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 년 반. 짧다면 짧은 경력이다. 하지만 김해시 건축 대상을 비롯해 연희동 주택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한 작업에 대한 관심과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건축가 그룹 ‘푸하하하프렌즈(FHHH Friends)’의 젊은 세 남자 한승재·한양규·윤한진은 같은 직장에서 만난 사이. 동료라기보다는 아주 오래된 친구 같다. 개성 만점인 작업실에서 즐겁고 유쾌한 건축 이야기를 들었다.(윤한진은 현재 뉴욕에 간 상태. 한승재와 한양규 옆에 그의 사진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푸하하하프렌즈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승재
이름은 푸하하하, 로고는 비둘기, 다 제가 독단적으로 정하다시피 했어요. 우리 모두 로고나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이름 정하는 게 스트레스잖아요. 시간 잡아먹고···. 그냥 단순한 이름. 혹시 해외 진출할지 모르니까. 그걸 콘셉트로 그냥 밀었어요.
양규
처음엔 “저희 푸하하하인데요” 그러면, “네? 뭐라고요?” 하고 잘 못 알아들으시기도 했어요. 김해에서 이번에 상 받는데도 터졌거든요. “건축 대상, 푸, 하, 하, 하, 프렌즈” 말씀하시는데 웃음 참는 게 옆에서도 다 느껴질 정도로.
승재
비둘기 로고도 별 의미가 없어요. 그냥 비둘기가··· 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비둘기처럼 낮은 자세로···.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난 거예요?
승재
같은 직장 선후배 사이였어요. 동기 사이인 한진이와 저는 신입 때 “우리 3년만 채우고 독립하는 거다” 이러면서 농담 반 진담 반 의기투합을 했죠. 양규는 허울 없이 지내던 회사 선배였어요. 생각도 비슷하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함께하기로 했죠. 작년에 저랑 한진이 먼저 독립해서 회사를 꾸리게 되었고 양규는 올해부터 합류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양규가 그 어려운 건축사 시험에 붙었어요. 한 번에 땄어요. 5년차에 합격한 거니까 꽤 어린 나이에 합격한 거죠. 고급 인력인데 현장에서 ‘노가다’만 하고 있어요.(웃음)
양규
‘노가다’가 힘들어도 재미있어요.
승재
힘들 때 힘들더라고 쉴 땐 쉬어야죠. 작년에 한창 바쁠 때도 제주도 갖다 왔어요. 양규 그래서 난리 한 번 나고(웃음). 삶을 존중하고 싶어요. 동업자 느낌보다 삶을 같이하고 싶어서 나왔거든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양규
여기 사무실 처음 구했을 때요. 처음엔 친구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방 한 칸 얻어서 석 달 정도 있었어요. 흙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공간을 구해야 했거든요.
승재
이 친구한테는 비밀로 하고 한진이랑 둘이 먼저 여기를 구해놨었죠.
양규
이사를 하는데 박스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자꾸 어딜 가는 거예요.(웃음) 여기가 사무실인 줄도 모르고, “야, 여긴 누구네 거냐? 좋네” 이랬어요. 저희가 옥탑방을 작업실로 얻고 싶었거든요.
승재
벽에 우리 로고가 붙어 있는데도 눈치를 못 채더라고요.(웃음)
틈틈이 기록으로 다 남기나봐요.
승재
네. 게스트 하우스에 있을 때 물건을 만들어서 팔기도 했는데, 그것도 다 과정으로 남겨 두고 시간 나면 하나씩 보면서 즐거워 해요.(웃음)
양규
두 친구가 감각이 있어요. 영화 하시는 분 있으면 꼭 캐스팅 의뢰를···.(웃음)
승재
요즘엔 바빠서 재미있는 일들을 못 해요. 시간 나면 재정비를 좀 해야 해요.
양규
같이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요.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 같은 조합이라고 할까? 저는 만날 당하는 역할이에요.
