 한 달에 2권을 내는 사이클을 만들어 왔어요. 울컥해서 내고 그런 게 아니고 좀 차분하고 지속적이고 일희일비하지 않을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중 몇 권은 좀 독특하고 몇 권은 지나치게 독특할 겁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