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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망막을 계몽한 렌즈,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로드첸코 사진〉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하는 사진가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를 집중 조명한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 열렸다.


    취재. 임재훈

    발행일. 2017년 07월 10일

    [전시] 망막을 계몽한 렌즈,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로드첸코 사진〉

    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하는 사진가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를 집중 조명한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 열렸다. 분당 ‘아트스페이스 J’에서 5월 30일 선보인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로드첸코 사진〉(이하 〈로드첸코 사진〉)이다.

    1917년 2월과 10월, 두 차례 혁명으로 볼세비키당은 러시아 제국의 전제군주제를 헐었다. 구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움을 건설한다, 라는 기치는 예술과도 통했다. 레닌이 이끄는 혁명정부의 지지와 지원 아래, 로드첸코나 말레비치 같은 사회주의 예술가들의 다양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구축주의, 생산주의로 설명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혹은 러시아 혁명 미술의 태동 배경이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는 올해,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왕립미술학교 등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과 관련한 전시를 개최했거나 현재 기획 중이다. 〈로드체코 사진〉 또한 같은 선상에 놓인다. 미술이론가 조주연은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 “예술의 변혁을 통한 삶의 변혁을 추구”함으로써 “자율성과 개인의 장벽을 넘어 기능성과 사회로 나아간 예술의 전범”이라고 설명한다.

    알렉산더 로드첸코(1935) / 출처: Wikipedia

       알려져 있다시피 로드첸코는 열성적인 사회주의자이자 볼셰비키당 지지자였다. 1920년 그는 혁명정부에 의해 러시아 내 아트스쿨과 박물관의 재정비를 총괄하는 직책에 임명되기도 했다. 볼셰비키당의 혁명 과제였던 ‘산업 진흥’의 한 분과로서 예술이 다루어진 일례라 할 수 있다. 

       1910년대까지 로드첸코는 회화, 조각, 건축, 디자인 등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 러시아 혁명을 기점으로 이른바 순수예술을 지양하며 생산주의 예술(production-art), 엔지니어로서의 예술가(artist-engineers)를 추구했다. 당시 그가 집중했던 것이 타이포그래피였다. 1922년 구축주의 잡지 『Lef』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로드첸코는 시인 마야코프스키가 〈거리의 시(The Poetry of the Street)〉라 불렀던 포스터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이 시기에 그는 마야코프스키의 시집 『Pro Eto』의 표지와 본문을 디자인하며 포토몽타주 기법을 도입했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은 이때 로드첸코가 “그래픽에서 구축주의 활동의 일환으로 전개했던 콜라주와 포토몽타주 작업을 하다가 사진의 잠재력을 인식했다”라고 해설한다.

       〈로드첸코 사진〉에는 총 30점이 전시되었다. 로드첸코와 그의 아내 바바라 스테파노바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로드첸코/스테파노바 아카이브’, 미국의 수집가 하워드 시클러와 데이비드 라페일(The Schickler/Lafaille Collection)이 1920년대 로드첸코 전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한 〈Alexander Rodchenko Museum Series, Porfolio 1 Classic Images〉(1994)의 오리지널 빈티지 프린트 30점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사진이론가 박상우는 로드첸코 스타일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 5가지 섹션으로 작품을 분류했다. ‘실험’ 다섯 작품(〈모셀프롬 빌딩〉, 〈라이카를 든 소녀〉, 〈계단〉, 〈유리잔과 빛〉, 〈사모즈베리〉, ‘시점의 혁명’ 열두 작품(〈소녀 배달원〉, 〈발코니〉, 〈비상 사다리〉, 〈트럼펫을 부는 선구자〉, 〈소나무〉, 〈혁명 박물관 기둥〉, 〈전차 철로〉, 〈퍼레이드 행렬〉, 〈안뜰〉, 〈모스크바 강변의 보트〉, 〈브리안스키 기차역〉, 〈거리〉), ‘르포타주 사진’ 다섯 작품(〈수문을 통과하는 배〉, 〈라디오 센터 경비대〉, 〈기어〉, 〈담배 파는 소녀〉, 〈오케스트라〉. 〈백해 운하〉), ‘스포츠’ 여섯 작품(〈경마〉, 〈운동선수〉, 〈체조〉, 〈다이버〉, 〈남자 피라미드〉, 〈스포츠클럽〉), ‘포트레이트’ 두 작품(〈어머니 초상〉, 〈시인 마야코프스키〉) 등이다. 

       이 가운데 구축주의에 근거한 로드첸코만의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결과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건 역시 실험 섹션이다. 박상우의 소개처럼, 로드첸코는 “현대인의 구체적인 삶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진만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매체”라고 믿었던 인물이다. 생생하게 기록하기의 방법으로서 그가 채택한 것들 중 하나는 시점의 다각화였다. 시인 이성복의 시론집 『무한화서』에 적힌 어느 말을 빌리면, 1억명이 한 대상을 바라볼 때 1억 개의 새로운 대상이 생겨난다. 로드첸코가 사진을 통해 이 개념을 엄격히 실천하려 했음이 실험 섹션의 전시작들에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1928년작 〈유리잔과 빛〉의 경우, 흡사 만월처럼 묘사된 조명을 배경으로 물이 삼분의 일쯤 담긴 유리잔(유리병)을 포착하고 있다. “일상적 사물을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지각하게 하려고 했다”라는 작품 해설을 참고해볼 때, 이 사진은 유리잔과 빛(조명)의 정지돼 있고 개별화된 사물성이 아닌, 시점에 따라 전혀 생경한 이미지로 변화하는 그 둘의 건축적 에너지를 피사체로서 겨누고 있다. 

    〈유리잔과 빛〉(1928)

       망막이 고정된 것으로 지각하는 한 대상은, 렌즈를 조금만 비틀거나 빛의 노출을 조절함으로써 그 고정성을 극복하게 된다. 로드첸코의 이 같은 실험이 응축된 또 다른 작품은 〈계단〉(1929)이다. 이 사진의 모든 것이 사선이다. 직선(횡선)의 대상인 계단과, 아이를 안고 직립보행 중인 여성은 이 작품의 프레임 안에서 얼마간 비틀어져 있다. 현실에선 직선 방향이었을 여성의 동선 또한 어슷해지고 만다. 이러한 기울어진 시점은 직선화된 고정관념에의 탈피를 대단히 급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계단〉(1929)

       망막의 고정관념을 카메라 렌즈로써 계몽하려는 듯한 로드첸코의 사진 실험에 대해서는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글 「로드첸코의 기계미학」을 참고해보면 좋을 것이다. 그는 로드첸코 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구축주의를 “작가가 기계생산, 건축, 엔지니어링, 인쇄, 사진매체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사회의 물질적, 지적 요구를 고양시키는 데 공헌하려는 움직임이었다”라고 풀이한다.

       〈로드첸코 사진〉은 8월 31일까지 계속되지만, 현재 아트스페이스 J는 하계 휴관 중이다. 박상우, 조주연, 이영준, 박평종의 심포지엄이 마련되기도 했던 첫 전시 일정(5.30~6.10)을 마치고, 8월 1일 다시 관람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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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스페이스 J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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