승재
한진이는 밑도 끝도 없이 “왜? 뭐?” 이렇게 막 소리 지르고.(웃음)
“실제로 회사에서의 경험은 창작과 실현에 대해 많은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만족도와 배움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해결되지 않는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동기, 순수한 열정, 순수한 배려, 순수한 몰입, 순수한 공간, 순수한 노동, 순수한 눈물 등 그 모든 순수한 것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위한 노동이 아닌, 순수하게 우리를 불태울 수 있는 노동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회사에 낸 사직서 일부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그들은 정말 원하던 일을 하고 있다.
연희동 집이 많이 화제가 되었는데, 실제 작업은 어땠어요?
승재
주택은 엄청 일이 까다로워요.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1㎝에도 민감할 수 있거든요. 동선이라든가, 수납공간이라든가, 고민해야 할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이 필요하고. 다행히 건축주가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해보신 분이라 뭘 원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어요. 반면에 공사 과정은 몹시 험난했어요. 시공 후에 실제로 보니 맘에 들지 않아 부수고 다시 한 부분도 여러 군데 있었고···.
양규
나중에 고맙다고 선물도 보내주시고. 그래도 고생한 걸 알아주셨어요.
승재
독립한 지 아직 2년이 안 돼서 배우는 게 많아요. 회사에선 큰일만 맡아서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잘 몰랐거든요. 연희동 집 같은 경우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그래도 진심으로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은 마음으로 채우기로 했어요.
양규
그 이후로 잘 된 것 같아요. 건축주 속마음을 잘 몰랐거든요. 마지막에는 같이 사포질하고. 재미있었어요. 정말 인간적인 현장이었어요.
승재
공사 현장이 제가 사는 동네였거든요. 어머니가 “너 어디서 일하냐?” 이러면 외면하고, 현장 출근할 때 문 잠그고 뛰어가고.(웃음) 집에서도 제가 어디서 일하는지 몰랐어요. 돈은 안 갖다주고 밖엔 나가고, 밤엔 들어오고. 나중에 잡지에 나온 것 보시고 아셨대요.
김해 건축 대상 받은 ‘흙담’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죠?
승재
흙담은 한진이가 현장에 내려가서 시공에 참여했는데 하지 말라는 일은 다 한 것 같아요.(웃음) 벽돌 찍고 이상한 디테일 만들고. 요즘 건축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는데 장인 정신으로 한 거죠.
양규
틀을 만들어서 벽돌까지 일일이 하나하나 찍어가면서 하는데. 늦게 떼면 틀이 붙어서 안 떨어지고, 너무 일찍 떼면 흙이 그냥 무너지고. 승재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 주신 건축주분도 대단하신 거죠. 양규 완전 수작업이었는데.
승재
우리 안에선 미친놈이라고 해요.(웃음)
건축주와의 갈등이랄지, 힘든 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양규
처음부터 정해놓은 그림이 있으면 우리랑 하지 말라고 해요. 우리가 그냥 도면 옮겨주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건축주와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봐요.
승재
디자인에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요구사항은 최대한 들어주려고 해요.(웃음)
양규
한 번은 의뢰가 들어와서 시장 환경 개선 사업에 수익 상관없이 좋은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상인들로부터 돈 빼돌린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듣고 그랬어요. 그래도 새벽 늦게까지 웃으면서 했어요. 막상 설치된 거 보고는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의 강점이 멘탈이 센 것 같아요. 별로 돈 걱정 안 하고 살아요. 지금까지 사업 계획도 세워본 적이 없어요. 내년엔 한 번 세워보자, 우리 색깔도 이젠 정하자, 이러면 그러자 하는데, 제가 볼 땐 거짓말 같아요(웃음). 회의한다고 해서 가면 통닭만 먹고 가고.
승재
현장에서 많이 배워요.
