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 토끼전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판소리 〈수궁가〉를 캘리그래피로 만날 수 있는 전시, 캘리콘서트 개판(開板) 전〈수궁가왈〉이 오는 12월 20일(화)까지 인사동 하나로갤러리에서 열린다. 오민준글씨문화연구실이 매년 주최하는 캘리콘서트는 그동안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통해 캘리그래피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에는 그 판을 바꾸어 우리 민중의 소리이며 가락인 동시에 민족정신을 잇게 한 ‘판소리’에 주목했다.
‘판소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이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청중이 직접 “잘한다!”, “얼씨구!”의 추임새를 넣으며 참여하는 직접 교감의 예술인 것. 캘리콘서트의 첫 번째 ‘개판(開板)’은 판소리 다섯마당의 하나인 〈수궁가〉이다. 용왕과 물고기 신하들이 살고 있는 ‘수궁’은 권력자들의 세상과 같고, 물 밖 육지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서민들의 세상과도 같다. 권력자인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토끼를 속이고 간을 취하려 하는 내용은 현실의 세상과도 다르지 않아 씁쓸함마저 드는 시점이다.
이렇게 현실 세상에 대한 재치 있는 풍자와 희로애락이 해학적인 맛을 더하여 판을 벌이는 수궁가가 캘리콘서트를 통해 먹과 만났다. 화선지 위에서 먹은 득음한 명창의 울림 있는 소리와도 같다. 세상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일 듯 진하디진한 농묵(濃墨)부터 은은한 안개 속 같고, 때론 깨끗한 첫눈과도 같은 담묵(淡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이 먹으로부터 나온다. 그 먹색은 붓의 놀림을 통해 춤추듯 가볍게, 지르듯 힘 있게 화선지 위를 장악한다.
그것은 판 위에서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소리꾼의 구색(口色)과도 같습니다. 붓끝을 세워 힘 있게 지른 선은 뱃속부터 끌어올린 소리와도 같고, 화선지 위를 거스르며 긁은 선은 거칠게 목을 갈아나오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화선지 위를 자유롭게 달리는 붓에 의한 선들은 판소리의 장단처럼 흥을 돋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 캘리콘서트 회장 윤경희 인사말 중
수궁가의 대목별 장단을 살펴보면, 용왕탄식(진양-계면조), 약성가(藥性歌, 자진모리-우조), 토끼화상(중중모리-계면조 또는 평조), 고고천변(皐皐天邊, 중중모리-평조 또는 계면조), 토끼와 자라(중중모리-계면조), 토끼신세(자진모리-계면조), 토끼기변(중모리-계면조), 가자가자(진양-우조), 백매주를 바삐 지나(중중모리-평조), 토끼욕설(중모리-추천목) 등이다.
스물 한 명의 캘리콘서트 작가들은 대목별 장단을 선율(線聿)과 농담 그리고 공간과 자형으로 표현했다. 새로이 한판을 벌린 캘리콘서트 개판 〈수궁가왈〉 전에서 한판 놀아보고, “얼씨구!”, “좋다!” 등 추임새도 맘껏 넣으며 직접 교감하기를 바란다.
전시 정보
캘리콘서트 개판(開板)전〈수궁가왈〉
일자: 2016년 12월 14일(수)~12월 20일(화)
장소: 인사동 하나로갤러리
관람료: 무료
주최/주관: 오민준글씨문화연구실
후원: (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캘리그라피디자인그룹 어울림, 타이포그래피서울, 하나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