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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10년간 매일 아침 출근했던 회사원은 어쩌다 ‘밥장’이 되었나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2년 12월 21일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앙증맞은 천사가 폴폴 날아온다. 옆집에 사는 친구처럼 정감 있고 친근하다. 금방이라도 등을 탁 치면서, 안녕? 안부를 챙길 것만 같다. ‘밥장 월드’ 속에 등장하는 얼굴들은 천사든 사람이든 다정하고 착한 모습이다. 심지어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마저 선한 의지를 지닌 것 같다. 위선을 가장하거나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악의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손을 내밀며 이렇게 묻는다. 잘 지냈니? 우리 친구 할래?

    많이 바쁘실 텐데 최근엔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뱅뱅 사거리 푸르덴셜 건물의 크리스마스 이미지 설치작업을 했어요. 길이 40미터, 높이 20미터 되는 구조물이에요. 밤에는 조명도 들어오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 스페인, 뉴욕 등에서 경제 관련 프로그램을 하나 찍었는데, 채널 A에서 23~24일 2부작으로 방송될 예정이에요. 그리고 100개쯤 되는 크리스마스카드 수작업을 이제 막 끝냈습니다.

    10년 동안 넥타이를 매고 회사원으로 살다가 전업을 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많은 사람이 직장 일을 하면서도 이 일이 내 일인가, 정말 해야 할 일인가 계속 고민을 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인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전엔 그림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는데. 그림이 나를 치유해주고, 보듬어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게 해주더라고요. 완전히 푹 빠져 지냈죠.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전업으로 글 쓰고 그림 그리면서 살고 있어요.

    회사원으로 지냈던 경험이 지금은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요?

    영업면에서?(웃음) 일러스트는 제 그림이 어딘가에 쓰이는 거니까 협업을 해야 하고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죠. 제 작업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설득을 할 때 마케팅에 대한 개념이 있으니까 상대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어요. 소비자에 대한 이해나 회사, 혹은 상품에 대한 이해가 넓을수록 도움이 되고요. 그런 건 회사생활에서 배운 것 같아요.

    자기 관리가 철저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세요?

    통장잔고를 보면 저절로 돼요(웃음). 내가 하고 싶은 거, 다른 사람 돕고 싶은 거 하려면 일해서 벌어야죠. 꾸준히 스스로 제안하고 보여주고 해야 기회도 오니까요.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고요, 무조건 마감 엄수입니다(웃음).

    ▶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일러스트
    ▶ 푸르덴셜 생명 빌딩 크리스마스 설치물 일러스트
    ▶ 조선일보 카툰 <밥장의 상상디자인>
    그는 1년에 2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재능기부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에게 재능기부는 긍정적인 의미의 중독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재능기부에 대한 개념을 사람들에게 좀 더 널리 알리고 싶다. 재능에도 품격이 있다면 나눔으로써 더욱 행복해지고 함께 할수록 깊이 풍요로워지는 삶을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재능이 아닐까. 

    사회적으로 재능기부를 많이 하시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시작은 우연한 계기였어요. 코오롱에서 티셔츠를 만들어 사랑의 연탄 나누기 본부에 기부하는 캠페인을 했어요. 저작권 기부가 가능하냐고 하길래 무조건 된다고 했죠. 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직접 사랑의 연탄 나누기 본부에 연락해서 그림이 필요하면 계속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 이후로 어린이재단, 멘토링 전문기관,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 등에 120개 정도 재능기부를 한 것 같아요. 벽화작업도 있고 강연도 있고 저작권 기부도 있고요.

    꾸준히 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1년에 스무 개씩만 하면 어렵지 않아요. 한 달에 3~4일 하는 거니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제 그림을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을 만날 수 있으니 제가 얻은 게 더 많죠. 게다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도 생기고요. 작업의 동력이 되죠. 2009년도부터 완주군에 재능기부를 많이 했는데 덕분에 올해 완주 명예 군민증을 받았어요(웃음). 내국인 중에선 처음이라고 군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그런 가치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는 게 참 희망적이네요.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흔히 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갤러리에서 즐기는 호사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작업하면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과정 자체를 친근하게 보고 그것 하나로 공간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직접 느끼게 되죠. 그림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요.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전문적인 분야에 계신 분일수록 재능기부를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

    사회적으로 전문지식과 재능이 순환되는 의미도 있을까요?

    그렇죠. 요즘 복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게 꼭 거창한 개념은 아니잖아요.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가는 시스템이죠. 단순하게 생각해서, 필요한 곳에 제 그림이 가면 그곳의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사람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 [좌] 서울 디자인페스티벌 네이버 콜라보레이션  [우] 월드비전 소식지 표지 일러스트 _재능기부
    ▶ 크리스마스 카드 _재능기부
    ▶ 나의 미래는 푸르다 _개인작업
    그는 스스로 어딘가 조금쯤 비켜선 아웃사이더라고 한다. 하지만 가만히 방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지는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벽화를 그릴 현장 답사를 가고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모색하고 움직인다. 그는 성실한 표현자인 동시에 행복한 행동가다. 종이나 모니터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일러스트를 직접 보고 싶다면 서교동 카페 감싸롱에 가면 된다. 그가 그린 벽화가 있는 이곳이 내년 2월엔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안타깝다.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내가 한 작업을 보고 즐기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기쁘고요. 제 책상에서 시작해서 제 책상에서만 끝낸다면 오래 못 할 것 같아요. 작가는 어느 면에선 자기 왕국의 왕이잖아요. 내 말 들어주고, 내 그림 최고라고 해주고(웃음).

    일러스트에서 천진난만하면서도 따뜻한 친밀감이 많이 느껴져요.

    제가 그런 걸 바라기 때문인가 봐요(웃음). 기술적인 한계도 있어요. 멋있고 근사한 걸 그리고 싶다고 해도 못 하니까(웃음). 누구든 모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게 있다고 봐요. 게다가 전 무엇을 묘사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시작한 것이라서 다른 분과는 출발점이 조금 다르기도 하죠. 마음을 그림이라는 언어로 드러내면서 막히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이렇게 하나둘씩 배운 거라서.

    자신 안의 표현 욕구를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

    몰랐죠(웃음). 정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좌충우돌하다가 어느 순간 쌓였던 것들이 임계점에서 솟아오른 것 같아요. 그림이라는 것도 하나의 선이 다음 선을 위한 연상이 되고, 덩어리가 되고, 그 덩어리가 발전해서 다음 생각을 불러오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거든요. 그게 생활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작은 지점에서 시작해서 부딪치고 헤치고 풀면서 문제가 해결되고 성과가 나타나더라고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갖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그만큼의 고민과 노력을 한 분들이에요. 남이 하는 건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요. 3~4년이 걸릴 수도 있는 건데 1년 해보고 아, 난 역시 안 되나 봐, 라고 생각하면 빨리 지치고 비관적이 돼요. 자신에게 그 일을 좋아하는지부터 물어보고, 정말 하고 싶다면 성실하게 하세요. 시간이 걸립니다(웃음).

    ▶ 러빙핸즈 네팔 벽화 _재능기부
    ▶ 평택 핑크드림 도서관 벽화 _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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