양규
맞아요. 오히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께 더 많이 배워요. 되게 멋있는 분들이 많으세요. 돈을 얼마를 더 드리고 이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가치로 바꿀 수 없는 분들이에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생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살만하다 뿐인가. 열정을 쏟을 일이 있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매일 뜨거운 밥을 먹는 일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심지어 애써 지은 담을 헐고 다시 짓고, 또 무너뜨리게 되더라고 괜찮아, 라는 초 울트라 긍정 마인드까지 생긴다. 멘탈 갑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건강한 낙천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삶의 최우선 가치를 돈보다 삶에 두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에 그리던 공간을 현실로 이루고 싶은 분들은 푸하하하프렌즈를 만나 보시길.
무얼 추구하면서 사나요?
양규
각자 다르겠지만 셋의 공통점은 확실히 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삶의 가치가 중요해요. 저는 그냥 웃으면서 함께 사는 거. 승재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영혼이고.
승재
한진이는 장인 스타일이에요.
양규
그 녀석은 대가가 될 거예요.
승재
한 번은 공사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공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양규한테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양규가 수익 생각하지 말고 우리 공사비로 다시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요. 한진이도 “야! 그래서는 돈 벌었다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하다! 다시 해! 다시 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 돈 털어서 공사 다시 하는데 싸움이 한 번도 없었어요.
양규
그러고는 날라 차기로 담 부수고(웃음).
승재
보일러 깔던 설비 사장님도 달려오셔서 이단 옆차기로 동참하시고.(웃음)
양규
아내한테 늘 고맙죠. 이번 공사만 끝나면, 집에 좀 들어올 거야. 매번 이러는데 계속 공사가···.(웃음)
글로 정리하다 보면 지금 이 분위기가 사라질 텐데 최대한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양규
얼마 전에 한진이 대학 후배들이 인터뷰를 왔어요. “앞으로의 사업 계획이 뭔가요?” 묻는데 우리 둘이 “사업 계획이 있냐?”, “그런 거 있었나?”, “없어” 이러고. “추구하는 방향은요?”란 질문에도 “없는데” 이러고.(웃음)
승재
내가 있었으면 인터뷰가 좀 달라졌을 텐데.(웃음)
양규
저는 그 자체가 좋았던 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목표를 정해놓은 순간 오해가 생긴다고 봐요. 나중에 그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할 테고. 아무 것도 없어도 서로 믿어주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
양규
놀 궁리만 하고 있죠.(웃음) 갑자기 어느 날 수요일 오후는 무조건 전투 체력이다, 너 오리발 사라, 이러는 거예요. 돈도 없는데 비상금 30만 원 중에 13만 원 들여서 샀어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잠실 수영장에 갔어요. 이게 사는 거지. 두 번 가고 못 갔어요.
승재
영덕 갔다 와서 야, 이거 잠수복 있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샀어요. 그거 입고 물에 한 번 들어갔나?
양규
여기에서 입고 돌아다녀요. 한진이도 한 달에 얼마 벌어야 한다고! 소리는 치고. 어떻게 할 건데? 그러면 몰라!
승재
한 달에 얼마는 벌어야 하는 놈이 잠수 타고. 놀러 가고. 어디 가면 들어올 생각을 안 해(웃음).
양규
불만은 내가 튼 노래를 좀 그냥 듣게 해주면 좋겠어요.
승재
우우우, 워어어, 이런 거만 트니까 그렇지.
양규
그건 그래.(웃음)
내가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 생각할 땐 언제예요?
양규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만 빼고요. 잠이 부족해서.
승재
아침 7시 반에 전화 와요. 어디냐고. 밤늦게까지 술 드시는데도 다들 부지런하시고.
양규
얘는 그냥 놔두면 놀 생각만 해요. 전화로 “지금 내가 뭐 하는 줄 알아?” 이러면, 바빠 죽겠는데도 다 들어줘야 하고.
승재
현장 소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막걸리 마시면서.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지, 뭘 작업 지시를 하고 그려”.(웃음)
양규
같이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요.
승재
아쉬운 건 셋이 같은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강점들이 다르고, 현장도 여러 군데라. 한 명이 책임지면 두 친구는 노예로 일하는 걸로(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