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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문자 혁명 – 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

    〈문자 혁명 - 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이하 ‘문자 혁명’)는 “인쇄술을 통해 확산된 한국과 독일의 문자 문화를 비교하는 전시”다.


    글. 임재훈

    발행일. 2021년 03월 29일

    전시 〈문자 혁명 – 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

    문자는 어떻게 권력에서 생활로, 그리고 문화로 변화했나
    전시 〈문자 혁명 – 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

    〈문자 혁명 – 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이하 ‘문자 혁명’)는 “인쇄술을 통해 확산된 한국과 독일의 문자 문화를 비교하는 전시”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박물관, 라이프치히 대학 도서관과 함께 국립한글박물관이 2019년부터 기획한 결과물로서, 2020년 12월 17일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해 2021년 4월 25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한독 양국의 문자 문화를 보여주는 150여 점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관람객들은 『월인석보(月印釋譜)』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토이어당크(Theuerdank)』 같은 15~16세기 국보급 ‘문자 문화재’ 진본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 포스터는 한글 제목을 궁체로, 라틴 알파벳 제목(Letters in Print: Korea and Germany Compared)은 프락투어(Fraktur)로 표기했다. 두 인쇄용 서체, 즉 궁체와 프락투어는 일면 판이해 보이지만, 전시를 차근히 관람하고 나면 두 문자가 그리 이원적으로만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코로나 19 시국, 새삼 음미하게 되는 ‘문자’의 소중함
    : 조선시대 대국민 전염병 처방전 『간이벽온방』이 한글·한문 2개 문자로 간행된 까닭

    〈문자 문화〉는 3부작으로 구성된 전시 콘텐츠다. 1, 2, 3부 순으로 흐르는 전시 전체의 서사를 잘 좇을 필요가 있다. 〈문자 문화〉는 어떤 장을 먼저 읽든 크게 상관이 없는 산문집이라기보다, 처음부터 한 장 한 장 넘겨 가야 하는 이야기책에 가깝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문자가 만민의 일상으로 들어오다, 그렇게 문자 생활이 열리다, 그리하여 문자 문화가 탄생하다.

    1부 「독점에서 공유의 길로」
    : 인쇄술 등장 전후의 문자 생활 살펴보기

    2부 「소통과 공감으로」
    : 자국어 문자의 탄생과 자국어로의 번역을 통한 문자 문화의 확산 양상과 의미 짚어보기

    3부 「궁체와 프락투어」
    : 한국과 독일의 인쇄 서체의 변화와 발전 모습을 한눈에 살펴보기

    문자가 한때 권력 집단의 전유물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새로 설명을 잇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퍽 명쾌한 요약문을 인용하겠다. 서예가 권상호가 2016년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글’ 또는 ‘문자’라는 말은 때로 ‘학문’ 또는 ‘학식’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는데, ‘글깨나 배웠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겠나?’라고 할 때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공자 앞에 문자 쓰네’라고 할 때의 ‘문자’는 어려운 문구를 많이 쓰며 유식한 체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이다.
    […]
    문자는 발명 이래 양반이나 귀족과 같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으로서, 요즈음처럼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소수의 집권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 문자를 악용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25) 문자권력 나눔을 위한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 세계일보, 2016. 10. 7.

    요컨대 문자라는 건 「독점에서 공유의 길로」 들어선 뒤, 「소통과 공감으로」 점차 대중화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문자 문화〉의 1부와 2부는 이처럼 문자가 ‘세도가들의 독점물’에서 공유·소통·공감의 공공물로 변해가는 거대한 전환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2부 섹션에 전시된 조선시대 한의학 서적 『간이벽온방(언해)[簡易辟瘟方(諺解)]』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 책은 1525년 평안도 지역에 장티푸스가 창궐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임금이었던 중종의 명을 받아 여러 의관(醫官)들이 장티푸스 치료 처방전을 책 한 권으로 묶어 한글과 한문으로 편찬했다. 현재 시점으로 비유하면, 대통령령으로 질병관리청 의료진이 코로나 19 확산 예방을 위한 대국민 간행물을 제작한 셈이다. 만약 이런 자료집이 위 인용문의 표현처럼 “양반이나 귀족과 같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문자로만 기술되었다면 어땠을까. 일반 백성들은 장티푸스든 코로나 19든 역병의 화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0년 10월 보물 제2079호로 지정된 『간이벽온방(언해)』은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문화재 중 하나다. 한글 문자의 보급과 확산을 상징하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크다.

    서적명의 ‘언해(諺解)’라는 표현을 짚을 필요가 있겠다. 국어사전에서 ‘언해’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한문이나 다른 나라 글로 된 책을 언문으로 풀이함’. 이때의 언문(諺文, 점잖지 않고 상스러운 문자)이라는 건, 사전적 정의로는 ‘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다소 조심스럽다. 국립국어원은 ‘언문’에 대해 “일부 ‘문자’로서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15세기 당시 ‘훈민정음’의 다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듯 ‘언문’의 뜻은 견해에 따라 다르게 보고 있으므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단언하여 말씀드리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3부는 「궁체와 프락투어」라는 섹션명처럼 한국과 독일 양국의 인쇄용 서체 발전사를 정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왜 궁체가, 독일에선 왜 프락투어가 인쇄용 서체로 등장한 것인지, 그 이유와 배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한글 서체는 직선 형태에서 시작하여 점차 곡선으로 변화하였다. 새로 만든 글자인 ‘훈민정음’을 처음 인쇄할 때는 점과 직선, 원의 간결한 형태와 고른 두께로 글자를 표현했으나, 이후 붓글씨에 어울리는 둥근 서체인 ‘궁체’가 만들어지게 된다.

    독일은 라틴어 인쇄물과 독일어 인쇄물을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꺾인 서체인 ‘프락투어’가 독일의 대표 서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문자 문화 – 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 온라인 전시 콘텐츠 ‘큐레이터의 전시 소개’ 중

    〈문자 혁명〉은 온라인으로도 관람할 수 있다. 한독 양국의 진귀한 문화재 진본을 못 보는 점은 아쉽겠으나, 온라인 전시관에서도 충분히 〈문자 혁명〉의 기획 의도와 서사가 읽힐 것이다. 브랜드 사이트의 제품 프레젠테이션 페이지를 연상케 하는 구성과 UI 덕분이다. 뜬금없는 감상이지만, 이제 문화 예술 분야는 IT 분야와 숙명적으로 한 몸이 된 듯하다. 인문계라서 IT를 잘 모르고, 이공계라서 문화 예술을 잘 모른다, 라는 레토릭이 구차하고 시시하게 들릴 수도 있는 시대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Exhibition Info.
    전시일정  2020. 12. 17. ~ 2021. 4. 25.
    전시장소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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